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해 보겠습니다

by 김종원

이 말은 거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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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후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선배님, 이번에 계약 될 것 같아요. 담당자가 완전 좋아했거든요.

스고이, 스바라시이 연발이었어요."


저는 한 가지만 물었습니다.

"마지막에 뭐라고 하던가요?"

"켄토시마스. 검토해 보겠습니다 했어요."

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거 거절입니다."


후배가 웃었습니다. 제가 농담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얼마 후 일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정중하고 길고 따뜻한 거절 메일이었습니다.


저도 똑같은 실수를 했습니다.

일본 거래처에서 "켄토시마스"를 듣고 호텔로 돌아와 한국 공장에 국제전화를 걸었습니다.

생산 준비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며칠 후 공손한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다만 그 언어의 문법을 제가 몰랐을 뿐입니다.


일본어에는 사실상 "NO"가 없습니다.

직접적인 거절은 상대방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관계를 끊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거절할 때 거절처럼 들리지 않게 포장하는 기술을 수백 년에 걸쳐 다듬었습니다.


해독표를 드리겠습니다.


켄토시마스(検討します) — 검토해 보겠습니다

→ 진행 확률 5% 미만. 사실상 거절.


무즈카시이데스네(難しいですね) — 어렵네요

→ 99% 거절. 일본어에서 "어렵다"는 "불가능하다"입니다.


쵸토… (ちょっと…) — 좀…

→ 말을 흐리면 100% 거절. 이 뒤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진짜 관심이 있을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저희 담당 부서와 함께 다시 한번 논의해볼까요?"

구체적인 다음 단계가 나오면 그것이 진짜 YES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400년 전 에도 시대, 윗사람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직접적인 반대는 무례였고, 무례는 목숨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수백 년에 걸쳐 "NO를 NO처럼 들리지 않게 말하는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그 기술이 현대 비즈니스 회의실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인과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형용사가 아니라 행동을 보는 것입니다.

스바라시이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구체적인 다음 약속이 없으면

그것은 그 자리를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에티켓입니다.


회의 후 연락이 오면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연락이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에도는 도쿄의 옛 이름입니다. 서울의 옛 이름이 한양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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