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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크라테스 : "모른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

by 정지영

타임머신을 타고 기원전 399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400여년 전 그리스 아테네라는 도시로 가 보겠습니다. 아테네의 중심부에는 ‘아고라'로 불리는 광장이 있었어요. 그 아고라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70세의 한 노인을 재판하기 위해서였죠. 법정에는 500명이나 되는 배심원들이 반원형으로 앉아 있고, 그들 앞에 맨발에 낡은 겉옷을 걸친 노인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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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큰 소리로 고발 내용을 낭독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도입하였으며,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 그렇습니다. 노인은 그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차분하게 자신을 변호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단호합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단지 진리를 추구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의 시작입니다."


청중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어납니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크라테스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화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더 많았죠. 왜 소크라테스의 말에 화가 났을까요?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지식이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가 찾아가 질문을 던졌었죠. 질문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대답을 하면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쉽게 대답했던 사람들도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대답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예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에게 소크라테스가 찾아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대화가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 자, 우리 우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꾸나. 너는 친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학생 : 친구는, 음... 나와 잘 지내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소크라테스: 그렇구나. 그러면, 만약 네가 누군가를 돕는다고 해서 그가 자동으로 너의 친구가 될까?

학생: 음... 꼭 그렇지는 않겠죠. 돕는 것만으로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 맞아. 그렇다면, 친구란 서로 돕는 관계라고만 정의할 수 없겠군. 그렇다면, 친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학생: 음... 친구가 되려면 서로 신뢰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이해해야 해요.

소크라테스: 좋은 생각이구나. 그런데, 서로 신뢰하고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꼭 친구가 되는 걸까? 가령, 네가 학교에서 매일 마주치는 선생님이나, 매일 보는 동급생과도 꼭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 아, 그건 아니에요. 매일 본다고 해서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소크라테스: 그렇지. 그렇다면, 우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들을 진정으로 친구로 만드는 걸까?

학생: 음... 서로 아끼고,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 인가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가 네게 우정을 표현하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는 너를 아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네 친구일까?

학생: 아... 그럴 수는 없겠죠...?

소크라테스: 그렇지. 그런데 네가 말한 것처럼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친구를 정의할 수 없다고 하면, 진정한 친구란 무엇일까?

학생: 음... 그건...

소크라테스: (미소 지으며) 네가 고민하고 있다는 건 좋은 신호란다. 우정이란 생각보다 깊은 주제지. 계속해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언젠가 너만의 답을 찾게 될 거야.



이렇게 계속 질문을 하여 결국에는 대답을 못하게 만드는 대화법을 ‘문답법'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말로는 ‘엘렝코스'(elenchos)라고 합니다. 위에서 예를 든 우정에 대한 엘렝코스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여러분은 대부분 ‘아, 내가 우정을 잘 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해 보았겠죠.


그런데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야, 너 똑똑한 아이인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아니었구나. 우정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무식쟁이구나.”라고 놀린다고 말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버럭 화를 낼지 모릅니다. 소크라테스가 미워질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화가 난 사람들, 미워한 사람들은 바로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를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진짜 앎을 얻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아고라의 재판정으로 돌아가 보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아고라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어요. 마침내 투표의 시간이 다가왔어요.. 배심원들은 각자 청동판을 투표함에 넣었어요. 유죄는 뚫린 원판, 무죄는 뚫리지 않은 원판이었어요. 원판의 수를 헤아렸고, 결과가 발표되었어요. 소크라테스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형은 선고받아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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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무지(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외쳤어요.


“사람들은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게 많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저는 제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것입니다. 바로 ‘무지의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지혜와 덕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배우거나 성장할 수 없으며, 결국 잘못된 신념과 판단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에 대한 인정 없이 살아가는 것을 일종의 "가짜 지혜"로 간주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배움과 탐구의 길에 들어서게 되며, 진정한 지식과 이해를 추구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자각이 겸손과 열린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볼까요? 한 학생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다가 답을 찾지 못했을 때,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난 이미 충분히 알아"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탐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는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또 다른 학생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친구나 선생님에게 질문하며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는 선택을 한다면, 그는 새로운 지식을 얻고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후자의 선택이 진정한 지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혜'를 우리 일상 생활에 적용해 보세요.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줄겁니다. "난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배움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아는 척하지 않고 "잘 모르겠어요. 알려주시겠어요?"라고 용기있게 말해 보세요. 그 한 마디가 여러분을 더 빠르게 성장시킬 것입니다.


'모름'을 인정하는 겸손함과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만날 때, 우리의 잠재력은 무한히 펼쳐집니다. 오늘부터 "난 모르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워!"라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세요.


여러분의 지식은 넓어지고, 관계는 깊어지며,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볼까요?





생각해 볼 문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엘렝코스)이 어떻게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가요?


예시 답안: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연속적인 질문을 통해 대화 상대방의 지식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발전하면서 상대방이 실제로는 그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고, 더 깊은 탐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토론해 볼 문제

소크라테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이 그 시대의 아테네 시민이었다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 것 같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시 답안: 소크라테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주된 이유는 그의 질문하는 방식이 당시 힘 있는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했기 때문이에요.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계속 질문을 해서 그들이 실제로는 잘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만들었거든요.


만약 제가 그 시대의 아테네 시민이었다면, 아마도 소크라테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을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소크라테스의 질문하는 방식이 때로는 불편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학교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처럼요. 처음에는 힘들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더 똑똑해지잖아요.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믿어요. 소크라테스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어 했을 뿐이에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우리가 학급 회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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