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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31. 2024

스토아 철학의 자연관

(1) 인과적 결정론을 따르는 물리적 자연

  스토아 철학의 자연관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자 한다. 'nature'란 단어는 우리 말로 '자연'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본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두 번역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 즉 '자연'은 '본래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다. '본성'은 인간이 본래 타고난 속성을 뜻한다. 이 역시 인위적인 것이 아닌 '타고난 있는 그대로'란 뜻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자연'과 '본성'은 다른 모든 개념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개념을 (1) 물리적 자연, (2) 인간 본성으로 나눠 설명하고자 한다.




  모든 직업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개그맨'이 직업인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머리 속에 어떤 공통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웃음이 가득한 유쾌한 얼굴, 재치있는 말솜씨, 빠른 두뇌 회전으로 순발력 있는 상황 대처 능력, 외향적인 성격을 떠올린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직업에 속한 사람에 대한 사전정보를 공유한다.


  그렇다면 '철학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 이미지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괴짜,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나 표현의 남발,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느라 떨어지는 현실감각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마디로 다른 직업에 비해 '독특하다'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이 '독특함'은 '이상함'이나 '우스움'같은 관련 이미지로 쉽게 전이된다.


  철학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의 책임은 철학개론 수업이나 서적에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등장하는 '자연' 개념을 기억해 떠올려보자.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다. 아낙시만데로스는 '공기', 엠페토클레스는 '흙, 물, 불, 공기', 피타고라스는 '수(數)'이라고 했다. 현대 과학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옛날 사람들이니까 믿을 수 있었던 유치한 생각이라고 무시한다. 또는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려면 시적 비유라고 생각하고 해석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무튼 자연을 설명하는 최소한 그럴듯한 이론 같지는 않다. 한마디로 황당하고 우습다. 철학자의 괴짜 이미지는 철학자들이 설명하는 자연관을 대하면서 생기기 시작한다.


  스토아 철학은 현대적이라고들 한다. 스토아 철학을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주로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적인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에 대처하는 '삶의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2천 년 이상의 시간적 거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만큼 설득력 있는 주제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잘 읽힌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스토아 철학의 자연관을 이해해야 한다. 스토아 철학에서 '자연'은 배경이고, '삶의 기술'은 전경이다. 사진을 떠올려보자.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배경에서 찍었느냐는 중요하다. 인물 사진의 배경은 인물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유능한 사진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을 중시한다. 사실 사진의 퀄리티는 인물을 배경에 얼마나 어울리게 찍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스토아 철학자는 사진 작가에 비유해보자. 이들은 삶의 기술을 가르치면서 항상 배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배경이 바로 자연이다. 따라서 스토아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들이 믿었던 자연관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 사회나 문화와 구분되는 과학자들만의 연구 영역과 같지 않다. 사실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연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연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나 사건까지 포함한다.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날씨부터 사랑하는 가족, 매일하는 출근을 끔찍하게 만드는 상사,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 즐겨찾는 SNS 친구나 셀럽도 자연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이 자연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을 '사건'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현대철학에서는 이 '사건'을 '마주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살아가며 내가 마주치는 모든 사건이 자연이다.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은 "운명이란 끝없는 인과관계의 사슬이다. 이로부터 만물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운행되는 이유 혹은 공식이다."(Fate is the endless chain of causation, whereby things are; the reason or formula by which the world goes on.)라고 말했다. 제논의 말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만물은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사물이 존재하거나 변화하는 것은 다른 사물을 원인으로 하는 결과다. 이런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세계가 존재하고 운행된다. 이는 양자역학 이전의 고전 물리학과 같은 인과적 결정론이다.


  인간은 이 '인과관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건은 이 사슬 속에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은 우리가 마주친 외부 사건의 영향이자 결과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자연을 초월한 신이 있어 전능한 능력으로 이 사슬을 깨뜨릴 수도 없다. 현대 과학에서 초월이나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스토아 철학도 마찬가지다. 


  이제 정리하자. 스토아 철학의 자연관은 우리가 가진 과학적 자연관과 다르지 않다. 물론 모든 스토아 철학자들의 자연관이 인과적 결정론은 아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이론적 변주가 존재한다. 하지만 큰 줄기는 역시 인과적 결정론이다. 그리고 이 인과적 결정론은 현대인들이 일상생활을 해 나가며 따르는 과학적 자연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러한 공통점이 현대인들이 스토아 철학에 공감하는 배경이 된다. 스토아 철학은 현대인의 과학적 자연관과 거의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 자연관에 근거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여기에서 스토아 철학이 제시하는 삶의 기술, 그 해법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감정적, 심리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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