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했지, 너 보려고

by 김이현

오늘의 브루잉(brewing) : 영화 ‘헤어질 결심’




각자의 세계가 있어 서로가 사는 곳에서는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


진심을 전하는 데 있어 나는 감정과 관계의 현재에 서 있고, 그는 스스로의 내면을 길게 들여다보고 해석한 후에 결론을 말했다. 나는 떠오른 마음을 곧장 건네는 습관이 있다면, 그는 한 번 정제하고 다듬어 책임이 닿은 문장을 내게 전했다. 나는 그의 속도보다 먼저 다가가 숨가쁘게 말했고, 그는 숨을 고르며 답을 하곤 했었다. 마치 숨을 쉬는 연습이라도 하듯, 감정이 말로 나올 때까지 그는 나보다 어떤 공정을 더 거치는 것 같았다.

나는 파도는 바다의 일이라 믿었고, 그는 깊고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게”, “항상 변하지 않을게”라고 약속하며 감동을 준다. 그는 “서투르더라도, 부족하지만, 항상 같을 순 없겠지만”이라고 말했다. 약속하지 않지만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으로 애쓰는 사람. 그것이 그가 사랑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한 번은 그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 체력도 마음도 버거워 보였다. 그는 나중에서야 “사실 마음이 급하고 피곤해서 한숨이 나왔어, 그 정도로 힘들었는데 너를 쉽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 사실 쉬겠다고 하면 네가 이해해 줬을 텐데, 왜 말도 못하고 앓고 있는지”라고 했다.


내 세계의 언어로라면 그 자리에서 나를 감동시킬 대사는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였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늘 스스로를 다잡으며 차분하려 했던 그의 언어는 내게 번역이 되어 닿았다.

“무리했지, 너 보려고“


나는 왠지 너의 세계에서 저 말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표현인 것 같았다. 다른 사전을 쓰는 것처럼





오늘 추출할 영화는

서로 번역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임을 알 수 있는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
한국, 멜로
2022.06.29, 138분


언어가 다르면 소통이 쉽지 않은데, 상대방의 침묵조차 각자의 언어로 상상하다보니 말의 층위가 생겨 그 공백에는 오해와 욕망이 자리 잡는다. 해준(박해일)은 서래(탕웨이)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의심을 거두지 못하지만 동시에 신비로운 그녀의 패턴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는 서래가 자신과 같은 종족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둘 다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꼿꼿하다.

사실 둘은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더 많다. 국적이 다를 뿐 아니라 해준은 신중하고 서래는 망설임 없이 다가간다. 해준은 질서와 원칙, 자부심으로 살고 서래는 폭풍우와 같이 위험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특히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보니 해준과 서래는 서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번역기나 AI, 문자를 거쳐 전달될 경우에 의도가 미세하게 어긋나기도 해서, 같은 마음이 다르게 닿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해준은 서래를 관찰하며 자신의 눈에 그녀를 담으려 애쓰고, 서래는 해준이 편하게 잠들기만을 바란다.

해준이 서래의 사건을 종결시키고-종결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숨소리를 맞추며 바다로 갔다. 해준은 비로소 깊은 잠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가수 정훈희의 안개를 듣고 영화의 모티프를 떠올렸다고 한다.

연기인지 안개인지 희미하고,

청색인지 녹색인지 혼란하다.

정체를 모르는 게 두려울까, 연약한 내가 흔들리는 것이 두려울까, 바람에게 안개를 거둬달라고 하는 노래 속 화자는 그럼에도 분명 있는 듯 없는 안개 속에 눈을 뜨고 남기를 택한다.


해준은 무리하게 수사를 종결시켰고, 서래는 무리하게 이포로 향했다.


헤어질 결심은 사실 자연히 인연을 놓거나 통상적 방식으로 헤어질 수 없을 때, 내 선에서 사랑을 완결시키겠다는 다짐이다. 완결되었으므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준과 서래는 다시 서로가 같은 의도를 가지고 다른 언어로 상대방에게 말한다. 내가 그렇게 나쁜지, 내가 그렇게 만만한지, 해준은 자부심을 잃고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말하고, 서래는 다시 편하게 잠이 들라고 말한다.


고백을 다한 서래는 가장 믿음직한 남자에게 유품을 맡기고 자신의 사랑을 바다에 버렸다.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했다. 해준에게는 평생 태울 수 없는 미결이겠지만,

서래는 그녀의 세계에서 자신의 언어로 마침내 단일한 완결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