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여행을 다녀와서
지난 주말 엄마, 아빠와 함께 아주 짧은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밤낮없이 일하는 사위를 대신해 나를 코에 바람을 넣어주는 것이 주 목적인 태교여행(?)이었다. 34살이 되어도 이토록 부모 의존적인 삶이라니...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간만에 드라이브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1박 2일 찐한 시간을 보냈다. 또 우리아빠는 여행 후에 "태교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찰떡이를 위한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미뤄두었던 "우리 아빠는요?"를 쓰기로 결심을 했다는 뭐 그런 서론이다. (엄마에 대해서도 꼭 쓸거다. 그러니까 쫌만 기다려 엄마~~)
나는 아빠를 아주 많이 닮은 딸
나의 원가족은 아빠,엄마,언니,나 이렇게 4인가족인데, 언니는 엄마의 성격을 많이 닮았고 나는 아빠의 성격을 많이 닮았다. 특히 별로 예민하지 않은 성향으로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고, 대체로 즐거우며 낙천적인 성격! 아빠와 내가 가장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은 "어제 밤에 생각하느라 고민이 되어 잠을 못잤어" 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내심 나는 아빠의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을 하며 자랐고, 나도 모르게 "그래도 아빠는 내편이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나 언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아빠는 나를 이해해주겠지 생각에 늘 내편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ㅎㅎ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아빠
아빠는 40대에 커리어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커리어를 바꾸기 전에도 그리고 바꾼 후에도 아빠는 커리어 측면에서 늘 멋진 아빠이다. 늘 내가 아빠를 놀리듯이 "아빠 오늘 2시간 밖에 일 안했어?" 라고 말할 때가 있다. 진심으로 놀리는건 당연히 아니다. 이렇게 짧게 집중력있게 일할 수 있는 아빠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고, 그간 쌓아온 내공이 어마어마하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회사원이 된지 어언 9년차가 되고보니 40년 가까이 일하면서도 늘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면서도 잘하는 아빠가 대단해 보인다.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한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 나도 얼른 아빠처럼 사랑하는 일을 찾기 위해 커리어를 잘 쌓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도 아빠를 닮았으니 40대부터 커리어에 꽃이 피려나 내심 기대가 된다. (그러려면 내공을 갈고 닦아야겠지?)
(조금은 허술한) 딸바보 아빠
딸바보 아빠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우리아빠도 60대 중에는 0.1%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학교를 데려다주고, 학원에서 픽업하고 이런 유형의 아빠는 아니지만, 아빠는 나와 언니를 정말 귀하게 키우셨다. 같이 여행을 가도 무더위를 극혐하는 딸들을 대신해 맛집에 줄을 서고, 우리 편하게 다니라고 뭐든 아빠 배낭에 바리바리 넣어주고, 고깃집에서 고기는 무조건 다 구워주고 (생각보다 안 그런 아빠들이 있다는 걸 회사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조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운전을 싫어하지만 딸이 가고 싶다면 3시간 운전해서 강원도 쯤은 흔쾌히 데려가 주는 아빠다. 밥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인 딸들과 살면서 쌓인 내공으로 누구보다 먼저 식사 후에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고, 요즘은 먼저 사다주기도 한다.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우리 아빠의 장점이다. 단 한번도 "쓸데없이 카페를 왜가?" 혹은 "그런걸 왜 먹어?" 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다.
물론 컴퓨터나 휴대폰 사용이 미숙하여 우리의 손길을 늘 필요로 하고, 가끔은 길게 자란 눈썹도 정리해 줘야할만큼 허술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빠지만!! 일일히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장점이 있는데 무슨 상관인가?
목소리도 크고, 발소리도 크고 그만큼 우리 집에서 존재감도 큰 아빠를 보면(엄마도 물론), 나도 찰떡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을 때 내 딸에게 저렇게 해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집에서 귀한 대접받아야 밖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아빠,엄마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좋은 부모가 되기 전에 더 좋은 딸이 먼저 되리라는 다짐을 해 본다.
이런 한 페이지의 짧은 글에 담기에는 장점도 많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너~무 많은 아빠지만 부족한 실력으로 적어봤다. 종종 재미있는 (혹은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생길 때마다 적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