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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현 Jun 01. 2022

너는 뜨겁고, 나는 너를 삼킨다.

영화 베티 블루 37.2 리뷰

[영화 베티 블루 37.2 리뷰] 너는 뜨겁고, 나는 너를 삼킨다.




​1. Information

베티 블루 37.2 (프랑스, 184분, 장 자끄 베넥스)

별 볼 일 없는 서른 살의 작가 지망생 ‘조그’와 대담하고 관능적인 여인 ‘베티’의 순수하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이야기. <네이버 영화>


2. Recommendation

스스로는 절제하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타인에게는 관대한 편이라 사실 어떤 형태의 사랑(또는 인간)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3. Appreciation review

tip.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리검사 워크숍에서 영화 베티 블루 37.2를 처음 접했다. 경계성 성격장애에 대한 이론 설명이 다소 늘어지자, 교수님이 영화를 함께 추천해 준 것이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경계성 성격장애의 일상생활과 가장 유사합니다.”


이 영화는 내게 인물에 대해 몰입하고,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끔 영화 시청 습관을 바꿔준 작품이다.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나의 주변 실존 인물들에게 다소 관대 해지는 결과를 주었기에 이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첫 번째로 발행하고자 한다.



무려 37년이 된 이 영화의 색감은 그야말로 웜톤(warm tone)이다. 시작부터 이어지는 베이지 피부색의 향연, 전라와 정사의 장면들은 이 영화의 톤을 더욱 태양에 가깝게 만든다. 37.2도가 아니라 43도의 열탕에서라도 이 사랑이라면 기꺼이 뛰어들 것 같은 남자 주인공 조르그와 여자 주인공 베티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달라고 노력하는 듯 웜톤 사이사이 높은 명도와 채도의 색감을 잉크처럼 떨어뜨려 마치 생동한 그림을 보듯 느끼게 한다.



베티는 순화하자면 절제하지 않고, 극단적이며, 순수한 여성이다. 베티는 자신에게 해가 될 때 일단 지른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제멋대로 살다 너무도 사랑하는 조르그를 만나, 이젠 연인에게 해가 되는 상황 또한 못 참고 욕하고 던지고 부수고 불 질러서 그녀만의 파괴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우연히 발견한 그의 창작소설은 그녀에게 더욱 사랑과 파괴의 명분을 주게 되고, 마침 현실이 두려워 꿈을 접은 조르그의 집에 불을 질러버림으로써 더 이상 그가 이 비루한 현실에 남지 않도록 한다. 이상의 세계로 연인을 끌어올리는 여자. 영화 속 베티의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다.

현실을 박차고 나가면 이제 꿈을 향해 내딛을 성장영화여야 하지만, 결말은 베티의 광기와 함께 깊은 슬픔으로 진행된다. 출판사로부터의 거절과 조르그가 받은 멸시, 믿었던 임신의 실패라는 몇 가지 이벤트들은 때마침 울고 싶던 베티에게 세상이 뺨을 때리듯 적시의 고통을 안겨주었고, 그녀는 폭주했다.

베티가 원하는 대로 조르그가 성공하는 소설가가 되고, 베티가 임신을 하여 조르그를 똑 닮은 아이를 낳았다 하더라도 베티의 절망감을 피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 그녀는 하나를 이루면 반드시 또 하나가 결핍되는 듯한 양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인물이었다.


영화는 직관적인 편이라 특별히 디테일을 해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사랑을 확인케 하고,

베티의 눈을 그녀 스스로가 멀게 하여 ‘맹목적임’을 설명하였으며,

영혼의 자유를 위해 조르그가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탈출(죽음)시킴으로 해방시켜준다.

다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허구의 예술작품 속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는 잠깐의 수고로움은 있을 수 있다.

세상은 답답하고 사람들은 이상하다. 베티는 이 점이 늘 불안하고 속이 채워지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조르그는 조건 없이 그녀를 사랑한다. 연인의 치명적인 결함을 사랑의 테두리 안에 어떻게 스며들게 할 수 있는가, 조르그는 마치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는 사랑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고 춤을 추는 듯한 행위들로 베티를 지지하고 애정 한다. 맹목적인 베티와 조건 없는 조르그가 “너네 이렇게라도 느껴봐, 37.2도”라고 하는 것 같고, 차갑게 식어가는 우리들의 온도를 자각하게 한다.





4. Postscript


와인 한 잔 할까?
나의 컵에 기꺼이 나누어 준 것은
네가 갖고 있던 여름이거나, 태양이었다.
내가 삼킨 것은 처음엔 시원하였으나 이윽고
뜨겁게 복부까지 들어앉았다.
나는 내 속을 영영 달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끝까지 삼켰다.

너는 뜨겁고, 나는 삼킨다.



5. Blending

이 영화와 함께 또 다른 영화 ‘그녀에게’(2003,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추천합니다.

‘그녀에게’는 스페인 영화이자, 영국 bbc선정 위대한 영화 100선에 올라 수작으로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코마 상태가 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느끼는 2명의 남자 주인공의 일방적이면서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다룬 영화입니다.



조르그와 베니뇨(그녀에게, 사진 좌측 상단) 두 주인공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저지르는 행위들은 상대방의 동의가 없어 불편하고, 그래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제목에서 그렇듯 그녀에게 일방적인 (Talk to her) 부분들이 있습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개념을 어디까지 정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결말이 닫혀있음에도 ‘이게 사랑 맞아?’라고 다시 묻고 싶게 합니다. 그리고 흔히 예술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게끔 영화로서 나타낼 수 있는 표현 수준이 높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음악, 색감, 주제의식, 인간관 등), 서사에 집중하다 보면 카메라가 극 중 인물들을 윤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차이점은, 베티 블루 37.2가 감정과 행위 표현에 있어 직관적이었다면, 그녀에게는 보조관념(반복 장면, 영상 삽입 등)으로 주인공들의 복잡한 감정과 번뇌, 행위를 묘사하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바디감이 묵직하여 계속 ‘내가 대체 뭘 보고 뭘 느낀 건지’에 대해 곱씹게 되는 힘이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한 인간이 어떤 지점에서 느낀 내적 갈등을 따라가다 보면 “어찌 되었든 이런 삶이 있었다.”라는 소회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 예고

다음 리뷰는 영화 ‘윤희에게’입니다. 첫사랑의 정의를 사전적 의미에 국한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괜찮을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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