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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Dec 07. 2020

포기를 잘하는 사람하고는 안 맞아

2020년 9월 30일 오전 02:09

S는 포기를 잘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역시 끈기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해도 금방 금방 그만두고 다른 것을 찾아 시작하려 했다. 그가 유일하게 끈질기게 머무른 자리는 그의 가족과 친구 주변이 전부일 정도였다. 고등학교도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봤고, 대학교도 한 번은 편입을 하고, 전과도 두 번이나 고민하고 실패할 정도였다. 그래, 그는 그런 변덕을 부려도 삶의 기울기가 변하지 않을 정도로 무척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오기도 했다. 철부지. 친구들도 그가 철부지라는 것을 면전에서 얘기했고, 그도 그 소리에 하하 웃으며 맞아 난 철부지야, 소주 한잔만큼 철부지, 쉽게 웃으며 잔을 들이킬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진 않았다. 그는 일단 자신의 흥미와 집중력이 휘둘리는 것에 신경 쓰는 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일희일비에도 귀 기울이고 공감했다. 그는 자신의 철부지 경력을 자랑처럼 쉽게 얘기했고 그의 경험담은 다채로워서 재미있었다. 그는 그 무엇에도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주워듣고 알아먹은 것들이 많아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의 미소는 환했다. 그의 명랑하고 건전한 마음씨와 유머 감각과 가벼운 사회성을 누구든 굳이 싫어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그가 친구의 친구라며 술자리 합석으로 만난 D와 만났다.

D는 S를 일화를 통해 몇 번이고 들어 본 적 있었다. S는 "저번에 카페 차리겠다고 사업 계획 세우다가 에세이스트 된다고 매일 같이 동네 카페에서 죽 치고 앉아 노트북을 노려보다가, 베이커리를 차려보겠다고 집에서 제과제빵을 연습하는 애" 같은 레퍼토리로 유명했다.

D는 S가 신기했다. D는 포기를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포기하면 무너질 것으로 가득한 일생을 떠받치며 살아왔다. D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적성이며 진로를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점수에 맞는 지방 국립대에 들어갔다. D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시급의 아르바이트를 다니다가 그보다 나은 시급의 아르바이트로 옮기는 것으로 이력을 쌓아왔다. D는 그 와중에도 스펙을 쌓아야 취업을 한다는 말에 스터디 그룹에 들어갔다. 하고 싶은 공부는 아니었지만 해야 할 공부들을 함께 하는 그룹이었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아르바이트와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의 사람들이었다. D는 차창을 통해 밖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선선한 공기를 얼굴로 느낄 수 있는 버스를 좋아했지만 수업시간과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추느라 무슨 스케줄이 끝나면 바로 다음 스케줄에 맞춰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을 몇 번이고 힐끔거렸다.

오늘도 D는 먹고 싶은 한상 차림보단 편의점에서 빨리 때우면서도 맛이 없지는 않을 끼니를 먹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침 근처라는 친구에게 잡혀 S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S의 변덕, 그런 삶은 들어본 적은 있어도 해본 적은 없었고, 만나본 적도 드물었다.

S는 D가 마음에 들었다. S는 맞장구를 치고 밝게 웃는 D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D는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고 그것도 어떤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D는 S가 신기했다. S는 자신이 언젠가 가고 싶은 그 샌프란시스코와 홍콩에 각각 1번과 3번 다녀왔다고 했다. S는 스마트폰 앨범에 저장해놓은 그 도시들에서 촬영된 이런저런 영화 장면들을 생각했다. 조금은 부러웠다. S는 자신이 일하던 팬시 가게 브랜드의 사장이 차고 있던 시계를 찼다. 하지만 S의 것은 진짜였다. S는 여러 나라의 인사말을 할 줄 알았다. 그는 정말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D는 오늘이 아니면 볼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 그를 대하는데 거리낌은 딱히 없었다. 무엇보다도, 테이블에서 가장 목소리가 명랑하고 잦은 사람이 S였다. S를 계속 바라보게 됐다.

술자리가 파하는 어느 막차 시간이 되고, D는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S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S는 차가 있었다. D는 거절했다. S는 술을 마셨다. D는 그걸 지적했다. 대리라도 부르라고 말하고 빙긋 웃었다. 오늘 즐거웠다고 D는 친구에게 잘 들어가라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D는 S의 연락을 받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D는 어제 새벽에 잘 들어갔으냐, 고 묻는 S의 연락을 봤다. 친구가 연락처를 알려줬다고 했다. D는 그 메시지가 진작 새벽에 왔던 메시지기에 답장을 하기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그저 폰을 닫는다. D는 S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도 바빴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고, 스터디를 준비하고, 아르바이트로 몸을 옮긴 후,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다가, 불현듯 S의 연락을 다시 한번 보게 됐다.

S는 다음 날 D의 생각을 부쩍 했다. 베이킹 연습을 하면서도 생각했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사다가 그걸 책장에 꽂아두면서도 생각했다. 좋아하는 펜들로 좋아하는 문구들을 베껴 쓰고, 좋아하는 음식점에서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생각했다. 자신은 한 얘기가 많은데 D에 대해서는 별로 들은 것이 없다. 아마 D는 성실하다. 한 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고 들었고 언제나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D는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와 스터디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집도 먼데 지각도 한번 안 하면서 그런 일상을 튼튼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못해도 본전, 알고 지내기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S는 D에게 한번 더 연락한다. 바쁜가 봐요?

D는 네, 오늘도 바쁘네요. 어젠 잘 들어가셨어요,라고 가볍게 답장한다. 오늘의 해야 할 일들은 다 끝났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타고 음악을 들으면서 들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환승 한번 없이 느긋하게 도시를 두르고 돌며 가는 버스 제일 앞좌석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하나 듣다가 다음 곡으로 금방 금방 전환하면서, 바깥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들의 바쁜 하루에 방금까지도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때 S의 답장이 온다. D는 지금은 버스 안과 차창 밖 외에는 신경 쓸 것이 없다. 편하고 가볍게, 심심하니까 답장을 시작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탄다. 밥은 드셨어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그 동네에 그거 잘하는 집 있는데. 그렇구나. 이제 들어가시면 뭐하세요. 혼자 영화 보거나 산책하거나 하다가 자려고요. 아니면 그냥 자거나. 영화 좋아하시는구나. 뭐 좋아하세요. 저도 그 영화 봤는데.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 영화에 그 장면에 나오는 거기 가봤는데. 그랬어요? 어땠어요?

D는 집에 도착하고, 자신의 하루를 정리한다. 샤워 후에 음악을 듣다가,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S가 친구를 요청한 것을 본다. S의 잘생긴 외모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D는 어려울 것 없이 그 요청을 수락한다. 괜히 자신도 좀 더 잘 나온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그 후로 D의 일상은 3주 정도 계속 바빴다. 여유가 있고 숨을 돌릴만한 시간은 편의점에서 신제품을 시험 삼아 먹어보고 낭패감을 느꼈을 때뿐이었다.

-아깝다 씨발, 내 돈 2,100원.

간단하게 올린 신제품의 찢어지고 남은 음식 사진과 코멘트에 S가 '좋아요'를 눌렀다.

-나도 먹어보고 같이 욕해봐야지.

S의 댓글에 D는 살짝 웃었다. D는 S의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쭉 스크롤했다. 매일 2장 정도씩은 꾸준히 올라오는 S의 사진은 세련됐거나 화려했다. 그가 어제 만든 이름도 모르는 빵의 레시피와, 켈리그래피로 쓴 온갖 소설 문구들, 3시간은 찍고 2시간은 편집에 공들인 것 같은 Vlog들을 보며 마음에 드는 것에 두어 번 '좋아요'를 눌렀다. 댓글을 다는 S의 친구들도 세련됐거나 화려한 사람들이었다.

D는 S의 친구들을 몇 명 정도 보다가 아르바이트 저녁 휴식 시간이 끝난 것을 아슬아슬하게 눈치챘다. 황급히 복귀해 마감 업무를 끝낼 때까지 D는 바빴다. 아르바이트 동료들에게 건너편 편의점의 신제품은 먹지 말라며 신신당부하고 퇴근했다.

퇴근길의 버스 안에서 S가 보낸 메시지를 봤다. 바쁘냐고 물었다. 바빴다, 고 대답했다. S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답장이 왔다. 마침 집 근처인데 맥주 한잔하겠냐고 했다. 마침 금요일이었다. D는 네가 사는 거냐, 고 물어봤다.

S는 아침부터 쉬면서 저녁만을 준비해 온 사람처럼 기운 넘치게 D를 즐겁게 한다. D가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을 때는 온갖 재밌던 일화들을 말한다. D가 무언가 얘기를 꺼내면 S는 잘 듣는다. 잘 반응하고, 잘 공감한다. D는 일순간 S와 자신이 공통점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잘 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D는 그 바쁘고 화려하고 세련된 S가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온 집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에, 그 기회비용만큼의 일종의 가치를 느낀다. 그런 위로를 느낀다.

S는 D의 초췌하고 마른 손목에 난 찰과상의 흔적을 본다. 그건 8일 전에 D가 테이블을 끌다가 나버린 것이다. S는 굳이 묻지 않는다. 여기저기 온갖 사람들 속에서 굴러먹다가 온 S는, 외모나 상처 같은 것에 대해 먼저 묻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D의 하얀 운동화에 있는 튄 커피 자국 같은 것들도 한두 번 보이지만 S는 되도록 D의 눈에 집중한다. D를 좋아하고 싶다. S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S가 샀다. 손사래를 치는 D에게 S가 고개를 장난스레 가로젓는다. 너는 오늘 고생하고 나랑 놀아준 거고, 난 하루 종일 놀다가 너 만나러 온 거니까, 내가 내야 한다고. 그렇게 S와 D는 적당한 시간에 헤어진다. D는 S에게 대리를 부르라며 2만 원을 쥐어준다. S는 그걸 거절하면 실례라는 것을 알기에 나중에는 술 말고 밥을 사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래, 밥 좋지, D는 선선하게 대답한다.

S와 D는 그 후로 두어 번 서로가 한가한 점심시간에 만난다. D의 대학교 근처에 있는, D는 가본 적이 없는 깔끔하고 독특한 음식점 같은 데서 둘은 만난다. 그건 평일일 때도 있고, 주말일 때도 있다. 그 사이에 둘은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도 몇 차례 왕래한다. S가 기가 막히게 잘 찍어준 D의 사진은 D의 새로운 프로필 사진이 된다.

S의 친구가 S에게 유명한 연예인의 콘서트 티켓을 구해준다. S는 D에게 함께 가자고 말한다. D는 갈 수 없다. 아르바이트만 있다면 어떻게든 일정을 맞출 수 있었겠지만, 그 날 그 시간대에는 스터디도 있다. 둘 다 옮기면 다음 주가 너무 부담스러워진다. D는 쉽게 승낙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난 너를 제일 먼저 찾았어, 그것만 기억해줘!라고, S가 너스레를 떤다.

S는 콘서트에 가지 않는다. 다른 친구에게 그 표를 양보한다. S는 진심으로 D를 좋아하게 됐고, D가 없는 콘서트에서 사진을 찍어 그걸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거나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S는 D의 일과가 끝난 날 그의 집 근처에서 D에게 자신이 만든 빵을 한 아름 안겨주고 돌아간다.

D는 언젠가 자신이 S의 소셜 네트워크 게시물 중에서 '좋아요'를 눌렀던, 이름도 모를 그 빵이 가득 담긴 봉투를 안고 집에 돌아간다. 엘리베이터의 짧은 순간에 그 빵들의 온기를 느끼고 그 안을 내려다본다. D는 들어가서 손을 씻고 그 빵을 한입 베어 문다.

맛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식감이다. D는 내일 수업에 제출할 과제물들을 정리하며 그 빵을 하나씩 먹는다.

그게 2020년 4월이었다. 그리고 2020년 5월이 됐다.

D는 한가해졌다. 세상을 휩싸는 역병이 D의 스케줄에도 음산한 영향력을 준다. D는 갑자기 아르바이트가 줄어든다. 학교 수업은 거진 사이버 강의가 됐고, 스터디도 무산됐다. 학교 근처에서 했기에 겸사겸사 가능했던 아르바이트는, 이젠 근무시간도 줄어들어 거의 교통비와 식비만큼만 벌게 된다. D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된 D는 부쩍 소셜 네트워크를 많이 보게 된다.

S는 심심해졌다. 올해 봄부터 계획한 4박 5일의 해외여행이 취소됐다. 친구들도 만나기 힘들어졌다. S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동영상 따위를 계속 재생시켜 놓고 요가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베이킹을 연습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D가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좋아요'를 누르는 빈도가 잦아진다. 다음 주쯤에 잠깐만 D를 만나러 갈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고 머지않아 D의 동네, 함께 자주 마시던 맥주집에서 감염자 동선이 파악되고, S는 D에게 당분간은 연락을 자주 하자고 한다.

D는 점점 생활비가 빠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교통비는 아끼게 됐지만 아르바이트도 그만뒀고, 집에만 있어도 식비는 계속 나간다. 학자금 대출 이자도 나간다. 안 쓰던 전자기기며 중고물품을 인터넷에 몇 번 팔았다. 하지만 외출을 하기 위해 마스크를 구하려면 다시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 근처의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D는 배달 아르바이트에서 엄청나게 많은 구인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잠깐만 운동 삼아 움직여 다니기로 결심한다.

S는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서툴지만 손에 굳은살이 배이면 그것도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S는 또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인터넷에 강연을 공유했기 때문에 더 할만하다고 느꼈다. 집 안에 있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핑계라도 있기에 숨 쉴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S가 D의 연락이 뜸해진 것을 눈치챈 것은 3주 정도 지난 뒤였다. 그가 더 이상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올리지 않자 궁금해진 S는 직접 연락한다. D는 요즘 새로 구한 아르바이트로 부쩍 바빠졌다고 했다. S는 그에게 힘내라고 카페라테와 자양강장제를 메신저 쿠폰으로 보낸다.

D는 매일 녹초가 된다. 그에게 이 일은 맞지 않는 것 같다. 대학교 수업 시간대에 안 맞아 쉬려고 하면 아예 그만두라는 사업주의 으름장에 그는 생전 안 해보던 결석도 두어 번 했다. 이게 맞는 걸까. 그는 무엇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한쪽을 양자택일해야 하는 시기에,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포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수업은 재수강할 수 있지만 생활비는 하루를 비우면 다음날 두배로 메꿔야 했다. 너무 피곤해서 끼니도 거르고 잠드는 날도 있었다. 다음날 졸음운전이라도 하지 않으려면 잠은 자 둬야 했다.

S는 기타 공부를 포기했다. 금방 한 곡 정도는 연주하겠거니 했는데 쥐는 법부터 배우기가 귀찮아졌다. 방 한편에 기타에 가벼운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소설 쓰기도 질려서 금방 손에서 놨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 소식을 듣고 그걸 주문했지만 요즘 너무 인기가 많아서 바로 배송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시 베이킹이나 해볼까 하고, 레시피를 뒤적거리다가 마침 D에게 해줬던 그 빵이 생각나서 팔목을 걷어붙인다.

D는 문득 찾아와서 한아름 자신에게 빵을 안기는 S가 반갑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둘 다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D는 다르게 할 말이 없어서 겸연쩍게 S에게 고맙다고 했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S는 요즘 유행하는 게임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직 배송이 오지 못한다고. 그 게임에 대해서 다들 얘기하는 웃긴 자료 같은 것들을 보여준다. D는 그 게임을 몰라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일단 S가 온 것이 반가워 가볍게 웃어준다. S는 악기를 배우는 것을 시도했다가 그만둔 얘기를 한다. D는 언젠가 자신이 기타를 배우고 싶어 했던 것을 기억한다. D는 S의 차 뒤꽁무니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왔다. S의 가장 최근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가 방금 해준 빵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S와 D는 그 이후로 연락하지 않았다. S는 D를 아주 좋게 기억하고 있다. D에게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원한다. 몇 번 연락을 해줬지만 D의 답장이 아주 간단하고 뜸했다. D는 요즘 소셜 네트워크에 게시물을 올리지도 않는다. S는 답 없는 D에게 답장하지 않아도 될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낸다.

-언제나 포기를 모르는 아주 강인한 너를 항상 응원하고 있어. 힘내

D는 그 메시지를 보고 힘이 나지 않았다. 그저,

"난 정말 포기를 모르는 사람일까."

그리고 그렇다면, 넌 포기를 그렇게나 잘하는데 왜 그렇게 빛날까. 네가 그만둔 것들의 가짓수는 왜 내가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보다 더 풍부할까. D는 그 순간 생각을 관뒀다. D는 S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에만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S는 포기를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S는 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어서였다. D는, 자신은, 포기를 안 하는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 포기를 못하는 사람에 불과한데 자신을 추켜세우는 S가 좋았지만 불편했기 때문이다. 쑥스러웠지만 모르게 화가 났기 때문이다.

요즘도 S는 D를 기억하고 그의 하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D는 S가 기억날 때마다 마스크를 끌어내려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난 취미가 많은 사람이랑은 안 맞아.

S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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