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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 철학

: 존재는 수학적 집합이다

by 정지영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정치적 혁명, 기술의 혁신,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우리의 삶에 깊은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본질을 깊이 탐구하면 단순한 상식을 넘어서며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디우의 사건(event) 개념: 변화의 새로운 해석

알랭 바디우는 이러한 변화를 사건(Ev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사건은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순간입니다. 인생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경험, 사랑에 빠지는 순간, 또는 혁명적인 변화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 우리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디우의 관점에서 사건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집지는 않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발명을 생각해 보세요. 인터넷은 정보 전달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지만, 그 전까지 사용되던 서류나 우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존 질서는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처럼 사건은 새로운 변화와 기존의 것이 공존하는 순간입니다.


헤겔, 니체,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도 변화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지만, 그들의 이론은 현실의 복잡한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모든 변화가 모순과 갈등을 거쳐 논리적 발전을 이루며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기차가 정해진 레일을 따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처럼, 변화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은 헤겔의 변증법적 설명으로는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는 비논리적이고 급작스러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니체는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화는 결국 동일한 사건이 순환할 뿐이며, 우리가 겪는 일들은 이미 과거에 경험한 것들이 반복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인공지능(AI)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발명이나 사회적 변혁은 단순한 반복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런 혁명적인 사건들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때문에, 니체의 이론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시간과 존재의 관계를 통해 존재가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은 마치 나무가 자라듯, 점진적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변화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인터넷 발명이나 정치적 혁명처럼 급작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이들 철학자들은 변화의 한 측면만을 설명할 뿐, 현실에서 발생하는 급격하고 비예측적인 변화를 완전히 포착하지는 못합니다.



바디우의 철학: 존재와 사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알랭 바디우는 존재(Being)와 사건(Event)이라는 개념을 통해 변화를 새롭게 설명하려 했습니다. 바디우는 수학자 칸토어의 집합론을 차용해,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독창적인 답을 제시했습니다.


바디우는 칸토어의 집합론을 철학적으로 차용해 존재를 설명합니다. 칸토어는 수학에서 집합을 여러 원소들의 모임으로 정의하며, 이 집합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형성됩니다. 바디우는 이를 통해 존재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구조라고 보았습니다. 학교라는 집합을 생각해 보면, 학생, 선생님, 교실과 같은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학교라는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각기 집합의 원소처럼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칸토어의 공집합(empty set) 개념도 바디우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집합은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은 집합을 의미합니다. 바디우는 이를 존재의 근원적 출발점으로 해석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무(無), 즉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이 개념은 건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빈 땅이 필요하듯, 아무것도 없는 공집합에서 새로운 집합이 출현할 수 있는 잠재성이 시작됩니다. 바디우는 무(無)를 모든 가능성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이 이 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칸토어의 무한성 개념도 바디우의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무한성은 단순히 크기를 넘어, 다양한 가능성의 층위를 의미합니다. 이를 쉽게 비유하자면, 바다와 우주는 모두 무한하게 넓지만, 그 무한의 차원은 서로 다릅니다. 바디우는 존재 역시 무한히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복잡한 구조입니다.



사건: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순간

바디우 철학에서 사건(Event)은 기존 질서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요소가 들어와 전체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발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때 우편과 서류는 정보 전달의 주된 방식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사건이 등장하면서 정보 전달 방식 전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서류와 우편은 더 이상 정보 전달의 핵심 수단이 아니게 되었고, 새로운 정보 전달 체계가 등장했습니다. 기존의 질서와 함께 새로운 질서가 공존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바디우에게 사건이란 바로 이러한 과정입니다. 기존의 구조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원소가 들어와 전체 집합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순간입니다. 이는 예측되지 않았던 변화로,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혁명은 기존의 정부와 제도가 새로운 혁명적 원소에 의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는 사건입니다. 이 혁명이라는 사건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적 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따라서, 바디우에게 사건은 기존 질서 안에 새로운 변화의 원소가 갑작스럽게 들어와, 전체 집합을 새롭게 정의하는 순간입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진리가 드러나고, 세계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게 됩니다.



결론

알랭 바디우는 칸토어의 집합론을 바탕으로 존재와 사건의 개념을 통해 변화의 본질을 설명했습니다. 바디우는 존재를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는 집합으로 보며, 무(無)에서 모든 존재가 출현하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사건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요소가 기존의 질서에 들어와 전체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으로, 이는 단순한 변화가 아닌 근본적 재구성을 의미합니다.


바디우의 철학은 헤겔, 니체, 하이데거와 달리,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통해 기존 질서와 새로움의 공존을 설명하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급격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바디우는 세계의 재구성 가능성을 강조하며, 변화와 새로운 진리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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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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