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스마트폰 알람이 울릴 때를 떠올려보세요. 이성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침대에서 일으키는 건 출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열정 같은 감정입니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남긴 이 유명한 말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망설일 때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흄은 이를 "말과 고삐"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이성은 마부처럼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마차를 움직이는 건 말의 힘입니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도 이런 흄의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손상된 환자들은 이성적 판단 능력은 유지되지만,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우리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손상된 환자들은, 이성적 판단 능력이 정상임에도 간단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당시 데카르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감정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치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는 기차처럼 말이죠. 하지만 흄은 이런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친구와의 의견 충돌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이제 그만 만나야 해"라는 이성적 판단은 있지만, 실제로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건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감정이죠.
특히 도덕적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도덕적 결정을 내릴 때, 공감 능력과 같은 감정적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는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돕고자 하는 본능적인 반응에서 비롯됩니다. 길에서 누군가 쓰러진 걸 보면, 우리는 먼저 돕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 다음에 어떻게 도울지 이성적으로 판단합니다. SNS에서 불의를 보면 분노가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어떻게 대응할지 이성적으로 생각하죠. 최근의 'ESG 경영'이나 '착한 소비' 운동도 단순한 이성적 판단이 아닌, 환경과 사회에 대한 감정적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흄은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의욕(감정)이 필요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이성적인 접근이 함께해야 합니다. 스포츠카를 예로 들어볼까요? 강력한 엔진(감정)이 있어도 핸들(이성)이 없다면 위험하죠. 반대로 아무리 좋은 핸들이 있어도 엔진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현대 심리치료에서도 이런 통찰이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인지행동치료(CBT)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이를 인식하고, 논리적으로 재해석하여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접근법을 사용합니다.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려 하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방식을 취하죠.
직장에서의 갈등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동료와 프로젝트 진행 방식에 대해 의견이 충돌했을 때,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인정한 후,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료의 행동에 화가 났을 때, 순수하게 이성적으로만 대응하려 하면 오히려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동시에 이성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최근 주목받는 '감정 코칭'이나 '공감 리더십'도 흄의 이런 통찰과 맥을 같이 합니다.
흄의 메시지는 오늘날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AI와 자동화가 확산되면서, 인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AI와 빅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종종 이성과 논리만을 강조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다움은 감정과 이성의 조화에서 온다는 걸, 250년 전 흄은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나 봅니다. 자율주행차가 갖춰야 할 것도 결국 완벽한 주행 능력과 함께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