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걷는 이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양하다. 나는 2018년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한국을 덮치기 전 문득 순례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의 전환점이었고 혼자만의 사색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마음속 한켠에 묻어뒀던 그 작은 소망을 2024년 여름에 처음 이룰 수 있었다. 직업적인 안정과 성취를 위해 쉼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낯선 미국 땅에서 3년간 공부와 일을 병행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토록 원했던 방송 기자의 꿈을 이뤘다. 호기심을 갖고 더 넓은 무대를 꿈꾸며 지역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등 세 방송사 보도국에서 8년동안 나름 열심히 일했다. 태풍 취재중 교통사고로 한달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탐사보도차 방문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선 공항 직원들에게 폭행당하며 추방당하는 일도 있었다. 취재한 기사 송출 여부를 두고 20년 이상 선배인 데스크와 신경질적인 언쟁을 벌이기도 했고 후배들과 밤새가며 취재원을 설득해 단독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내 일에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업계 특성상 정치적 편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권 언론 환경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6개월의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나서야 그렇게 좋아하던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큰 결심을 갖고 새롭게 시작한 일은 순탄치 않았다. 해외 호텔 사업은 가족간의 갈등으로 얼마가지 못해 접을 수 밖에 없었고 만학도로서 어렵게 취득한 항공 조종사 면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부딪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인생의 위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자 시절 바쁜 업무 탓에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2년 전 지금의 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
항상 늘 쫓기듯이 인생을 살아왔다. 대학 동기들이 졸업을 앞두고 하나둘씩 취업할 때 쯤 나는 과감히 미국 유학을 택하며 사회 진출을 미루었지만 남들보다 삶이 뒤쳐젔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첫 직장에서도 세 명의 신입기자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이직한 두 직장에서도 동기보다 한참 인생 선배였다. 30대 중반이 넘어 시작한 미국 비행학교 학생 시절에도 동기들보다 많게는 10살이 차이 날 정도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쉴새없이 비행하며 1년도 채 안돼 300시간의 비행시간과 함께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주경야독으로 시작한 박사과정 시절에는 서너시간만 잠을 자며 2년동안 5편의 논문을 완성했고 국립대 학위취득 요건을 충족하며 최단기간인 2년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늘 쉴새없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면서 목표를 하나씩 이뤘다. 그것이 내 인생의 원동력이었다. 처음 시작한 순례길도 마찬가지였다. 첫날 이후 20킬로미터 이상씩 걷다가 나흘째부터는 하루 4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 순례자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4시에 일어나 칠흑같은 어둠속을 홀로 걷기 시작해 다음 목적지 숙소에 오후 4시쯤 도착했다. 둘째날과 마지막날 양쪽 발목을 한번씩 접질렀는데도 불구하고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면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그것이 나였다. 근성과 부지런한 성격 탓도 있었지만 늘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적인 자세가 몸에 베여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두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나만의 속도로 사색하며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걸었다. 다른 순례자를 의식하지 않고 나를 더 들여다보면서 한발자국씩 내딛었다.
어떤 조직에서 어떤 직위를 갖고 어디에 거주하며 자가인지 전세인지, 자산이 얼마인지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차갑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자신을 잃어간다. 남들이 만든 세속적인 기준에 맞춰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며 하루를 버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좋은 학교에 진학해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좋은 배우자와 함께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목표이다. 자녀에게도 그 목표를 강요한다. 그렇다면 그 '좋은'의 의미는 정말 자신이 직접 정하고 원했던 것일까?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다. 획일화된 삶에서 벗어나 원하는 인생의 목적과 루트를 반드시 찾으라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오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힘은 오직 삶에 대한 강렬한 목적 의식과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내가 만난 몇몇의 순례자들은 인생의 목적과 방향성을 찾기 위해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순례자는 빨리 걷든 천천히 걷든 모두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간다. 출발 지점은 달라도 결국 도착하는 곳은 같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즐기며 걷다가 바르에 들러 커피 한잔으로 피로를 해소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낯선 사람에게 짧게 자신을 소개하고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는 등 순례길에서 인연을 쌓기도 한다. 짊어지고 가는 배낭 속 물건들은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어깨를 더 고달프게 만드는 것들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둘씩 불필요한 짐을 버리고 떠난다. 걷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을 섭취하며 오늘 밤 내 한몸 누울 수 있는 낡은 잠자리에 감사한다. 먹고 걷고 잠자는 단순한 일상이 주는 행복. 그리고 걱정없는 삶. 이것이 순례길이 내게 준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