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 오리엔탈리즘
지난 학기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M. Butterfly」라는 1993년작 영화다. 중국계 미국인인 David Henry Hwang (1980~)이 쓴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에 관해 다루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본래는 동양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양은 비이성적이고 열등한 지역이라는 등, 서양의 동양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으로서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 논리로 쓰이게 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주중국 대사관의 외교관인 르네 갈리마르이다. 갈리마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서양인이다. 그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일본에 왔다가 일본 여자 나비 부인과 사랑에 빠진 미국 장교가 여자를 버리고 떠나자 나비 부인이 자결한다는 내용)을 보고, 동양 여자는 남성에 대해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나비 부인 역의 배우인 송 릴링을 사랑하게 된다. 르네는 송과 결혼해 아이도 낳고 20년을 함께 산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바로 송 릴링이 남자였고, 중국 정부의 간첩으로서 의도적으로 르네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르네는 어떻게 송이 남자인 사실을 모르고 20년을 같이 살 수 있었을까? 송은 르네가 관계를 가지려 할 때마다 중국에선 여자는 옷을 벗으면 안 된다고 둘러댔다. 르네는 그것을 동양 여자 특유의 수줍은 태도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관계를 가지지 않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동양 여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속지 않았을 테지만, 그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오리엔탈리즘이 그를 바보로 만든 것이다.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라고? 놀랍게도 이건 프랑스의 외교관인 베르나르 부르시코와 중국의 간첩인 스페이푸 사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왜곡된 편견이 사람의 사고에 얼마나 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거시적인 사상은 외국인과 상대할 일이 없는 한 내 일상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말에 그 생각을 깨버린 일들이 일어났다.
지난 학기, 학교의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전국의 일회용 교통카드를 보여주는 게시물에 나를 태그했다. 대구의 일회용 교통카드가 동전만한 크기의 동그란 모양인 사진을 보고 나에게 대구에서는 교통카드를 안 쓰냐고 물어본 것이다. 2년 동안 서울에서 지내며 지방을 무시하는 많은 농담을 들었다. 가령 “대구에도 코노가 있어?”, “읍내 가려면 버스 타고 흙길 한참 가야 되는 거 아냐?” 등의 농담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농담은 나도 재미있어했고, 웃고 넘겼다. 그것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일부러 놀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지방 사람으로서 불쾌감을 느꼈다. 정말로 모르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몇몇 친구들이 보수정당의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XX이는 대구 사람이니까 전 대통령을 옹호하려나.”
이 두 일을 겪고 나니 「M. Butterfly」에서 배운 오리엔탈리즘이 퍼뜩 떠올랐다. 동양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왜곡된 편견을 접한 결과 그런 황당한 일을 겪게 된 르네 갈리마르와 마찬가지로, 교통카드 안 쓰냐고 물어본 친구도 지방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보를 접했기에 그런 황당한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정치적 의견을 물어본 친구도 ‘대구 사람은 다 보수적이다.’라는 대구에 대한 편견을 가졌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들로 나는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구조의 사상이 멀고 세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작은 나라의 일상 속에서도 ‘지방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