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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리뷰

가짜가 아닌 진짜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by 즁 필름

2016년 나에게 최고의 기대작을 꼽으라면, 사실 먼저 리뷰를 했던 <곡성>과 이번에 개봉한 <아가씨> 일 것이다. 특히 나에겐 나홍진 감독의 <황해>에 대한 약간의 실망감 때문이기도, 또한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으로, 이 영화의 개봉을 굉장히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개의 작품은 모두 내 기대를 기대 이상으로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다. 둘 다 별 다섯 개. 사실 나는 어떤 일정 수준의 기준만 넘어가면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별 다섯 개는 정말로 작품성이 뛰어나다던지, 그게 아니라면 남에게 추천할만하던지 하는 그런 기준이 아니라, 나에게 정말 신선한 "그 무엇"을 주는 작품이라면 별 다섯 개가 된다.


두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나는 <곡성>에 대해서는 정신없이 먹은 얼큰한 국밥인데, 먹고 나니 계속해서 생각나고, 속이 더부룩하니 포만감이 넘치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가씨>는 셰프가 코스로 차려주고, 좋은 데코를 곁들이는, 보는 재미까지 선사해주는 코스요리 같았다. 어떻게 보면 스시바에서 앉아먹는 초밥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만큼 둘의 결은 많이 다르지만 나에겐 최고의 만족감을 주는 영화들이었다.


주의: 이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미성년자가 보기에 부적절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머리를 잡지만, 두 여성은 깍지손을 잡고 있다. 이 영화의 중심적인 내용을 제일 잘 알려주는 좋은 포스터.

처음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랑'영화이다. 그것도 '여성의 사랑'의 이야기. 영화를 보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올해 개봉했던 <캐롤> 이라던가, 아니라면 <가장 따듯한 색 블루>를 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가씨>를 그 두 개의 영화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특히 <캐롤>에 대한 내가 쓴 리뷰의 제목 '사랑에 대한 가장 솔직한 서사'를 오히려 <아가씨>에 붙여주고 싶은 부제가 될 정도이다. 그만큼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은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이 영화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이다. 뒤틀어진 이야기도 아니다. 복선을 너무 숨기지도 않으며, 특히나 1장 2장 3장으로 나눠주는 친절함까지. 그리고 의외로 '박찬욱'영화 중 가장 유쾌했고, 가장 불편하지 않았던 것도 특징. 박찬욱 감독이 좀 더 관객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하다.



인물열전. 배우평.

너는 그 물욕이 문제야 숙희야.

아, 우리 순진하고 어리숙한 숙희.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을까. 그녀는 물욕이 심한 도둑이다. 하지만 조선의 골상 치고는 나쁘지 않은 얼굴을 가졌고, 영화를 보다 보면 몸의 곡선도 매력적임을 알 수 있다. 날 때부터 거의 도둑이었던 그녀는 옥주라는 가명을 쓰고 히데코의 재산을 빼앗으려 하녀로 들어간다. 하지만 히데코를 만나 사랑에 빠져버리는 까막눈의 어리숙한 아이. 언제 사랑에 빠졌냐고 물어본다면, 히데코를 본 처음부터 숙희는 사랑이 빠져버렸다. "염병. 예쁘면 예쁘다고 말을 해줬어야 할 거 아냐" 이 대사를 칠 때부터.


모르긴 몰라도 숙희는 가족 구성원이 거의 여성이었고, 애초부터 남자에 대해선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끝단이에게 말로 배웠다던 입맞춤도 사실은 실제로 해봤을 가능성도 크다. 왜냐하면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숙희는 알고 있었기 때문.


숙희가 귀엽게 느껴지는 부분은, 자신은 굉장히 고도의 연기를 통해서 히데코를 속이고 있다 생각하지만, 초반부터 느껴지는 사소한 실수. 예를 들어 "밤마다 생각나는 액수.. 아니 얼굴", "사파이어가 아니라 세피넬이네요" 이라는 대사 같은 부분이라던가, 심지어 완전한 까막눈이라는 점. 하지만 "모두들 나를 그냥 하녀로 알고 있겠지만...... 나는 다섯 살 때부터 가짜 돈을 구별할 줄 알았고.."의 대사는 정말로 본인의 대한 나름의 '허세'로 꽉꽉 차있다. 하지만 숙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았으며, 심지어 사랑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리숙한 숙희. 그래서 숙희는 귀엽다.


이 역할을 맡은 김태리를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봉 전부터 1500:1을 물리치고 온 '김태리'라는 신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쏟아낼 때에 사실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날려버리는 것을 포함해서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연기와 눈빛으로 스크린에서 빛이 난다. 숙희는 어리숙하지만 속에 야심이 있고, 그리고 심지어 예쁘면서 약간의 능숙한 여여정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배우로서는 도전적인 역할이지만, 그녀는 당차게 따내었고, 그건 정말 칭찬받을만하다. 특히나 제 1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 정말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너무나 멋지게 해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지하실에서의 일을 기억해라" 라는 말을 들은 히데코. 그 무서움이 눈빛에 잘 보인다.

우리 불쌍한 히데코. 그녀의 삶은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여의고, 변태 이모부에게 끌려가 '자지', '보지' 하는 말을 무감정의 상태로 읽어야 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책에 맞춰진 인생.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강했고, 아는 것이 많았다. 그건 정말 아이러닉 하게도 그녀가 읽은 책 덕분이다. 이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것도 책을 보고 알았을 것이고, 남자들이란 어떤 동물인지도 책과 낭독회를 보는 남자들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숙희와의 정사에서 그녀의 요염한 몸동작도 물론, 책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자유를 갈망했을 것이다. 왜냐면 자유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으니. 그러던 어느 날 백작이 한 제안을 그녀가 왜 거부할 수 없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정말 깊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모부에 대한 어렸을 적부터의 두려움이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안과 더불어 왔던 숙희가 그녀의 인생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줬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히데코에게 숙희는 첫 경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2장에서 나오는 숙희와의 정사신에서의 그녀의 허리는 정말로 능숙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정사가 더욱더 좋았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기편이 없었던 히데코. 욕해도 좋고, 도둑질도 좋지만, 자기에게 거짓말만 하지 말라는 그녀는 정말로 자기편을 얻었음에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숙했던 숙희는 사랑과 물욕 사이에서 갈등했고, 그에 히데코는 삶을 포기하려 하기까지에 이른다. 자유가 다 무슨 소용이야. 나와 사랑을 나눈 내 사랑이 나보다 돈이 좋다는데.


다행히 숙희의 진실 고백에 마음을 돌린 그녀. 하지만 그 뒤로 그녀가 했던 그 모든 일들은 살면서 그녀가 처음해 보고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5살 이후 조선에서만 살았던 그녀는 거의 생에 처음 배도 타보고, 일본에 가보고, 기차도 처음 타보고, 그렇게 자신의 숙희에게로 돌아갔다. 특히나 그녀의 사랑이 어려웠을 점은, 이모부의 서재에서 서책들을 훼손할 때의 멈칫거림에서, 그리고 둘이 도망가다가 돌담을 잘 넘지 못하는 점등에서 나타난다. 그녀는 그렇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웃을 때 나도 행복해졌다.


이 역할을 맡은 김민희에게도 극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과묵하지만 많은 사연이 있는 역할에 어울린다. <화차>에서도 그랬고, 이번 <아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해도, 극 중의 인물보다는 배우로 기억에 남는 배우들이 많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하정우가 대표적. 하지만 김민희에겐 그런 것이 없다. 나에겐 김민희 자체가 히데코로 남았다. 그 정도로 완전히 히데코가 되었다.

앞에 있는 냉면먹방이 없어서 넘나 아쉬웠던 것

백작은 야심 찬 인물이며,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이다. 이 사기극을 계획하기 위해 3년을 준비했다니 말이다. 특히나 그가 머리가 좋았던 점은, 상황판단이 빠르다는 것이다. 히데코를 보고 그녀가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으니 말이다. 게다가 3년 동안 준비했던 플랜 A를 히데코를 보고 나서 변경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사람. 정말 똑똑하고 용의주도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무척이나 순진했다. 물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이 작품에서 한 가지 특징은 남자들은 굉장히 아둔하게 등장한다. 낭독회를 보는 남자들 모두 그러하며, 주연급 남자 등장인물들도 똑같다. 백작이 그나마 똑똑해 보였는데, 결국 마지막 여성을 탐하는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 그 계획을 망쳐버린다. 아마도 백작은 숙희와 히데코 사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서로를 사랑하는지도, 또한 그 사랑이 자신과의 거래로 완성한 '히데코 자유 계획'을 근본부터 바꿨다는 것은 아마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백작이 보여주는 인간상은 현대시대의 남성과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자신이 만든 계획 아래 움직이는 여성. 거기다가 변수는 있겠지만 항상 자기가 생각한 코르셋에 여성을 가두고 그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오만함. 거기다가 '억지로 당할 때 큰 쾌락이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결국에 요즘 대두되고 있는 여성혐오정서(misogyny)를 그대로 표현한다고 나는 봤다. 물론 백작이 꼭 여성에게만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정우는 명실상부 최고의 남자 배우이다. 내 생각에 박찬욱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애초에 하정우를 점찍고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정우의 능청스럽고 능구렁이 같은 모습은 딱 백작의 그것과 닮았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던, 복숭아 먹방. 이게 바로 하정우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냉면을 그답게 먹는 장면이 나오지 못해 아쉬울 뿐. 그냥 백작=하정우라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로 하정우는 그 사람 그대로 영화 속에 내내 등장한다. 위에 언급한 김민희와는 반대되는 케이스. 물론 순전히 내 느낌일 뿐이다.

어우 변태할아범.

오우 변태. 코우즈키는 정말로 레알 변태다. 그는 정말 일본이 좋아서 일본인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책과 그 책의 음탕한 내용이 좋고, 그런 내용을 더 많이 모으고 싶고,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일본인이 되고 싶을지 모른다. 아니면 극 중 일본에 그런 변태적인 성문화의 최정점에 있기 때문에 좋아할지도 모르는 일. 극 중에 숙희가 언급하던 "나 같으면 책 팔아서 금사지 금 팔아서 책은 안 사겠네" 하는 대사는 정확히 코우즈키를 말해주는 대사이다. 물론 물욕이 있는 숙희가 그런 말을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는 자신의 변태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그는 거진 일본인이 되었고, 변태성을 극대화시켜주는 지하실을 가졌으며,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길러냈다. 그곳에서 도망치면 죽었다. 히데코의 손을 차게 하고, 집은 볕이 잘 들지도 않는 곳에 자리 잡았다. 말 그대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위해 본인 이외에 모든 것을 바꾸었다. 결국 히데코와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극 중의 언급되는 대로 호로자식이자 씹새끼인 셈.


흥미로웠던 것은 애초에 결혼을 했었다는 것. 코우즈키는 아마 굉장히 본인에 대해서 자신감이 결여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상한 변태 서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채웠고, 극 중 백작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전처였던 사사끼가 백작과 동침할 수 있다는 말에 자존심도 상한다.

저거 분명히 야설일꺼 아냐. 으휴..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그의 면면은 마지막 지하실에서의 모습. 그때 그는 처음으로 조선말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히데코와의 정사를 세세하게 그리고 과장되게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그 모습. 그리고 주위에 펼쳐진 변태적인 모든 것들이 바로 코우즈키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조진웅에게는 사실 굉장히 도전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전작에서 굉장히 멋지고 정의로운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를 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이 개봉했을 때에 그와 겹치는 이미지를 없애려 많이 노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서 극 중 가장 어색한 일본어를 일부러 구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극 중에 히데코가 코우즈키의 일본어 발음을 지적하는 것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조선말과 일본말의 전환은 정말 대단한 연기였다. '오.. 오망꼬!' 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을 지경.



심쿵 포인트

이 영화에서 심쿵 포인트는 너무나 많았다. 이 영화는 다른걸 다 없애고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좋았던 장면이나 대사를 나열해보고자 한다. 순서는 내 마음대로.

숙희야. 그렇게 들면 아가씨 비 다 맞겠다.

"옘병. 예쁘면 예쁘다고 말을 해줬어야 할 거 아냐"

이미 숙희는 히데코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 대사는 맨 처음 영화를 봤을 때에는 그냥 예쁜 것에 놀란 것처럼 들렸지만, 두 번째 봤을 때에 목소리의 떨림에서 이미 히데코에게 반해버린 숙희를 알 수 있었다.

이 장면 전에 히데코의 등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내가 씻기고 입혔던 것들 중에 이렇게 예쁜 게 있었나?"

암요. 없었지요. 특히나 이 장면은 등을 보고 이야기한다. 뒷모습만 봐도 두근두근 대는 숙희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사.


"니미럴"

히데코가 숙희가 처음 숙소에 와서 잠을 청하는 장면을 몰래 보는 장면에서 나온 말. 조그마한 틈새로 보이는 숙희의 몸매가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관객인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히데코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지. 그래서 그 말도 따라 하게 된 것은 아닐까?

히데코는 숙희의 팔꿈치살을 너무 좋아한다.

"맨들맨들해요" 이빨 갈아주는 장면.

남자 입장에서 본 가장 떨렸던 장면이다. 히데코를 목욕시켜주는 것도 그렇고, 서로의 떨림을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줬던 장면. 숙희는 아래를 보면서 히데코의 아름다운 가슴을 보게 되었고, 히데코는 숙희의 입술을 보게 된다. 그리고 팔꿈치 살을 계속 만지작 거리는데, 아아아.. 상대방을 사랑스러움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장면. 내 심장에 쿵쾅쿵쾅 거리 듯 전해져 온다. 특히 이때부터 숙희는 은연중에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백작과 만나면서도 자꾸 손으로 엄지쇠골무를 만지작거리는 것.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숙희"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가 아닐까. 지난번에 봤던 <캐롤>의 "Flung out of space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의 대사와도 필적하는 대사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파괴행위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사가 아닐까. 부정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히데코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을 훼손시키는 장면에서 이 대사가 그대로 화면으로 옮겨진다. 히데코의 해방감을 얼마나 컸을까. 하지만 처음에 나서지 못했던 그 망설임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돌담에서도 한번 더 나오는데, 망설이는 히데꼬를 가방을 쌓아 넘게 해주는 숙희. 구속의 파괴. 자유로의 디딤. 구원. 정말 좋은 대사와 장면들.

창문사이로 불타는 질투의 눈빛. 이땐 이미 진작에 히데코를 사랑하고 있는 숙희.

세 번의 정사신.

정사는 같은 정사를 한 번은 짧은 버전, 그리고 긴 버전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안에서의 정사신이 있다. 감독은 이 정사신의 느낌을 정말 다르게 주려고 노력했는데, 그것도 정말 좋았던 장면으로 꼽고 싶다. 첫 번째 정사에서는 숙희가 사탕을 물고 키스할 때에 "어 맛이 다르네" 하는 대사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정사는 철저하게 단편적인 시선으로 잘려있다. 아직까지 둘의 사랑이 진한 것인지, 하룻밤의 사랑으로 보이는지 헷갈리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정사신에서는 정말 그 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길이도 다르지만, 같은 정사를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게 구성했다. 특히 긴 정사에서 보여주는 서로에게 커널링구스를 하는 장면과 히데코가 타고났다는 평가를 들었던 그 장면까지. 정말 아름다웠다.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정사로 이뤄질 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정사는 정말로 야했다. 정말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는 그 둘은 이제 완전히 자유가 되었다. 그리고 극 중에 히데코가 읽었던 한 소설에서의 도구를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둘은 정말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들 같았다. 행복해 보인다. 그런 점들을 더 부각해서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짧았지만 훨씬 야하게 보였다.


정신병원에 가기 전 문지방 키스.

이 장면은 한번쯤 더 나왔어도 되지 않았을까. 1장에서만 나왔던 장면인데, 그 둘의 사랑이 진짜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장면이다. (1장에선 사실 둘의 사랑은 증명되지 않았었다) 이 영화를 두 번 이상은 봐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생각해보자. 둘은 서로의 사랑을 진즉에 확인했고, 원래 있던 계획을 바꿔서 백작까지도 노리는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머나먼 곳까지 와서 이제 그 둘은 헤어짐을 앞두고 있다. 숙희는 정신병원에서 제대로 탈출해야 할 것이고, 히데코는 백작의 야심을 적절하게 무너트리고 만나야 하는 상황. 둘 중에 무엇이라도 흐트러졌다간 그때의 그 문지방을 나서는 순간 서로를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 간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을 숨겨야 했던 숙희와 히데코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줬던, 정말 좋았던 장면.


그 외에 인상 깊었던 점들.

숙희를 보는 히데코 눈빛.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사랑하세요.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

히데코가 자살을 결심한 숙희의 대사. 돈에 눈이 멀어 정말로 사랑을 나눴던 상대에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숙희. 그 말에 히데코는 정말로 충격을 먹게 되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숙희의 뺨을 세 번이나 때린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볼 때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 저 말을 하는 숙희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히데코도.


이 장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예쁘니 퍼옴

히데코의 조선말.

그녀는 일본인이지만 조선말을 조선사람처럼 잘했다. 이는 히데코가 정말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싫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려서는 조선말을 몰라서 험담하는 아랫것들이 싫었을 것이고, 커가면서는 읽어야 했던 음란소설들 때문에 일본어가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강요하는 이모부의 언어. 그리고 추측컨데 히데코는 숙희와 말할 때에 절대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녀가 소설을 낭독할 때 썼던 일본어는 자신의 마음속에 없는 말을 할 때 쓰였던 언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자들이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짜증난 백작.

백작의 자지.

그것에 대한 언급은 두 번 나온다. 바로 숙희가 "장난감 같은 좆 대가리에 손대지 말아줄래" 하는 것과 영화의 마지막에 "그래도 자지는 지키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 굉장히 웃긴 포인트의 두 언급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단적으로 남성의 허세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이미 죽는 마당에 그게 잘린 들 무슨 소용이겠냐만, 죽을 때에도 남자로 죽고 싶고, 숙희에게 한 것도 바로 나는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위에 인물평에도 언급했지만, 백작은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의 증거가 되는 알량한 자존심. 백작의 자지는 그것을 뜻한다.

백작의 히데코 추행.

백작은 마음에 없다고 계속 말했지만, 멍청하게도 히데코를 강제로 범하려 한다. 이 장면에서 의미하는 바는 정말 깊은데, 바로 남자는 사랑이 아닌 쾌락만으로 상대방과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비꼬는 내용이다. 히데코가 자신을 정말로 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백작은 단번에 눈치챈다. 입을 맞춰보고 바로 알았고, 또한 정말로 바라는 눈빛이 아니라면서 "이 방면에서 절 속일 순 없어요" 라면서. 하지만 백작은 그럼에도 히데코와 강제로 관계를 하려 한다. 그것은 단순한 쾌락때문이며, 남자의 추함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특히나 뒤틀린 성적 판타지 때문에 '억지로 당하는 쾌락'을 언급하기도 한다. 게다가 백작이 히데코와 사랑하는 척하는 장면들에선, 백작은 은근슬쩍 히데코의 몸을 만지거나, 추행하기를 즐긴다. 사랑이 아닌 성적인 쾌락과 추행을 즐기는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1장. 2장. 3장.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나는 1장에 '숙희' 2장에는 '히데코' 3장에는 '숙희와 히데코'라고 붙이고 싶다. 1, 2장은 철저하게 화자 자체도 숙희와 히데코이고, 중심 내용도 그들 중심으로 펼쳐진다. 영화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좋았고 편했던 장치라고 생각한다. 특히 2장 내내 나온 박찬욱식 서사는 그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결론.

나는 이들과 비슷한 사람은 아니었을지, 반성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히데코와 숙희의 진실된 사랑. 그리고 변태적이고 저급한 남성으로부터의 해방을 다루고 있다. 극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못나고 코우즈키를 필두로 하나같이 변태적이다. 그리고 그 반대로 여성들은 가짜에게 마음을 뺏긴 것이 아니라 진짜에게 마음을 뺏겼고, 결국에 그 둘은 진실된 사랑을 나눈다. 원작을 읽지 못해서 원작도 이러한 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선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특히 남성 감독으로 이런 점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완벽한 여성성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을진 몰라도, 곳곳에 그에 대한 노력이 있다.

양복, 한복, 일본의상까지. 박찬욱은 이런 다채로움을 즐긴다.

극 중에서는 굉장히 언밸런스한 것들을 믹스매치해놓는 경우가 많았다. 극초반에 나오는 일본과 양식 건물의 한건물이 대표적. 그런 건물이 일본에도 없다는 것은, 그런 건물은 이상하기 때문이다. 이중적일 뿐이다. 특히 일본어와 일본 소설 등은 그런 이중적인 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왜색"논란이 일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왜색"이 많아서 불편할 수는 있어도 결코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변태적이거나, 가식적인 모습에서 일본어와 일본문화에 대한 배치를 많이 했다. 그런 이중적인 시대상황을 찾아보면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 만한 시기도 없었고, 그러한 것은 감독의 매우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느낌은 박찬욱의 영화 중 가장 불편함이 덜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 박찬욱의 오랜 팬은 오히려 그 점이 아쉬울 수도 있다. 지하실에서의 이모를 농락하는 코우즈키의 모습이라던가, 좀 더 변태스럽거나 좀 더 고어스러운 것을 바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덜어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만큼 많이 덜어내도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파격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벌써부터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구역질 나는 영화라는 평이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로 유쾌한 영화다. 숙희와 히데코가 집을 버리고 뛰어가는 장면은 더없는 청량감을 느낀다. 애초에 동성 간의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거나, 동성 간의 정사는 역겨운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엔 불편할 영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되고 안되고는 없지 않을까.


"가엾고도 가엾고나... 가짜한테 맘을 뺏기다니"

이 말은 사실 숙희가 히데코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진짜 사랑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독이 전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을까.





추신.

이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모두 '다음 영화'와 '다음 연예 박찬욱 사진전'에서 가져와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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