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마을여행_최루백 효자각
“루백아, 오랜만에 같이 나가자꾸나. 홍법산에 활이나 쏘러 가야겠다.”
아버지 최상저는 수주마을 호장이었어. 호장은 고려 시대 향리의 우두머리를 말해.
“좋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서당에 가는 루백이와 함께 집을 나섰어.
“요즘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괜찮으시겠어요?”
“허허, 걱정하지 마시오. 밥 먹을 시간 맞춰 돌아올 터이니.”
어머니는 대문 앞까지 따라 나와 배웅을 했어.
루백이는 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시간이 가장 좋았어. 아버지 곁에 서면 루백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지. 오솔길 양옆으로 난 풀이 옷깃에 닿아 사각사각 스쳤어.
“아버지, 사냥도 좋지만, 조심히 다니세요.”
둘은 한참 걷다가 나온 갈래 길에서 멈춰 섰지.
“허허, 그래. 금방 다녀오마.”
아버지는 루백이 머리를 쓰다듬었어.
“네. 있다가 집에서 봬요.”
루백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서당을 향해 힘차게 걸었지. 힐끔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어. 루백이는 아버지의 흰 옷자락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서당으로 뛰어갔지.
“루백아, 냇가에서 놀다 가자.”
공부를 마치자, 친구들이 불렀어.
“내일 놀자. 아버지가 일찍 오신댔어!”
오늘따라 빨리 집에 가고 싶었거든. 루백이는 잰걸음으로 집에 돌아왔어. 하늘은 파랗던 색을 조금씩 감추고 있었지.
“아버지, 어머니, 저 왔어요!”
“왔니? 아버지는 아직 안 오셨어.”
루백이는 갸웃거렸어.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은데, 왜 안 오시지?’
고개를 들어보니, 어두운 구름이 슬그머니 모여들고 있었어.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눅눅한 바람이 코끝에 밀려왔지. 루백이는 마당에서 서성이다가 밖으로 나가 길을 내다보았어. 한참을 기다려도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
‘갈래 길 앞까지 나가볼까? 아니야. 이러다 길이 엇갈리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루백이는 툇마루에 앉았다 섰다 몸을 옴짝달싹했어.
그때였어.
‘터더덕, 터덕.’
“아버지?”
루백이가 벌떡 일어섰어.
“큰, 큰일 났네. 네 아버지가!”
건넌 마을 김 씨였어. 김 씨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하게 외쳤지.
“아저씨, 대체 무슨 일이세요?”
루백이는 김 씨의 팔을 붙들고 물었어. 루백이 어머니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급히 나왔지.
“호, 호랑이한테……, 아이고.”
“뭐라고요?”
어머니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지. 루백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주춤거렸어. 김 씨는 말을 늘어놓으며 루백이 어머니와 루백이 사이에서 종종댔어.
‘정신 차려. 얼른 아버지께 가야 해.’
루백이는 곳간으로 달려갔어. 도끼를 꺼내 들고 대문 밖으로 나섰지.
“열다섯 살밖에 안 된 네가 가서 어쩌려고 그러냐.”
어머니가 따라 나와 루백이를 막아섰지. 루백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어.
“어머니,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얼른 다녀올게요.”
루백이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홍법산으로 뛰어갔어.
한차례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쉬지 않고 내달렸어. 질퍽거리는 바닥에 신발이 벗겨진 채 산을 헤매고 다녔어. 무성한 가시덤불을 지나는데 흙바닥에 찍힌 커다란 발자국이 보였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따라갔지. 가다 보니 편평한 땅이 나타났어. 평상처럼 넓은 바위도 있었지.
순간 오싹한 기운이 감돌았어. 루백이는 입술을 앙다문 채 바위 쪽으로 한발, 한발 발을 내디뎠어.
“어……!”
“크르렁, 푸우.”
누런 털이 빳빳한 호랑이가 누워있었어. 호랑이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지. 몸은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콧소리를 내며 푹 늘어졌어. 루백이는 옹송그리며 침을 꼴깍 삼켰어. 도끼를 쥔 손은 땀으로 축축해졌어. 나무 뒤에 숨어서 좀 더 살펴보려는데 바닥에 타닥, 밟히는 소리가 들렸어.
‘이건?’
아버지의 화살이 분명했지. 루백이의 몸이 부르르 떨렸어. 매서운 눈길로 호랑이를 바라봤지. 자세히 보니 호랑이의 배는 불룩하게 솟아있었어.
“네 이놈!”
루백이는 바르르 몸을 떨며 큰소리로 외쳤어.
호랑이는 두툼한 발을 턱 하니 앞세우며 느릿느릿 일어났어. 배는 땅에 닿을 듯 축 처져 있었지.
“크아함, 누가 내 단잠을 깨우는 게야.”
호랑이는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지. 루백이는 호랑이를 마주 보고 섰어.
“네가 아버지를 잡아먹었느냐? 하늘 같이 섬기는 내 아버지를 헤친 너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루백이는 손에 든 도끼를 높이 쳐들고 소리쳤지. 호랑이는 꼿꼿해져서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루백이는 단번에 호랑이를 잡아, 배를 가르고 아버지를 꺼냈어.
“흑흑, 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아버지…….”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어. 루백이는 서둘러 어머니께 소식을 전하고, 항아리를 지고 왔지. 가져온 항아리에 아버지의 뼈와 살을 담아 홍법산 서쪽에 무덤을 만들었지.
루백이는 아버지 무덤 옆에 작은 집을 짓고 곁을 떠나지 않았어. 아버지와 길을 걸으며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매일같이 무덤을 지켰어. 아버지의 멀어져가던 뒷모습이 떠오르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
‘아버지, 보고 싶어요…….’
루백이는 울다 지쳐 깜빡 잠이 들었어.
“루백아, 루백아.”
아버지의 나긋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어.
“아버지!”
아버지가 루백이의 꿈에 찾아온 거야. 아버지는 루백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손을 잡았지.
“가시덤불 숲을 헤치고, 효자 루백이의 여막에 다다르니
아들의 넘치는 정에 느끼는 것이 많아 눈물이 다함 없네.
날마다 흙을 져서 무덤에 덮으니
이 마음을 아는 건 밝은 달과 바람뿐.
살아서 잘 봉양하고 죽어서는 지켜주니
누가 효에 처음과 마침이 없다 할까.”
“아, 아버지…….”
꿈에서 깬 루백이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듭 생각했대.
루백이는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산소를 지켰어.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효자 루백이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렸대.
세종대왕은 세종 14년(1432)에 최루백의 효행을 기리는 글을 내렸어.
최루백 효자비는 숙종 때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에 세웠지. 그 뒤에 봉담읍 분천리로 옮긴 거야.
효자 최루백 이야기는 고려사 열전,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중국의 해동석원 등에 실려 있어. 김홍도는 누백포호(累伯捕虎: 최누백이 호랑이를 잡다)를 그렸는데, 호암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지.
▶ 마을여행 ‘최루백 효자비각’ : 경기도 화성시 최루백로 313-6
▶ 함께 둘러볼 만한 곳
-홍법사: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쇠틀길 89-15
-홍법산: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 산4-22
-호암 미술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