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마을여행_풍화당
남양읍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보인 건 남양 초등학교였다.
교문 옆으로 보이는 회화나무 보호수에 눈길이 갔다. 옛날에 남양 도호부의 관아에는 성곽 대신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 많은 고목이 둘러있었는데 거의 다 사라졌다. 남은 보호수 한 그루가 내 앞에 있었다. 2020년 현재 기준으로 388년 된 나무다. 하늘을 바라보면 죽 뻗은 가지가 눈에 담긴다. 이런 나무를 보면 참 신비롭다. 한자리에서 묵묵히 견뎌낸 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까. 과거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지금의 모습을 보는 감회가 어떨지.
잠시 마을을 둘러봤다. 보훈회관 옆에는 벽화 골목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꾸었을 길이다. 골목 입구에는 ‘풍화당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고, 골목 끝에 풍화당 기와지붕이 보인다. 그 사이를 채운 벽화가 참 정겨웠다.
풍화당 현판 아래에 닫힌 문을 가운데 두고 낮은 벽돌담이 죽 이어져 있었다. 굳게 닫힌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봤다.
‘용지도 못 봤는데, 풍화당 마저 들어갈 수 없는 건가.’
못내 아쉬워서 문 앞에서 서성였다. 혹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런데 마침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안에 있는 것 같아!”
낮은 벽돌담에 서서 보니 몇 켤레의 신발도 보였다. 어, 어쩐지 예감이 괜찮다.
“계세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담 가까이에서 간절하게 외쳤다. 누구든 내 목소리를 들어주시기를.
두런두런 말소리와 함께 어르신 몇 분이 나오셨다. 담이 낮아서 다행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물었다. 한 어르신이 담벼락 끝을 가리켰고, 내 시선이 손가락 끝을 향했다. 풍화당 내부까지 막힘없이 뚫려 있었다.
“아……아, 하하하.”
나는 대문을 통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거다.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들어갈 기회가 생겼으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풍화당을 둘러보았다. 지금도 노인정으로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역시 눈으로 보는 건 다르다. 이곳을 잘 아는 어르신께 직접 듣는 옛날이야기는 선물 같았다. 잠겨있던 방문까지 열어주셔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어르신 말씀이 인상 깊었다. 풍화당 관련 연구를 위해 찾아오는 단체는 있는데, 개인적으로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다들 잘 모른다고. 나도 작년에 처음 알게 된 곳이니까…….
어르신들은 나에게 무슨 일로 찾아왔냐며 물으시곤,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지나치지 않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했다. 또한,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선뜻 건네신 말씀 한마디도 따뜻했다. 앞으로 마을을 다니는 데에도 큰 힘이 되겠지.
“다음에 또 들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