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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n 22. 2021

기자는 정말 기레기일까?

언론이 욕 먹는 이유

처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가족과 관련된 것이고 또 하나는 사회 정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창한 욕심이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가 80년대 해직기자였고 그런 아버지의 삶을 보고 듣고 자란 영향이 컸다. 두 번째는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90년대, 당시 매일 밤 9시마다 방송되는 MBC 뉴스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前 MBC 뉴스데스크 앵커 엄기영


“뚜뚜뚜 뚜.”


파란색 텔레비전 화면 가득히 뜬 아날로그시계에 초침이 움직이다 9시 정각을 가리킨다.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마저 잡아끄는 요란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뉴스가 시작한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엄기영입니다. 0월 0일 뉴스데스크 시작합니다.


나는 뉴스데스크를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보면서 정의에 대한 내 생각을 정의했다. 카메라출동은 사회 곳곳의 부조리한 현장을 생생한 화면으로 고발했고 엄기영, 정동영과 같은 스타 앵커들은 그날 주요 이슈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과 언론관이 담긴 촌철살인 클로징 멘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시대 MBC 뉴스는 여야 정치인 가릴 것 없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거침없는 날 선 보도를 이어갔다. 나이는 어렸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상스러운 욕이 아닌 품위 있는 언어로 잘못된 관행과 불의를 예리하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반했다. 단지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때였다.


그들처럼 세상에 정의를 알리고 싶다는 욕심에 20년 뒤 나는 기자가 됐지만 현실은 달랐다. (처음 이직하고 난 이후 두 번째 직장에서 조금씩 그 욕심을 해소했다.) 사회부 기자로 새벽마다 경찰서를 돌며 사건 사고 쫓기에 바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하다 보면 30분이 훌쩍 넘어갔다. 차를 타고 부산의 동쪽 끝 해운대에서 서쪽 끝 서구, 사하구, 영도구로 향했다. 세 곳의 경찰서를 차례로 돌며 간밤에 벌어진 사건사고를 취재하고 6시 정각에 경찰서 전화로 캡(경찰서 출입기자를 관리 감독하는 10년 차 이상의 선배 기자)에게 첫 보고를 했다. 캡의 휴대전화에 뜨는 유선 전화번호로 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디야?”
“네. 지금 영도서입니다.”
“보고해봐.”
“새벽 1시 10분쯤 영도구 영도동 2층짜리 단독주택 가정집 1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63살 주인 이 모씨가 연기에 질식해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고 재산피해는 가재도구 포함해서 600만 원 정도입니다. 화재원인은 소방서에서 아직 조사 중입니다.”
“다음.”


캡이 지시한 단신 기사를 서너 개 쓰고 대략 8시부터 9시까지 황금 같은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아침도 먹고 차 안에서 쪽잠도 잤다. 급하게 나오느라 씻지도 못하고 출근한 날엔 경찰서 지하에 있는 목욕탕에서 퇴직을 앞둔 나이가 지긋하신 서장과 탕 안에 마주 앉아 민망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9시가 되면 편집부 회의에서 결정된 아이템을 전달받았다. 간부들의 편집부 회의를 통과하는 뉴스 아이템의 선정 기준은 사회적인 의미보다 자극적인 소재 여부에 따라 갈렸다. 뉴스는 시청자의 신뢰가 생명이다. 그 신뢰는 시청률이란 숫자로 평가됐다. 간부는 자신의 능력을 시청률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생각한 가치 기준이 아니라 간부들이 좋아할 만한, 편집부 회의를 가볍게 통과할만한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수습생활과 사회부 초년병 시절을 거치다 보면 군대처럼 수직적인 보도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지닌 젊은 인재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오늘은 덜 욕먹어야 지란 생각으로 선배들 눈치보기에 급급해진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사회 그 어떤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가득한 곳이 언론사였다. 사설이나 논평이면 모를까 기자 개인의 가치와 의도가 기사에 반영되기란 쉽지 않다. 편집부 회의에서 뉴스 아이템이 선정되고 일선 기자들은 데스크로부터 이른바 “총을 맞는다.” 데스크가 지시한 사안을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지시 내용에는 단순히 기사 주제뿐만 아니라 흐름과 방향까지 포함된다. 다양한 시각에서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이슈마저도 간부들이 정한 대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 데스크 지시와 다르게 쓴 기사는 데스킹 과정에서 싹 뜯어고쳐진다. 가슴속에 열정이 남아있는 기자라면 자신보다 십 년 이상 기자 생활을 더한 선배를 상대로 세게 들이박고 한바탕 토론 배틀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사의 최종 수정 작업은 데스크의 고유 권한이다. 그렇다면 차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두 욕먹을 대상인가. 그들 또한 처자식을 가진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기에 조직 내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이면서 젊고 혈기가 왕성했던 그들도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봤다. 나는 편집부 회의를 주재하는 보도국장(방송)과 편집국장(신문)의 의지와 역량이야말로 해당 언론사의 보도 가치와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본다. 내가 있었던 곳만 하더라도 보도국장이 바뀌면서 뉴스의 질과 보도 흐름에 큰 차이를 보였다. 광고주 같은 자본 권력과 정권의 압박 등 정치권력으로부터 후배 기자들이 마음껏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도록 얼마만큼 리더가 버텨주느냐가 관건이다.


안타깝게도 언론사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사장에 임명된 뒤 임기를 마치고 진보 정당 국회의원이 된 기자가 있었고 진보 진영을 향해 날 선 비판이 담긴 논평을 일삼던 기자가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대변인이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간부급 기자들이 퇴사한 직후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다지 아름다운 선배의 뒷모습이 아닐뿐더러 그들이 재직 시절 기자로서 또 간부로서 뉴스 제작과 보도에 어떤 가치 판단을 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독자와 시청자들은 단순히 표면적인 기사 내용만을 보고 기사에 달린 이름의 기자를 향해 온갖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다. 행여나 자신의 정치 성향에 반하는 내용의 기사라도 썼다면 해당 기자는 태어나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욕까지 감내해야 한다.


세상 어디에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열정을 갖고 진실을 쫓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집단 논리에 젖어 대충 간부 입맛에 맞는 기사를 찾아 쓰는 기자들도 꽤 있다. 아니면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기사 쓰는 “회사원”도 많다. 적어도 내가 다닌 언론사에서 나는 세 부류의 기자들을 다 봐 왔다. 이들 모두를 향해 기레기라고 싸잡아 욕하는 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기자란 직업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정의가 아닐까. 그렇게 많은 욕을 먹어도 언론은 여전히 시민들 편에 선 워치독이다. 나는 사회가 지금처럼 투명해지기까지 기자의 공은 상당히 컸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들의 역할이 중요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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