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보험학과를 나왔는데, 광고회사를 간다고?

응, 그런데 일단 손해사정사 자격증 따려고 가는거야.

by 제리뽀

대학 4년.

학업과 자격증, 인턴생활과 각종 대외활동으로 한창 분주할 때다.

취직을 준비하고, 자기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도약의 시기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달랐다.

지방에서 5시간에 걸친 통학을 하고, 평일과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통장을 보고 내 경제를 굴리고.

부모님께서 무언가 지원을 해주지 않는 삶을 개미처럼 보내고 있었다.


교수님들은 매번 눈앞의 이익을 쫓지 말고 공부를 하라고 했지만,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나름의 '생존'이었던 것을... 아마 교수님들은 아직도 잘 이해 못하실거다.

아니, 어쩌면 나름의 이해를 해보셨지만서도 못내 안타까워서 그러셨을수도 있겠다.


PC방, 카페, 편의점, 마트 판촉, 아이스크림 가게, 아울렛, 편집샵, 화장품가게, 놀이공원 등등... 정말 안해본 알바가 없었다.

남들은 유학이니 뭐니 돈들여 견식을 넓힌다는데, 나는 알바로 돈벌며 세상구경을 하고 있었으니 원.


여튼 공부도 안하고 알바나 하고, 대학은 졸업장이나 따러 다니는건지 뭔지 종종 보이는 학생이 나였다.

그런 나에게도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한줄기 빛과도 같은 '손해사정사' 자격증이었다.


2학년 즈음, 동기들과 서울 나들이 겸 응시를 해봤는데 놀랍게도 여러개의 과목을 통틀어 3-4개 차이로 1차를 떨어졌던 것이다.

별 공부를 안하고 놀러가듯 친 시험 결과에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와, 이거 해볼만 하겠는데?'


손해사정사 자격증만 따면 4년간 생활고로 얼룩진 학창생활도 막판 뒤집기를 하고, 내 인생에도 화려한 꽃길이 펼쳐질 것 같은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4학년이 되고, 나는 한달 정도 바짝 스퍼트를 올려 공부한 결과 1차 합격을 해냈다.


그당시 나의 하루는 이랬다.

2시간 반 등교 -> 수업 -> 자격증 공부 -> 2시간 반 하교 -> 저녁 알바


주변에서는 저래서 뭐가 되겠냐고들 했지만 당당하게 1차 합격을 해낸 것이다.

나는 그때, 이 길이 정말 내 길임을 찰떡같이 믿었다.


그런데... 대학을 다닐 땐 그러려니 했는데 졸업을 하고 나니, 더 많은 알바를 할 수 있었다.

더 긴 시간, 더 많은 돈을 주는 알바.


나는 그래서 조금 더 돈을 많이 주는, 거의 정규직과 비슷한 마트 판촉 알바를 시작했다.

평일에도 물류 관리차 출근하고,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에는 판촉을 하는 일이다.


왜 그 시간에 안하고 알바를 했냐고 묻는다면 매우 솔직하게, 방에 혼자 붙어있기가 너무너무 싫었다. 학교까지 가려면 또 왕복 5시간인데, 졸업을 하고 거기를 또 가는건 너무 경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고로, 어차피 8시간 앉아있으면 3시간 공부할거니까 5시간 돈벌고 오자는 생각이 강했다.

나가서 웃고 떠들고, 좋은 음식은 아니라도 여럿이 사먹고 열심히 일하다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성향이기도 했다.


참 소소하게 행복한 사람이었다, 싶다.


게다가 1차도 적은 학업시간으로 붙었으니, 나름대로 자만심이 매우 컸던게 문제였다.


그런데, 한달 두달... 그렇게 보내다 보니 2차 시험 난이도는 점점 더 높은 절벽으로 다가오고 내 아르바이트는 내 체력을 갉아먹는 '일'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럴 것 같으면 근처 사무직으로 들어가서, 최저시급이더라도 앉아서 일하며 체력을 보전하면서 자격증을 준비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 그런데... 마침 보도기사원고를 적어주던 마케팅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고 하네?

어? 우리집에서 버스로 15분이네...?


그렇다. 그렇게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그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 이제 앉아서 일하니까 체력 보전 하고, 맘 편하게 돈 벌고! 그걸로 자격증 따고! 자 인생 가보자고!!'


아마 사무 지원이라던가 조금 간단한 업무를 맡았다면 이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맡은 업무는 컨텐츠를 창작하는 쪽에 가까웠다.

몸편히 일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하루종일 이런저런 글도 쓰고 창의성도 발휘해야했던 것이다.


한달은 내 몸이 적응을 못해서 그러려니 했다.

왜냐하면, 업무는 별 피드백도 안 들을 정도로 원만하게 수행해냈고 차곡차곡 실적이 쌓였기 때문이다.

그냥 루틴이 바뀌었으니 피곤해서 공부가 손에 안잡히나 했다.


두달도 괜찮았다.

세달째도 그럴 수 있지 싶었는데,

네달째에 정신이 확 들었다.


'아, 이거 낮에 머리 엄청 굴리고 나면 밤에 완전히 다른 계열 자격증 공부 하긴 글렀다.'


차라리 졸업하며 허한 마음에 여기저기 면접봤던 보험회사 자회사나 하청사의 지급심사직을 하는 편이 업무 강도가 높더라도 손해사정사 시험에 더 도움이 됐겠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다만, 관련 회사가 우연찮게도 본가와 멀어서... 단순 이 업무를 위한 '이사'까지는 고려하지 못했기에 포기했었다.)


그때, 나는 결정해야했다.


'손해사정사'를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만 놓고보자면 나는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포기를 했다.

포기를 하지 않은 (예비) 손해사정사의 상태에 오래 매달려 있으면서도, 루틴처럼 회사에 출근하고 일하고 적은 월급을 받는 삶에 그대로 머물렀다.


이제 와서 되짚어보면 완전히 주객전도가 따로 없었다.

나름의 변명을 해보자면 광고회사 일이 꽤 적성에 맞았던게 제일 큰 문제라면 문제였을거다.


아예 안맞아서 쫓겨났으면 나는 이길밖에 없소! 하고 공부를 했을텐데...

뭣하러 사교성은 좋고 외향적이고 곧잘 이것저것 하는지...


그뒤로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나를 거쳐갔다.

하고싶은 것에 도전아닌 도전을 했다가 말아먹기도 하고, 별 생각도 없었던 일이 나를 이끌기도 하고.


이건 나중에 하나씩 후술하고 싶다.


지금은 작가 감투를 쓰고 이런저런 글을 쓰며 돈을 번다.

벌써 4년에 가깝도록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적성에도 맞고 돈도 그럭저럭 번다는 뜻이다.

-> 자기 작품을 쓰는가? NO

-> 작가라는 멋진 호칭에 걸맞는 작업을 하는가? NO

-> 자신의 소신과 의도대로 작품을 만드는가? NO


이렇다보니, 누군가는 '니가 진짜 작가냐!'하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또한 여러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며 보고 느끼며 배운 것들과, 한가지 일을 해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면, 안심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 소소하게도, 내 밥벌이 하나만큼은 꾸준히 해온 내 천성이 참 꾸준히 나를

'즉각적으로 돈을 주는 세계'로 밀어보낸다.


내 작품 하나 해보려다가도, 막연한건지 뭔지 발라당 눕는게 아직은 더 편하다.

그러다가도 클라이언트 연락이 오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런 나를 계속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음에, 감사와 뿌듯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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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소소한 이야기들이니 결이 맞는 분들이 많이 와주시면 좋겠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