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공립 중등학교, 남양항교

세 번째 마을여행_남양향교

by 챠챠


남양향교_2020.05 (69).jpg 남양향교_외삼문

조선 시대 아이들은 어디서 공부를 했을까?

아무래도 ‘서당’이 먼저 떠오를 거야. 7~8세부터 다니면서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사서삼경을 공부했지. 서당의 훈장님이 먼저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큰 소리로 따라 했어. 그게 바로 서당의 공부법이야. 배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뜻을 묻고 답하는 거지. 수업료는 돈 대신에 쌀을 냈대. 강미(講米)라고 하는데 지역에 따라 땔나무, 의복을 내는 곳도 있었지. 이렇게 15, 16세까지 공부를 마치면, 향교를 가거나 서원을 갔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입학하듯이.

남양읍에는 ‘남양향교’가, 서신면에는 ‘안곡 서원’이 있지. 둘 다 화성시에서 유일한 곳이야.

향교와 서원은 어떤 점이 다를까. 향교는 나라에서 만든 학교(관학), 서원은 향촌에서 사림이 만든 학교(사학)라고 생각하면 돼. 향교에서는 학생을 ‘교생(校生)’이라고 불렀대. 그 중 액내교생은 양반을, 액외교생은 서얼과 평민을 가리키는 말이야.

남양향교는 문화재자료 제34호야. 처음에는 옛 남양 도호부의 동쪽인 역골(현, 남양 중·고)에 있었어. 인조 21년(1642), 고종 2년(1865)에 두 차례 고쳐서 지었지. 고종 10년(1873)에 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현재 위치로 옮겼어. 1933년, 1976년, 1991년에 보수하고 200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지.

입구에 홍살문(紅箭門)과 하마비(下馬碑)가 있는데, 누구든 말을 타고 왔더라도 그 앞을 지날 때는 내리라는 표시야. 외삼문(外三門)을 통과하면 교생이 공부하던 명륜당(明倫堂)이 보이지. 양쪽에는 교생의 기숙사인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어.

남양향교_2020.05 (49).jpg 남양향교_대성전

명륜당 옆 계단을 올라가면 내삼문(內三門)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대성전(大成殿)이 보여. 공자(孔子)의 위패를 모시고, 석전제(공자에게 올리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지. 양쪽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이름을 나무패에 적어 모셨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상태야.

남양 항교_20.05 (24).jpg 대성전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은행나무(보호수)
남양 항교_20.05 (35).jpg 대성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은행나무(보호수)

남양 향교에는 은행나무 보호수 두 그루가 있어. 왜 은행나무를 심었을까?

조선 시대는 유교를 믿었고, ‘공자’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생각했지.

옛날에는 나무 아래에 모여 공부를 했어.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공자는 제자를 ‘행단’에서 가르쳤대. ‘행’은 중국에서 살구나무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은행나무를 가리키는 말이지. 그래서 향교 앞에 은행나무를 심었던 거야.


▶ 마을여행 ‘남양향교’ : 경기도 화성시 글판동길 15번길 18-3 (남양리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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