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장태문화, 정숙 옹주 태실지

네 번째 마을여행_정숙옹주 태실지

by 챠챠


20200521_171107.jpg 동탄호수공원_정숙옹주 태실지(앞면)


옛날부터 사람들은 태교를 중요하게 생각했어. 아기 가진 걸 안 순간부터 나쁜 일을 멀리하고, 음식도 가려먹었지. 왕실에서는 출산예정일 3~4달 전부터 산실청(産室廳)을 만들고 의관(醫官)이 준비하고 있었대.

아기가 태어날 때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달고 나오잖아. 옛날 사람들은 탯줄을 소중하게 여겼어. 지금도 탯줄로 도장을 만들거나, 잘 말려서 보관하지. 옛날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대.

일반 백성과 왕실에서 태를 다루는 방법이 조금 달랐어.

백성들은 태를 왕겨에 싸서 불에 태우는 ‘소태(燒胎)’, 좋은 자리를 골라 태 항아리를 묻는 ‘매태(埋胎)’, 말려서 보관하는 ‘건태(乾胎)’, 물에 흘려보내는 ‘수중기태(水中棄胎)’ 등의 방식이 있었지.

왕실에서는 좋은 자리를 골라 태를 묻고 나라의 운과 연결해서 생각했어. 태를 격식에 맞게 땅에 묻는 걸 ‘장태문화’라고 불러. 아기가 태어나면 3일이나 7일 후에 향기로운 술로 탯줄을 백번이나 씻었어. 태는 비단으로 잘 싸서 태 항아리에 담았어. 다시 큰 항아리에 담아 움직이지 않도록 잘 싸주었지. 항아리에는 태의 주인, 출생일을 적은 붉은 패를 매달았어. 5개월이 지나면 태실지에 묻었는데 제법 큰 행사였지. 묻을 장소와 좋은 날짜를 고른 다음, 의식을 갖춰 모셨어. 태를 운반하는 책임자도 있었지. 태실을 묻은 곳에는 비석을 세웠고, 봄과 가을에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대. 그 주위에서 나무를 베거나, 땅을 일구거나, 가축을 기르거나, 돌을 캐는 등의 일은 절대 할 수 없었어.

태실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어. 풍수적으로 좋은 땅이라면 왕궁에서 거리가 멀어도 상관없었거든. 태를 묻은 곳은 ‘태봉산’, ‘태봉리’ 등의 이름으로 불렸대.

화성시에는 유일하게 선조의 딸 정숙 옹주 태실지가 남아있어. 2019년 10월 23일에 황토 문화재로 지정되었지.

20200521_171149.jpg 동탄호수공원_정숙옹주 태실지(뒷면)

태실비의 앞면에는 ‘왕녀아지씨태실’(王女阿只氏胎室), 뒷면에는 ‘황명만력십육년칠월십일일을시입’

(皇明萬曆十六年七月十一日乙時立)이라고 적혀 있어. 황명만력은 명나라 황제인 만력제(1573년~1620년)연호야. 황명만력십육년은 ‘1588년’(1573년+16년-1=1588)을 뜻해. 칠월십일일은 음력을 기준으로 적어놓은 것이라 양력으로 바꾸면 ‘9월 1일’, 을시는 ‘6시 30분~7시 30분’을 말하지.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왕실을 훼손하려고 54기의 태실을 꺼내 서삼릉에 모아두기도 했대. 이때 태 항아리를 안 좋은 그릇으로 바꾸고, 비석의 연도를 일본식 연호로 적어놓았지. 그런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정기를 꺾으려고 했던 거야.

일본이 흩트린 우리 역사의 흔적에 관심을 가져야 해. 우리가 알아야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겠지.



▶ 마을여행 ‘정숙옹주 태실지’ : 경기도 화성시 송동 727 / 동탄 순환대로 69 (호수 공원 주차장)

▶ 함께 둘러볼 만한 곳

-서삼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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