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4편 - 08

by 한정엽

2010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회의를 넘어 한국 현대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회의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변하는 국제 경제 질서의 복잡한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경제 질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고, 이는 국제 경제 거버넌스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G7과 같은 전통적인 선진국 클럽만으로는 글로벌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G20이 정상회의 차원으로 격상된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였다.


2008년 워싱턴에서 첫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이래, 이 포럼은 세계 GDP의 85%, 세계 무역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경제국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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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


한국이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선정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1960년대 원조 수혜국에서 시작하여 불과 반세기 만에 OECD 가입국(1996년)이 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발전 경험은 국제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했다.


특히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보여준 경제 구조조정과 회복력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은 위기 극복 과정에서 IMF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도 독자적인 경제 발전 모델을 구축했다.


이는 한국을 단순한 신흥국을 넘어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았다.


2010년 당시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했고,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는 글로벌 리더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성취와 함께 한국은 국제 개발협력에서도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2009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은 한국이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전환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정부의 경제외교 전략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를 국정 비전으로 제시하며 적극적인 경제외교를 추진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 발전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한국은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국제 경제 질서 안정화에 기여하고자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가 출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성과 중심적인 외교 철학을 추구했다.


이는 G20 서울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은 단순히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여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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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 설정의 혁신: 개발 의제의 글로벌 어젠다화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개발 의제를 G20의 핵심 어젠다로 설정한 것이었다. 이는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국제적 위치를 반영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기존의 G20 회의가 주로 금융 안정과 거시경제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면, 서울 정상회의는 이를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과 개발 협력까지 논의 범위를 확장했다.


한국은 회의 준비 과정에서 자신의 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


이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개발 모델과는 차별화된 것이었다.


한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교육과 인적자원 개발의 중요성, 그리고 기술 혁신을 통한 경제 발전을 강조하는 새로운 개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서울 개발 컨센서스의 탄생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가장 큰 유산은 '서울 개발 컨센서스'의 채택이었다.


이는 한국이 주도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개발 철학으로, 기존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서울 개발 컨센서스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의 조화, 정부와 시장의 균형 잡힌 역할, 그리고 각국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개발 전략을 강조했다.


이 컨센서스는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포함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 잠재력 확충, 인프라 투자 확대, 인적자원 개발, 무역 촉진, 금융 포용성 증대 등 9개 분야에서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한국의 발전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다층적 외교 전략의 실행


G20 서울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서 한국은 정교한 다층적 외교 전략을 구사했다.


먼저 주요 경제 대국들과의 양자 협의를 통해 한국의 의제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핵심 국가들과의 사전 조율을 통해 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동시에 한국은 개발도상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신흥국들과 협력하여 개발 의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은 시민사회, 학계, 기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포용적 거버넌스를 실현했다.


B20(기업 정상회의), L20(노동 정상회의), Y20(청년 정상회의) 등 다양한 참여 채널을 통해 정상회의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높였다.


국내 역량 결집과 국가적 동원


G20 서울 정상회의는 한국의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범부처 차원의 추진체계를 구축하고,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정책 조정 능력과 실행력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민간 부문에서도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


주요 기업들은 회의 개최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운영에 참여했고, 학계는 정책 연구와 제안 활동을 통해 회의의 지적 기반을 제공했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포럼과 토론회를 통해 G20 의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경제적 성과와 상징적 의미


G20 서울 정상회의는 구체적인 경제적 성과도 거두었다.


회의 기간 중 체결된 각종 양해각서와 협정들은 한국의 경제 외교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과의 경제협력 확대,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 발굴, 기술 이전 및 지식 공유 프로그램 추진 등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회의 개최 자체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크게 향상시켰다.


한국의 문화, 기술, 정책 역량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한류 확산과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 경제 외교의 질적 전환


G20 서울 정상회의는 한국 경제 외교의 질적 전환을 상징하는 분수령이었다.


이전까지 한국의 경제 외교가 주로 자국의 경제 이익 추구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 회의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에서 규범 제시자(norm-setter)의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서울 개발 컨센서스의 채택은 한국이 단순한 규범 수용자(norm-taker)를 넘어 국제 경제 질서의 적극적인 형성자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외교 전략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를 가졌다.


한국은 이후 다양한 국제 포럼에서 개발 협력과 지식 공유를 통한 상생 발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중견국 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개발도상국과의 연대 강화


G20 서울 정상회의는 한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발전 경험에 대한 개발도상국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은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외교적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 개발 모델과는 차별화된 '아시아적 발전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은 이후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한 개발 협력 확대, KSP(Knowledge Sharing Program)를 통한 정책 지식 공유, 그리고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통한 인적 교류 확대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들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이는 한국이 추구하는 '기여 외교'의 구체적 실현 방안이었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위상 변화


G20 서울 정상회의는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의 위상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특히 개발 협력과 지식 공유 분야에서 한국이 보여준 리더십은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하는 의미를 가졌다.


이는 한국이 전통적인 지정학적 제약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중견국 외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내 정치경제에 미친 영향


G20 서울 정상회의는 한국의 국내 정치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먼저 국가적 자긍심과 국제적 자신감이 크게 향상되었다.


한국 국민들은 자국이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보며 한국의 발전상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국가 정체성과 국제적 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경제적으로는 회의 개최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가 이후 한국의 국제적 경제 활동 확대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과의 경제협력 확대, 인프라 수출 증대,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확대 등에서 G20 서울 정상회의의 유산이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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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과제와 한계


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장기적 과제와 한계가 존재했다.


먼저 서울 개발 컨센서스가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는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한 과제였다.


한국의 발전 경험이 다른 국가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또한 G20 자체의 제도적 한계도 고려해야 할 요소였다.


G20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공식적 포럼이기 때문에,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내용들이 실제로 이행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는 한국이 제시한 개발 의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한국 외교사에서의 위치


G20 서울 정상회의는 한국 외교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수동적인 참여자에서 능동적인 의제 설정자로 전환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폐허에서 시작하여 불과 60년 만에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의 핵심 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적 발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는 또한 한국이 추구해야 할 외교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를 가졌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기여 외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이후 한국의 중견국 외교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G20 서울 정상회의는 결국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주는 분수령이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그리고 규범 수용자에서 규범 제시자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이 회의는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성과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성숙과 국제적 책임 의식의 발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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