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이 문제다.
화제의 신작 <부산행>이 개봉했다.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돼지의 왕의 각본/감독 이었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 기대가 안될 리 없다. 참고로 돼지의 왕에서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사회비판적 시각을 알던 사람이라면, 부산행에서의 펼쳐질 대한민국 사회가 어떨지에 대해 아마도 대략적으로 예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시도가 돋보이고, 과연 한국형 좀비물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일테니, 일단 영화의 스포일러가 없는 리뷰를 하고, 그 뒤에 스포일러를 포함한 상세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영화는 지방의 방역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방역을 마친 트럭은 갑자기 노루 한 마리를 로드킬 시킨다. 하지만 그 로드킬 시킨 노루는 갑자기 다시 살아난다.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 영화는 주인공인 공유에 대해 조명한다. 공유는 이혼을 앞두고 있는 펀드매니저인데, 개미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이익을 위해 돈을 움직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딸인 수안이는 그런 공유에 비해 따듯하며, 엄마를 만나기 위해 생일에 부산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었던 공유는 같이 부산에 가기로 결심하고, 아이와 함께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서울역에 가면서도 새벽에 서울 내에 화제가 많이 일어나는 전조가 보이시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열차에 마지막에 탔던 손님은 좀비에게 감염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을 시작으로 해서 열차는 아비규환이 된다. 공유와 딸은 무사히 부산에 도착할 수 있을까. 열차 안에서 만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치게 될까.
평점은 3.5 / 5 이다. 한국형 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고, 사실 좀비물에서 가장 취약해질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로 축소화해서 해결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특히 주연 중에 하나인 마동석의 이야기를 안꺼낼 수가 없는데, 마동석이 지난 베테랑에서의 '나 여기 앞 아트박스 사장인데' 급의 유머와 존재감이 영화 내내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마 마동석이 없었다면 영화의 평점은 1점 정도 내려갔을 정도로.
그에 반해 그 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연기가 매우 아쉽다. 물론 영화 내내 영화 안의 배역 이름도 모를 정도로 사실 배우들은 기능적으로 동작한다. 물론 그런 기능적인 동작에 한계가 있었음은 이해할만하다. 주연이었던 공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정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번화에 대한 표현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리고 특히 야구부의 일원으로 연기했던 소희와 최우식의 연기가 아쉽다. 굉장히 슬피 우는 장면이 많은 관객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은 기능적으로도 제대로 배우가 동작하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부분에서 평점 0.5점을 깍아먹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점은 매우 많다. 좀비는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특수분장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에 대한 부담을 많이 덜어내면서 특수분장보다는 그것이 현상과 재난이라는 것을 잘 녹여냈다. 그리고 많은 요소들이 클리셰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분을 이곳저곳에 잘 녹여냈다는 평을 해주고 싶다. 신파 요소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지만, 사실 좀비물에서의 가족과의 신파 요소는 없을 수 없는 요소이다.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번 영화 촬영에는 '후면 영사 기술'이 쓰였다고 한다. 원래는 CG 장면 처리를 할 때 배우들은 초록색 배경에서만 연기했어야 하는데, 이것은 미리 촬영해둔 주변의 상황들을 스크린에 틀어놓고 배우는 그 스크린을 보면서 연기하면 되는 것이라, 훨씬 좋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새로운 촬영 시도. 좀비물이라면 응당 기대하게 되는 긴박감과 긴장감. <부산행>은 이 모두를 훌륭히 갖춘 영화이다. 망설임 없이 주변에 추천해줄 수 있는 영화.
아, 이래서 출발 비디오 여행은 기획이 어려울 거 같다. 그 안에 있는 감독의 뜻과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을 다 가려야 하니까. 이제는 맘 놓고 스포일러가 가미된 영화에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포인트를 말해보고자 한다. 이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난무하니, 보지 않은 분들의 주의를 요한다.
한국형 좀비물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 해외의 좀비 물든 해당 상황에서의 갈등관계에 집중한다. 물론 워킹데드 같이 호흡이 긴 드라마와 같은 경우는 등장인물의 옛날부터 이어온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해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워킹데드도 부산행처럼 인물적 특색을 잘 나타내지는 않는다. 특히 공유처럼 회색인간으로 대비되지도 않는다.
먼저 부산행에서의 공유는 굉장히 냉정한 인물로 나온다. 그의 직업은 '펀드매니저' 극 중 마동석이 말한 것처럼 '개미핥기'로 비아냥을 당하는 직업이다. 작전을 걸거나 정보를 미리 취득해서, 사실 개미라 불리는 소액투자자들의 손해는 당연하게 그 개미들의 돈을 긁어모으는 역할. 사실 이것만으로도 영화 내의 공유의 캐릭터는 거의 전부 설명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단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수안이로 대비되는 가족이다. 그래도 그가 냉정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딸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않은 것이 결국에 부산행에서의 메인 줄기가 된다. 특히 이 사건을 일으켰던 원인이 공유 자신이라는 점도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가 작전을 걸어서 살려놓은 바이오관련 회사가 극 중 좀비사태의 원인으로 파악된다. )
공유에 대한 성격을 볼 수 있는 장면은 딱 짚어보면 몇 가지 기억나는데, 수안이를 붙잡고 이럴 때에는 우리 가족만 생각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장면. 그러면서 마동석이 건너오는 문을 닫아버렸던 장면이 있다. 그리고 특히 수안이와 둘만 살아야겠다며 대전역에서 메인 광장이 아닌 다른 광장으로의 탈출 시도도 극 중 공유의 선택은 확실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극중에 수안이는 그의 엄마와 이혼하는 원인을 그의 '자기밖에 모르는' 점을 꼽는다. 딸도 알고 있으니 극 중 공유의 성격은 이제 더 말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점점 선한 사람으로 변모하고, 결국 가장 중요한 가족도 지키지만 함께한 동료와 특히 정유미를 지키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 나름 뻔하지만 처음과 끝이 극적으로 바뀌는 캐릭터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다.
그리고 부산행에서의 대한민국 사회는 한마디로 '노답'이다. 그 사회는 모든 것을 가린다. 좀비 현상을 그냥 '폭력시위'로만 TV에 노출된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으로 나오는 지방 인터체인지 방역 씬도 주목해 볼만하다. 그렇게 방역을 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정부는 이미 그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대사에서도 지난 구제역처럼 돼지들 싹 다 묻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트럭 운전사. 정부의 대처는 그토록 극단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역은 차를 세차하는 듯한 방역에 그치고 있다. 그걸 하는 사람들도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체 그 일을 대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이 그냥 대충 넘어갈 일일까? 가리기에만 급급하지 해결책도 그렇다고 솔직한 공개도 못하는 정부. 정말 무능력해 보인다. 이는 요즘 사회분위기를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 현상에 대해서 정부에서 내놓은 담화문은 이 영화의 정수이다. 도대체 어디가 안전하다고 하는 것일까. 사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그 인터뷰를 하고 있던 와중에 좀비가 그 발표자를 물어버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의 대부분 사람들이 좀비화 되었고, 공유 같은 펀드매니저가 사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있는 어머니까지 좀비화 되었다면, 이미 서울은 지옥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 폭력시위로 그 위기를 격하시키고, 통제되고 있다는 정부의 말. 생각해보면 그걸 발표하는 정부당국자는 그런 지옥에서 많이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이야기 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부관계자만 안전 할 수 있는 세상.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우리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키는 데로 대전역에 멈춰 선 열차. 현재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기관사를 통해서, 통제실이나 본부에서도 상황전파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게 된다. 어쩜 기관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대전역으로 오기만 했을까. 대표적으로 기가차는 장면.
거기다가 더 재밌는 사실은 바로 군대인데, 역시 당연하게도 남들 모르는 상황을 군대에서는 모두 알고 있다. 대전역에 도착하면 격리될 거라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나 대위라는 보잘것없는 직위자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는 이미 군대가 가장 앞장서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대전에서의 방어선은 맥없이 뚫렸으며, 군인 전체가 좀비화 된 것을 민대위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군자체도 무능력하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마 군대에도 자세한 정보는 수뇌부들만 알고 있거나, 아니면 이런 좀비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작전을 수행한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회의 이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천리마 고속 상무'라는 캐릭터로 대표된다. 영화 중반 9칸에서 15칸까지 목숨을 건 구출을 한 일행들에 대해서 '감염된 것 아니냐'라는 시선을 보내고, 그들과 격리될 것을 주장하는 모습에선 우리 사회에서의 계층분리에 대해서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물론 감염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같이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고 따로 격리시키고, 자신만 살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많은 관객들은 육성으로 욕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의 비참한 최후는 누구에게도 크나큰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천리마 고속 상무'는 극의 마지막까지도 지속적으로 영화의 쌍욕 포인트를 담당한다. 영화 내의 공유와도 대비되는 행보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을 말해보자면, 선은 마동석으로 대표되고 있다. 악은 당연히 천리마 고속의 상무로, 그리고 그 둘 사이에 공유는 어느 정도의 위치일까를 내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하지만 결국 공유는 마동석에게 이끌려 선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이 3명으로 대비되는 갈등 요소 역시 영화를 지탱하는 좋은 힘이 된다.
하지만 이 상무의 모습은 영화 속 캐릭터만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영화 중간에도 상무의 말에 이끌려 주인공 일행들을 격리시키자는 여러 승객들의 욕에 가까운 외침들이 들린다. 인간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본성이 나오기 마련.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당시 욕을 하던 관객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 <부산행>의 장점과 단점은 굉장히 명확하다. 좀비물이라는 어쩌면 SF스러울지 모르는 소재를 열차라는 소재로 간단하고 몰입감 있게 풀어낸 점이나, 뻔한 신파 요소나 좀비물의 클리셰의 한계를 극복하고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한 점들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부 어설픈 연기가 정말 아쉬운 점. 주인공의 캐릭터변화에 대해서 그렇게 설득력있거나 극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점등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마동석. 일명 마블리, 마쁜이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역시나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잘 극복해낸 데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나 연상호 감독의 사회비판적인 생각을 잘 읽을 수 있었다. 영화 내내 살아남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와 국가는 별다른걸 해주지 못한다. 그런 무정부 상태에서의 사람의 이기심은 극에 달하고, 결국에 그 안의 소규모 사회에서의 충돌에서 많은 갈등을 낳고, 그것이 흥미롭게 계속해서 극을 이끈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