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인권
첫 직장에서 수습 생활을 마치고 새벽 출근에 적응해 나갈 때였다. 출입처도 서구, 사하구, 영도구에서 동구, 부산진구, 연제구로 조정됐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울리는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정까지 이어진 회식 탓인지 일어나자마자 숙취에 시달렸다. 머리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두통과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침대에서 벗어나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벗다만 와이셔츠와 구겨진 정장 바지를 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9월 중순 초가을, 부산 도심의 새벽 도로는 한산했다. 차를 몰아 경찰서 세 곳을 돌며 간밤에 벌어진 사건 사고를 챙겼다. 앞선 두 곳에선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마지막에 들른 경찰서에서 당직팀 형사들과 앉아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밖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서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20대 청년이 양손에 수갑 찬 채 강력팀 형사들과 들어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강력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이거 뭐예요?"
"아. 이 기자. 나 지금 좀 바빠서."
강력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보이며 날 피했다. 나는 곧장 형사 과장실로 달려갔다.
"과장님. 지금 강력팀에서 잡아온 청년 저거 무슨 사건이에요?"
"아. 곤란한데."
"과장님."
"살인사건이에요."
"네?"
"술 마시고 주택에 들어가서 여자 성폭행하려다가 반항하니까 칼로 찌른 거예요."
"피해자, 피해자는 어떻게 됐어요?"
"큰 딸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엄마는 중상. 작은 딸은 경상입니다."
"네? 여자만 셋이 사는 집이에요?"
"네."
나는 캡에게 전화해서 사건을 보고했다. 캡은 촬영기자를 경찰서로 보낼 테니 같이 사건을 취재하고 회사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과장님. 저희 간단히 범인 뒷모습 스케치만 하고 인터뷰할게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에이. 부탁드릴게요."
"아직 보고서도 안 올린 거라."
"제가 일찍 와서 취재하는 건데 과장님 위에 보고서 올리시고 타사 기자들 올 때까지 저희가 계속 기다릴 순 없잖아요."
10여 분 뒤 촬영기자 모 선배가 경찰서에 도착했다. 나는 선배에게 사건 개요를 대략 설명하고 피의자를 조사하고 있는 강력팀으로 안내했다. 강력팀 형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외투 하나를 가져와 범인 머리 위에 덮었다. 선배는 내게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건넸고 환한 조명을 밝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거기 왜 들어갔어요?"
그는 말이 없었다.
"여자들만 사는 집인 거 알고 들어간 거예요?"
순간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엔 여자 손톱으로 할퀸 상처가 가득했고 살기 어린 그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피해자가 자신을 덮친 그를 밀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흔적이었다.
"고개 들지 말랬잖아!"
조서를 작성하던 강력팀 형사가 그의 목을 잡아 눌렀다. 강렬했던 그와의 눈 맞춤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혔다. 촬영기자 선배는 내 어깨를 흔들며 말없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카메라로 촬영 중이니 계속 질문하란 신호였다.
"아는 사람 집이었어요? 술은 왜 마셨어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형사과장 인터뷰를 한 뒤 사건 현장에 들러 나머지 취재와 촬영을 마쳤다. 내 생애 첫 단독 보도였지만 기분이 찝찝했다. 취재를 마치고 경찰서에서 리포트 기사가 나가는 것을 보고 회사로 복귀하던 찰나였다. 보도전문채널, 신문사, 타 방송사 기자들이 한꺼번에 경찰서로 우르르 몰려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스무 살 어린 청년을 불러다가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실상에 대해 꾸짖듯 질문할게 뻔했다.
그때는 그랬다. 경찰에서 제법 규모가 큰 사건을 해결하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렸고 그것을 보고 찾아간 기자들은 피의자를 보여달라고 경찰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특히 방송기자들의 요구가 거셌다. 1분 30초짜리 리포트 화면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건 현장과 범죄 내용, 사건을 해결한 경찰 인터뷰만으로는 부족했다. 사건 스토리의 주인공인 피의자의 모습과 인터뷰가 필요했다. 경찰은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나로 똘똘 뭉친 젊은 출입기자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피의자를 유치장에서 꺼내왔다. 심지어 불구속된 피의자를 추가 조사 목적으로 경찰서로 불러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살인, 성폭행, 사기, 방화 등 온갖 갖가지 범죄를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인권은 존재한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주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여론의 요구에 따라 공개돼 왔다.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1.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 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①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 사건
②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③ 국민의 알 권리와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익을 위해 필요할 때
④ 피의자가 만 19세 이상으로 청소년이 아닌 경우
4가지의 조건에 모두 해당해야 신상정보 공개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된다.
2.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신상공개 조건이 이처럼 복잡한 이유는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상공개 규정은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흉악범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2010년 4월 신설됐다고 한다. 당시 관련 조항이 없었음에도 언론을 통해 강호순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면서 명확한 기준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피의자뿐만이 아니었다. 대형 화재 사건이나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유가족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대야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그들에게 다가가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란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지는 나 자신이 밉고 싫었다. 가끔 몇몇 피해자 가족들은 누군가에게 참고 있던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마음에 기자에게 갖은 욕을 퍼붓기도 했다. 심할 땐 어린 기자들이 그들에게 멱살까지 잡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차라리 한대 세게 맞는 편이 오히려 죄책감을 더는 기분마저 들어 마음이 한결 나을 것 같았다. 데스크 자리에 앉아 있는 간부들은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된 햇병아리 사건팀 기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 20년 전 자신들도 그렇게 취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한 거라 믿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회사 선배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선배는 내게 딱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걸 못하면 기자일 관둬야지. 정말 못할 짓이지만 그게 기자 일이야."
뉴스는 오로지 시청자를 위해 만든다. 사건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시키기 위해 유가족의 심정마저 담아내야 하는 게 기자의 일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지금 최소한 피의자와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서 뉴스를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언론 윤리 또한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