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설득되지 못한 절망에 대하여.
믿고 보는 하정우의 영화. 거기다가 감독은 지난 영화인 <끝까지 간다>로 주목을 받았던 김성훈 감독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안 볼 수는 없는 영화. 다소 불안한 것은 지난 하정우가 나왔던 <더 테러 라이브> 같은 하정우의 원맨영화라는 점과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마치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았던 모습들이다.
영화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하였던 한정된 공간 안에 갇힌 사람과 그것을 외부에서 구출해내려는 노력을 담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비극인 '세월호 사건'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감독도 아마 이러한 점들을 군데군데에서 연상해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렇듯 한사람이 극을 끌고가고, 또한 이미 있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치들은 어떻게보면 어려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시도를 잘 풀어내고 있을까. 그러한 얘기가 관객에게 잘 설득 될까. 내가 생각하는 평점에 대해 말해보자면, 5점 만점에 3개이다.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잘 풀어갔으나, 곳곳에 배치된 의도된 코믹 요소와 오히려 현실의 모습을 잘 표현해내지 못한 모습들이 아쉽다. 아마 이 리뷰는 이 영화에 기대했지만 없었던, 아니면 아쉬웠던 면면을 돌아보는 리뷰가 될듯하다.
포스터 아래로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영화의 줄거리는 요약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료하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처음 주유소의 배수구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유소에서 3만 원을 주유하려던 기아자동차 판매사원 이정수는 귀를 못 듣는 할아버지 덕택에 기름을 만땅으로 채우고, 생명수와 같았던 물을 2병을 얻게 된다. 사실 이 지점부터 이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보여준다. 하필이면 무너지는 터널 앞에서 들른 주유소에서 기름을 다 채웠고, 그냥 귀찮았는데 물까지 챙겨주는 행운. 물론 그 뒤의 사고를 생각해보면, 마냥 행운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그런 자그마한 사건들이 모여서 방향을 만드는 거니까.
그리고 터널에 갇혀버린 이정수는 생각보다 태연하고, 생각보다 살만하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 된다면? 했을 때 보다 훨씬 이정수는 놀랍도록 침착하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진지해야만 하는 모든 부분을 제외하고 밝게 만들어졌다. 사실 지난 작품이었던 <끝까지 간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슬프거나 비통해야 할 장면들에서, 이선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 그 공식은 이번 작의 하정우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들이 유독 많았다. 이렇게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작품에서의 새드 엔딩이라니. 아마 말이 안 되는 전개가 아닐까 싶었다.
후반부에는 땅굴을 잘못 파고, 작업반장이 사망하고. 그리고 하도 제 2 터널의 공사가 재개되어서 어쩔 수 없이 극 안에 웃음기가 빠졌지만, 결말 부분에서 못내 그 웃음은 돌아오고야 만다. 극의 반이상이 어두운 무너진 터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생각 이상으로 밝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코믹하고, 해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건 극 중에 이정수, 구조대장이다. 아마 감독은 이 사회에서 가장 밝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이 둘이라 믿었던 것 같다. 자신의 살 수 있을지 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 줄 아는 이정수. 그리고 그런 사람을 끝까지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오줌까지도 먹은 구조대장. 우리 사회는 위험천만하지만, 이런 따듯한 사람들 덕택에 사회가 밝에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사회의식은 매우 비판적이다. 일단 첫 번째로 감독이 풍자한 것은 기자들이다. 사건이 벌어진 직 후부터 기자들은 자신들의 보도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생존자와 통화를 시도하거나,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식을 밖으로 전하는 것을 우선시하게 된다. 특히나 땅을 잘못 뚫었을 때에도 마찬가지. 남아있는 부인의 소식을 전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언론인들은 자극적인 보도를 통해서 마치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모르는 기자들이 많다.
그리고 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장관 연기도 압권이다. 그녀는 결정하지 않으며, 애매한 말만 반복한다. 하도 제 2 터널 공사에 대해서도 "협의해서 진행하시라"라는 결정을 피하는 말을 한다. 구조의 책임자들은 사고 현지에 와서 돌아가면서 이정수의 아내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이정수의 구조에 대해서도 나중에 미온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온적이었지만, 특히나 하도 제 2 터널의 공사와 함께 이제는 살아있을지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는 동의서를 부인에게 받는 비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사실 길게 열거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 안에서의 사회인식은 '안전'을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사고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브리핑은 "대한민국의 안전이 다시 한 번 무너녔습니다"였고, 하도 터널 위에 걸려있었던 간판도 '안전한'이라는 글자만 똑 떨어진다. 애초에 터널은 부실공사로 무너졌고, 환풍기의 위치도 한 개를 빼버리면서,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나올 수 있는 시간에 구멍을 잘못 파버 리는 짓을 해버리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이정수가 하는 '따봉'은 그래서 기자들에겐 '국가에 대한 고마움'으로 보도되지만, 관객들에게는 "좀 비켜라 개새끼들아"라는 말을 한 구조대장에게 해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혹시 나에게 한 소린가 깜짝 놀라게 되는 장관에서, 우리 사회의 인식에 대한 감독의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에 대해서 아쉬운 점들은, 일단 너무나 많은 코믹의 배치이다. 터널 안에 갇혀있는 이정수라는 주인공은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그 상황에 들어선 사람은 아마 보통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물론 위에 이 영화의 밝은 부분을 나타내는 역할이기는 하다. 하지만 극의 대부분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의 코믹한 모습은 사실상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다. 너무 밝은 비극은, 더 이상 비극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도 또 한 가지 들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나 명확한 선악의 구도이다. 물론 감독이 그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나는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구도는 영화적인 요소일 때에는 그렇게 좋은 장치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예술은 현재의 거울이긴 하지만 말이다. 터널 속에 갇힌 이정수와 그걸 구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사람들의 구도는 어쩌면 극에 몰입하게 할 수는 있지만, 너무 뻔한 갈등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래서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악하게 그려져야할 사람들이 생각보다 악하지 않다. 가장 맹렬하게 반응을 보였던 작업반장의 어머니도 사실은 피해자이다. 구도는 명확하지만, 맥빠지는 악역들. 차라리 명확했다면 그들의 특색을 좀 더 극명하게 보여줌이 어땠을까.
마지막으로, 너무나 희망적인 극 배경이다. 사실 이 부분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 실종자가 존재하며, 밝혀진 진실 부분이 없이 유가족들이 2차, 3차 피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내용은 굉장히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물론 후반부에 정말로 이정수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 아내가 클래식 방송에 나와서 포기한다면서 오열하는 부분 등은 충분히 절망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복합적인 절망으로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정수가 구출될 때에 그만큼의 감동보다는 오히려 당연스럽게 나올 거 같다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사실 재료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고의 시작과 그 안에서의 고난. 갈등. 절망. 그리고 밖에서의 절망. 그리고 구조하는 단순한 골격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애초에 터널이라는 사건이 일어난 본연의 문제에는 전혀 접근하지 않았다. 터널에서 구조되어서 한가롭게 지내는 주인공. 물론 터널을 지나면서 못내 불안해 하기는 하지만, 후유증이 그렇게 심해 보이 지는 않는다.
물론 정말 후유증이 없을 수도 있고, 모든 문제가 정말 희극적으로 잘 풀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들 없이 어쨌든 구조되었고, 어쨌든 잘 살고 있다는 듯한 결론 방식은 쉽게 동의되지 않는다. 그만큼 절망적인 재료들로 생각 외로 밝은 결론에 그래서 더더욱 적응되지 않았다.
나는 이 영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는 살짝 애매한 영화가 되었다. 사실 3점도 점수를 내 나름대로는 후하게 평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터널은 좀 더 절망적이었어야 몰입되고, 좀 더 갈등 상황을 정말 누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 관객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좀 더 뻔하지 않은 방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모습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 이런 결과가 나왔겠지만 말이다.
감독은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느낄 근원적인 두려움들에 대해서, '사회는 안전하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믿으며 살자'라는 메시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에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그것이 아니어서 내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다른 메시지들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그것보다 더한 절망적인 사건이 우리나라에 "뜻밖의 희극적 요소"들로 그러한 면을 나타내는 것 자체가 나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왔을지 모르겠다. 극 중에서는 주인공은 살아 돌아왔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고, 극 중에서 꼬집었던 대상들은 현실에선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하지만, 최근의 사회적인 현상이 연상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와 이야기는 그래서 좀 더 조심스럽거나, 혹은 좀 더 짜임새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 비극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희극. 설득되지 못한 절망. 나는 그래서 더 와 닿지 않았다.
덧붙여, 찾아보니 터널의 원작소설 결말은 영화와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내가 느끼는 사회는 아마 원작쪽에 훨씬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