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클링, ATV, 두리안 먹기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작성한 자기소개서에서 나를 표현하는 문구는 '도전'이었다. 내가 특별히 모험심이 강한 게 아닌데 그렇게 쓴 이유는 미국 국립공원 자원봉사 때문이었다. 살면서 운동이라고는 한 달 남짓 다닌 헬스장이 전부였는데 살아있는 영어를 배워보겠다는 간절함으로 이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그리고 다국적 봉사자들과 미국 동부에 위치한 광활한 국립공원의 트레일을 보수하는 일을 했었다. 동네 뒷산도 드물게 올랐던 내가 왕복 10km의 하이킹을 해냈고 이 경험을 이력서에는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포장했다. (체력과 함께 전무후무의 기록적인 체중 증가도 덤으로 가져왔다.)
이력서의 광탈에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복붙 하여 입사지원서를 냈던 것도 도전정신의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변했다. 하던 일도 열정이 식어 집중하기 힘든 때가 부지기수였고, 새로운 일은 벌이는 건 더욱 쉽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2월 발리로 떠난 여행에서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것들을 인생 처음으로 도전했다.
수영을 배운 지 3년 차고 이제 오리발 강습도 받지만 스노클링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입수 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면 공포심이 인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물 깊이인 1.35m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2m 깊이의 수영장도 무섭다.
그러나 나는 수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번씩 스노클링, 프리다이빙하는 나 자신을 상상한다. 그래서 작년에 그 준비 작업으로 대략 2m 깊이의 실외 수영장에 갔다. 작년 시드니로 여행 갔을 때 찾은 아이스버그 오션 풀 (Icebergs Ocean Pool)은 실외 수영장이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바다에서 파도가 치며 바닷물이 그대로 유입된다. 그때 경험으로 나는 바닷물이 얼마나 차고 뿌연지 (물이 더러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탁하고 수초가 둥둥 떠다녔다.) 그 속에서 수영하는 건 또 얼마나 다른 경험인지 알게 되었다.
올해는 스노클링을 해보겠다 마음먹었다. 발리로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클룩"이라는 사이트를 알아냈고 가장 후기가 많은 곳으로 신청했다. 이 섬으로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숙소는 근처 사누르로 잡았다.
당일 아침에 그랩으로 택시를 잡아서 사누르 항구에 위치한 D'STARS FAST FERRY라는 곳까지 갔다. 거기서 표를 받아 페리를 타고 30분쯤 들어가면 누사 렘봉안이라는 섬으로 갔다. 조를 배정받고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내가 신청한 스노클링 프로그램의 상세 페이지에는 만타 가오리를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 만타 가오리 (Manta Ray)는 대왕 쥐 가오리라고도 불림, 현존하는 가오리 중 가장 크다. 평균 날개 너비는 3~4.5미터, 평균 몸무게는 약 1톤 정도 나간다.
그런데 정말로 거대 가오리를 보러 가는 길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만타 가오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만타 베이는 파도가 엄청 치고 수심이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내가 생각했던 스노클링은 잔잔한 바다에서 유영하며 물속을 관찰하는 거였지 높이 물결치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 구명조끼는 내 몸을 하나도 보호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왜 내가 비싼 돈 내고 이런 극한 체험을 한다고 했을까? 정신이 나갔지.....' 하는 생각이 덮쳤다. 다행스럽게도 가이드가 당일 파도가 심해 만타 가오리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높은 파도는 나만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젊은 외국인 일행이 안된다고 들어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다들 알겠다고 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잔잔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깊어 보였다. (나는 그전까지 바다의 깊이를 너무 얕잡아봤었다.) 주저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나와 아이들, 남편에게 수영할 줄 아냐고 물어봤다. 나는 "수영할 줄 알지만 바다에서 스노클링 하는 건 처음이다."라고 했고 그러면 자기가 튜브를 줄 테니 거기 매달려 있으라고 했다. 그래도 들어가기 무서웠는데 같은 배에 탄 한국인 중년 여성분들도 뛰어들고 있는지라 나도 몸을 물속에 던졌다. 스노클링 호흡법이 익숙지 않아 짠물이 자꾸 입으로 들어오고, 수경엔 계속 습기가 찼다. 바닷물은 또 왜 이리 찬 지... 물고기고 뭐고 그만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첫째는 입술이 새파래졌고 나는 애들을 데리고 배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앉아서 초코바를 먹으면서 바다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서양인들을 넋 놓고 쳐다봤다. 세 번째 장소는 조금 더 얕았다. 첫째는 물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이 첫째와 같이 있겠다고 하자 나는 둘째와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 스크래치투성이 수경 탓인지 원래 그런 건지 바다는 희뿌옇고 바닷물은 차가웠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적응이 되었는지 튜브를 잡은 손에 힘이 덜 들어갔다. 한 손을 떼어내 물을 쓸어보기도 했다. 수초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네 번째 장소는 수심이 가장 얕았고 물도 잔잔했다. 나는 처음으로 튜브를 잡지 않고 구명조끼에 의지한 채 물에 떠서 바닷속을 내려다보았다. 호흡법도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짠물이 입안으로 들어 않았다. 바다의 깊이는 무한했다. 나는 물고기와 산호초를 찼겠다는 욕심으로 여기저기 살피다 결국에는 다 포기하고 아득함을 느끼기로 했다. 함께 배에 탔던 젊은 서양인들이 구명조끼도 벗어던지고 아이처럼 바다처럼 바다를 즐기는 걸 보면서 얼마나 수영을 배우면 저렇게 될 수 있을지, 그럴 날이 살면서 오기는 할지 궁금해졌다.
깨달은 점: 방수팩은 필요 없다. 튜브 잡고 간신히 버티는 중이라 방수팩으로 사진 찍고 뭐 할 정신이 없다. 래시 가드도 비추다. 나는 바다에서 놀다가 화상 입었던 경험이 있어서 래시가드를 입었는데 물에서 나온 후에 온몸이 축축해 체온 유지에 좋지 않았다. 다음엔 실내 수영복을 입고 할 것 같다.
23년 영국 여행, 24년 호주 여행 때는 가이드북 여러 권을 잔뜩 쌓아두고 몇 날 며칠에 걸쳐 일정을 짰다. 일정대로 다 하지는 못했지만 여행 계획을 성실하게 짜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25년 발리 여행은 스케줄을 짜야한다는 강박을 많이 내려놓았다. 휴양 지니 먹고 놀고 쉬다 오면 되지 않나, 계획이 굳이 필요한가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완벽주의 성격을 다 버리지는 못해서 도서관에서 발리 여행책 서너 권은 빌려서 대강의 루트와 갈 곳, 먹을 것 등을 추려놓긴 했다.)
사누르에서 머무른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었고 다음날 이동할 지역인 우붓에서 ATV나 래프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일 1 수영을 하고 스노클링도 한지라 래프팅은 건너뛰고 ATV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예약하기까지 고민을 무지 많이 했다. 리뷰에 초등학생들과 같이 탔다는 의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구글 리뷰 중에는 ATV가 전복되어 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남편은 내가 둘째를 뒤에 태우고 운전하다 혹시라도 뒤집히면 큰일 날 수 있으니 하지 말자고 했다. 나도 다칠 위험이 있다면 굳이 돈 내고해야 하나 싶었다. 전날 폭우로 코스 근처 강의 수위가 높아진 것도 선택을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였다.
그러나 잘 마무리하면 이 또한 특별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유일하게 15살 딸이랑 다녀왔는데 좋았다는 피드백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보다는 했다가 정 아니면 중단하면 될 테니. 나는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미리 왓츠앱으로 "아이를 동반하니 쉽고 안전한 코스로 가 달라."라고 했다." 현장에 도착해서 가이드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ATV 체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운전을 하지만 이렇게 크고 무거우며 엔진 소리가 귀를 뚫는 오토바이 비슷한 것은 한 번도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액셀과 브레이크 작동법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나는 걱정 말라고 하고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였으나 곧 바퀴가 보도블록 위로 올라갔다. 코너를 돌 때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아서였다. 이후로 내 운전 실력은 뒤에서 따라오는 남편을 가슴 졸이게 했다. 그러나 앞서가는 가이드가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가이드를 해줘서 점점 운전에 적응이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두 차례 시동을 꺼지고 바퀴가 흙에 묻히기도 했다. 그러나 몸이 적응하자 달리는 게 신났다. 물이 찰랑찰랑 한 도로를 달릴 때는 짜릿하기도 했다. 코스를 다 돌고 내릴 때쯤엔 'ATV 체험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이렇게 재밌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음식만큼 내가 보수적인 태도를 고집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식당에 가면 매일 주문하는 음식을 고른다. 새로운 맛을 보고 그 속에서 기쁨을 향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정 반대다. '낯선 메뉴를 시도했다 맛이라도 없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새로운 걸 시도할 때의 만족감보다 더 크니 익숙한 걸 고르고 먹는다.
이런 내가 동남아로 여행을 가면 꼭 한 번은 맛봐야 하겠다고 다짐한 게 있었다. 바로 두리안이다. 뾰족뾰족한 가시가 온몸을 덮고 있어 손을 대기도 무서운 외향, 기분 나쁜 냄새를 폴폴 풍기는 이 과일을 굳이 돈을 내서 먹어보겠다니....... 평소의 나답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된 것은 한 학생 때문이었다.
나는 발리 여행을 가기 한 달 전, 모 도서관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수업을 진행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건>이라는 애니메이션 리더스 북을 읽고 스토리의 배경인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자기가 두리안을 먹어봤는데 맛있었다고 했다. '구린내 나는 두리안이 맛있다고?'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대신 내가 직접 맛보기로 했다. 난 발리에 갈 예정이니까. 두리안은 우리 숙소 근처 Arta Sedana Sanur라는 이마트 정도 크기의 마트 포장되어 있는 것을 자주 봤지만 내가 구매한 곳은 우붓 숙소 근처 골목에서였다. 슈퍼라고 말하기 애매한 작은 가판대에 두리안 여섯 개가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놓여있자 멈춰 서서 봤다. 그러자 점원이 "이거 잘 익었어요. 사세요."라고 했다.
그녀는 서 있는 자리에서 두리안을 반으로 쩍 쪼개지더니, 몽글몽글한 속살을 뚝 떼어내 용기에 담았다. 내 얼굴보다도 더 큰 두리안은 두 개의 용기에 나란히 담겼고 나는 가슴에 고이 품고 숙소로 가지고 왔다. 애들은 내게 그걸 진짜 먹을 거냐고 했다. 나는 먹지 않겠다고 강하게 의사를 표시한 애들 대신 남편에게 한 조각을 내밀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입에 넣었다. 고구마와 바나나가 뒤 섞인 달콤한 맛이었는데 아보카도 씨 만한 게 중간에 떡 하니 있어 씨는 다시 뱉어내야 한다. 다만 향이 맛을 압도하고, 섬유질이 많아 포만감이 들기 때문에 두리안 두 팩을 이틀 안에 다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날 숙소를 이동해야 했는데 먹고 남은 두리안을 짐스럽게 다음 숙소로 가져갈 수 없어 이틀에 걸쳐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두리안은 한번 먹어본 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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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는 내게 신혼여행지이기도 했다. 10년도 더 지나 다시 찾은 셈인데 그때 그 희미한 기억에 새로운 경험을 덧칠했다. 다음번에 또 발리를 찾게 된다면 무언갈 또다시 실행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