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장소 잇기

첫 번째 마을여행_최루백 효자각

by 챠챠


20200528_125953.jpg 최루백이 호랑이를 만난 장소 '효암'


보통 계획을 세워놓고 움직이는 편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어디를 갈 때면 주소, 대략적인 시간까지 짜서 다니곤 했다. 이번 마을여행은 약간 느슨하고 즉흥적이었으면 했다. 말 그대로 ‘마을’을 다니는 거니까.

최루백 효자각은 갑자기 정해진 목적지였다. 최루백(崔婁伯)은 고려 시대 사람으로 태어난 해는 알 수 없으나 1205년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첫 마을여행을 출발해보자.

최루백 효자비각을 가는 길목에 ‘홍법사’를 지났다.

‘어디서 들었더라?’

답을 찾기도 전에 목적지로 다다랐다.

주차장 앞에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수원 최 씨 사적지(水原崔氏史蹟址)’다. 그 뒤에는 많은 묘가 보였다. 봉담 분천리 일대가 최루백의 사패지(賜牌地)인데, 임금이 내려준 논과 밭을 말한다. 최루백과 최상저의 무덤이 여기에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최루백은 부인 염경애(1100~1146)의 묘지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여성의 실명이 드러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최루백이 직접 묘지명을 지어 공적을 기렸다고 하니 더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고려 시대에 남은 묘지명은 100여 개, 그중 여성의 것은 34여 개. 남편이 직접 써준 건 염경애 묘지명이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효성도 지극하고 부인에게도 남다른 모습을 보인 사람,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허구가 아닌, 실제 있었던 인물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디로 걸어가야 하나, 효자비각을 가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른편에 한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있었다. 길 따라 제법 높이 자란 풀을 스치며 비각 가까이 갔다. 뒷산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무성했다. 봄의 초록빛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었다.

안내판 가까이에 최루백 효자비각이, 그 뒤로 아버지 최상저 유허비가 있다.

최루백 효자비 앞면에는 ‘고려효자한림학사최루백지려(高麗孝子閑林學士崔樓伯之閭)’가, 뒷면에는 ‘탁행기부시이도(卓行記附二道) ’가 새겨져 있었다. 최상저 유허비에는 ‘고려양광도수주부호장상저유허(高麗楊廣道水州府戶長尙翥遺虛)’라 적혀 있었다.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읽다가 호랑이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최루백이 호랑이를 만난 바위가 홍법산에 있다고? 홍법산, 홍법사…….’

홍법사 뒤에 있는 산이 홍법산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곳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최루백이 호랑이를 잡은 홍법산으로 가보자.”

“호랑이가 나오는 건 아닐까?”

마치 동화 속 장소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차를 타고 홍법사로 갔다.

꽤 큰 절이었다. 절 입구에서 반대편 끝으로 걸어가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산길을 올라가다 보니 갈래 길이 나왔다. 일단 앞으로 가보자며, 쭉 뻗은 길을 따라 그대로 걸어갔다. 거의 다 왔을까,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마다 훌라후프가 걸려있었다.

그때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움직였다.

“너, 어디로 가는 거야?”

다람쥐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다람쥐가 향한 곳은 커다란 바위였다. 바로 우리가 찾던 ‘효암’이다. 호랑이가 최루백 아버지를 잡아먹고 누워있었다던 바위다. 꽤 넓적했다. 돌 아래에 틈을 들여다보니 굴처럼 아늑한 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그릇이 있었다. 다람쥐의 물그릇이었다.

다람쥐는 바위틈에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 뒤로 다른 한 마리, 또 다른 한 마리가 나타나 바위 곳곳을 돌아다녔다. 한 가족인가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최루백과 호랑이의 사연이 담긴 바위는 숲속 다람쥐 놀이터인 듯하다. 다람쥐들은 사람이 가까이 있는 상황이 익숙한 듯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잠시만 둘러보고 갈게.”

바위 앞에는 ‘효암’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면서 자주 이곳에 행차했던 장소다. 정조는 최공의 후손에게 최루백을 훌륭한 조상이라고 극찬했다. 수기촌은 ‘효자문골’로, 큰 바위는 ‘효암’이라는 이름을 정해주기도 했다.

산 아래로 내려가다가 아까 망설였던 갈림길에서 멈췄다.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따라가면 뭐가 나올까, 걸어가 봤다. 커다란 바위 아래 ‘산신제단(山神祭壇)’ 한자가 새겨진 돌 판이 있었다. 고개를 높이 들어보니 우리가 아까 있던 효암이 슬쩍 보이는 것 같다.

화성시에는 여러 효자각이 있다.

그중 박장철 효자각(화성시 장지안길1)에 가본 적이 있다. 박장철(朴長哲)은 정조 4년인 1780년에 출생하여 1853년에 여생을 마친 사람이다. 최루백과 박장철, 두 효자 이야기에는 공통으로 호랑이가 등장한다.

박장철은 아버지 병을 낫게 하려고 송이버섯과 고기를 구해서 험한 밤길을 걸어갔다. 스님으로 변장한 호랑이는 박장철의 길동무가 되었다. 위험한 길을 혼자 걷는 박장철을 지켜준 셈이다.

또 다른 효자 이야기에도 호랑이가 등장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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