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0여년 넘게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저는 동네 편의점에서 민망한 일을 당했습니다.
계산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돈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늘 그렇게 했으니까요.
어느 날 편의점 사장님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손님, 혹시 저한테 무슨 불만 있으세요?"
저는 영문을 몰랐습니다.
"아니요, 왜요?"
"그럼 왜 돈을 바닥에 던지세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일본식으로 살다 왔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몸은 아직 일본에 있었습니다.
일본 편의점 카운터에는 작은 접시가 있습니다. 손님은 그 접시에 돈을 올려놓습니다.
직원은 거스름돈을 다시 그 접시에 담아 돌려줍니다.
손과 손이 닿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저도 이상했습니다.
위생 때문인가? 아니면 일본인 특유의 결벽증?
그런데 10년을 살다 보니 전혀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접시는 편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거리(距離)였습니다. 400년에 걸쳐 몸에 새겨진 거리.
잠깐 400년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에도 시대 일본에는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 그냥 칼 찬 사람이 아닙니다. 무례하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베어버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키리스테고멘(斬捨御免)이라고 합니다. 베어버리고 용서받는다는 뜻입니다.
말 한마디, 시선 하나, 몸짓 하나가 목숨과 연결되던 시대. 그 시대를 260년 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뼛속 깊이 익혔습니다.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사무라이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접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와 봅니다.
직원이 외칩니다. "이랏샤이마세!" 크고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시선은 손님 얼굴이 아닌 카운터를 향합니다. 물건이 담긴 봉투는 손으로 건네지 않고 조용히 카운터 위에 올려놓습니다.
나갈 때 등 뒤에서 인사가 들려옵니다.
"마타 오코시쿠다사이마세."
완벽한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정서로는 어딘지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 차가움의 정체를 저는 10년 만에 알았습니다.
그것은 냉정함이 아닙니다.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400년의 배려입니다.
이 거리감이 다정하게 느껴질지, 혹은 쓸쓸하게 느껴질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작은 접시 위에 동전 하나를 올려놓는 행위에도,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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