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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yoon Kim Aug 22. 2024

우화의 강 - 마종기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우화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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