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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시대, 갈등의 이유 : 의사소통 행위이론

by 정지영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나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지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죠. 추측과 확신 사이를 오가며 상처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밤새 잠을 설쳐가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다음 날, 그 말을 한 상대에게 무슨 뜻인지 묻습니다. 운이 좋으면 오해를 풀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더 큰 다툼으로 번집니다. 솔직한 대화의 시도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덮어두려 하지만, 마음속의 앙금이 쌓여 감정을 다치게 하면, 결국 간접적인 앙갚음을 하게 됩니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뒷담화를 하며 복수하기도 합니다.

© sample_in_photography, 출처 Unsplash




1. 소통의 아이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소통의 부재 역시 빈번하게 경험합니다. 피상적인 대화는 많지만, 진실하고 깊은 소통은 드물죠. 다양한 소통 수단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소통의 단절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통의 어려움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소통의 부재는 회사의 업무 효율 저하, 지역 공동체의 다툼, 다양한 정치나 이익 집단 간의 갈등과 극한 대치 등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깁니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통의 부재로 인한 문제를 설명했습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가정 내 갈등, 연인이나 친구 사이의 관계 약화, 정서적 소외와 고립, 신뢰 붕괴, 성장과 자아실현 기회 박탈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2. 현대사회 : 사회적 이해와 합의의 실패

하버마스는 사회적 이해와 합의의 실패가 중요한 문제라고 봤습니다. 주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회적 분열과 갈등

소통이 부족하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심화됩니다. 상호 이해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해와 불신이 쌓여 갈등이 격화됩니다.


(2) 왜곡된 의사소통과 이데올로기

특정 집단이 정보를 왜곡하거나 통제하여 이익을 추구할 때, 진정한 이해와 합의를 방해합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지속시킵니다.


(3) 공공 영역의 위축

소통의 부재는 공론장을 위축시키고, 시민들의 참여를 저해하며, 민주주의를 약화시킵니다.


(4) 사회적 신뢰의 상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신뢰가 약화되어 협력과 연대가 어려워지고 공동체가 붕괴될 수 있습니다.


(5) 생활세계의 식민화

경제적, 정치적 체계가 개인의 생활세계에 침투하여 인간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왜곡하고 지배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 내 과도한 업무 요구가 가정 생활을 침해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3.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행위이론(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을 전개합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의사소통 행위(Communicative Action)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흔히 의사소통을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과 의견을 합의하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즉 대화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위, 즉 사회적 행동입니다.


우리는 행위를 단순한 도구로만 생각합니다. 하버마스는 이를 도구적 행위라고 지칭합니다. 이 도구적 행위는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행동을 조정하는 반면, 의사소통 행위는 상호 이해와 합의를 통해 행동을 조정합니다.


(2) 이성적 합의(Rational Consensus)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의 목표가 합리적 토론을 통해 도달하는 합의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참여자들이 강압이나 속임수 없이 자유롭게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주장과 이유를 검토하며 합의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합의는 의사소통의 합리적 기초를 제공하며, 이는 사회적 규범과 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3) 이상적 담화 상황(Ideal Speech Situation)

하버마스는 이상적 담화 상황이란 모든 참여자가 평등하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이상적 조건을 목표로 삼아야 진정한 의사소통 행위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4) 체계와 생활세계(System and Lifeworld)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를 체계(system)와 생활세계(lifeworld)로 나눕니다. 체계는 경제와 정치 같은 공식적 제도로 구성되며, 도구적 합리성을 따릅니다. 생활세계는 일상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배경을 포함하며, 의사소통 합리성을 따릅니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colonization of the lifeworld)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생활세계가 체계의 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지배될 때 의사소통 행위가 훼손된다고 주장합니다.


4가지 핵심 주제들 중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앞선 3가지 주제가 이론적이고 원칙론적인 반면 생활세계 식민화란 주제는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3.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저항

위에서 하버마스가 제시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 중 '생활세계의 식민화'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생활세계와 시스템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두 가지 개념입니다.


(1) 생활세계와 시스템

첫째, 생활세계란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개인들이 의미를 공유하고, 문화적 전통과 사회적 규범을 재생산하는 장(場)입니다. 이 생활 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 문화적 재생산 : 사람들이 세대 간에 문화적 가치, 신념, 전통 등을 전달하고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은 전통 문화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 사회적 통합 :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 사회에서 열리는 동호회 모임, 자원봉사 활동 등은 사회적 통합을 돕습니다.

- 개인적 정체성 :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밴드에 가입하거나 음악 관련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둘째, 시스템은 경제와 행정 같은 제도적 구조를 지칭합니다.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을 담당하는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메커니즘입니다. 경제 시스템은 주로 돈과 같은 매개 변수를 통해 운영됩니다. 행정 시스템은 국가와 같은 행정 기구로 법률과 규제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공공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4. 생활세계와 시스템의 관계: 식민화와 저항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와 시스템이 상호 의존적이지만, 서로 다른 논리에 따라 운영된다고 주장합니다.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기반하며, 사람들 간의 이해와 협력을 강조합니다. 반면, 시스템은 기능적 합리성에 기반하여 효율성과 목적 달성을 중시합니다.


시스템이 생활세계를 지배하고 침투하는 과정을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라고 부릅니다. 경제 시스템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적 관계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주거비와 의료비로 인해 가족 간의 유대가 약화되거나,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행정 시스템이 과도하게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제한하는 경우, 생활세계의 자율적 의사소통과 문화적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친 감시와 규제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할 수 있습니다.


생활세계는 시스템의 식민화에 저항하고,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동시에, 시스템은 생활세계의 요구에 맞추어 조정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저항의 예로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저항으로 대안 교육 운동을 벌이거나 학생 시위를 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노동 시스템에 저항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직장 내에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저항의 예입니다.


시스템에 대한 저항 외에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경험과 필요에 맞춰 의료 서비스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도시 계획을 할 때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공청회와 워크숍을 개최하는 것도 조정의 예입니다.




5. 갈등을 넘어 소통과 협력으로

하버마스는 현대인들에게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감정적 반응 대신 이성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오해와 갈등으로 인한 많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동등한 발언 기회를 가지고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민주주의가 어느때보다 발전한 현대 사회지만 지금도 나이, 학력, 재산, 계급 등의 이유로 이상적인 민주적 대화 환경이 갖춰지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경제와 행정 시스템이 역사적으로 어느 때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시장과 공공 영역에서의 대화의 논리가 개인들 간의 사적인 대화에도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버마스는 이를 '생활 세계의 식민화'라고 지칭합니다. 우리의 대화를 이런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대화를 정상화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의 해방은 우리의 삶을 진정한 소통과 행복으로 이끌어줄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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