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리뷰 #1
봉준호 감독의 문제적 신작. <기생충> 처음 본 그날부터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실로 대단한 영화. 그래서 그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니 리뷰의 양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래서 연재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하나의 글로 모든 생각을 압축하는 것이 나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첫 글을 연재하는 6/10일부터 14일까지 총 5편의 기생충 리뷰를 연재한다. 그리고 연재를 마친 후에는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라이브 방송을 계획하고 있다. 그 정도로 할 말이 많은 이 영화가 나는 무척이나 맘에 든다. 봉준호식 유머. 그가 이 사회의 많은 것들을 뒤틀어보려는 시도. 위험한 주제를 가져와 독특하게 다루는 그의 방식들이 모두 집대성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이 영화는 정말로 많은 '문제'가 있다.
영화가 던져준 수많은 질문들. 앞으로 5일간 내가 꼽은 영화의 문제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오늘 골라본 문제는 '빈부격차'의 순간들이다.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두 가족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감독의 물음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빈부격차라는 주제. 영화는 실제로 만날 일 없는 두 가족을 틈새 없이 밀착시켰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나타내고 있다. 그 빈과 부 사이의 모든 것들을 모든 곳에서 담아내고 있다.
그림 아래로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카메라는 시종일관 철저하게 계급에 따라서 높이를 나눈다. 영화 시작의 기택의 집은 반지하의 창에서 기우를 잡으며 하강하지만, 그가 찾아간 박사장의 집은 상승의 동선 만을 다룬다. 그리고 기택 가족 전부를 집안으로 들이는 역할을 하는 연교는 항상 새로운 알선 장소로 내려오는 계단을 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어두운 집 밖의 골목에서 그들을 소개받는다. 박사장네에서 그렇게 밖의 장소로 내려오는 사람은 오직 연교밖에 없다. 같은 가족 안에서도 그들의 서열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자, 그 알선들이 박사장네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캠핑을 가서 집이 비던 날. 대책 없이 그 집안에서 술을 까먹고 있었던 기택이네 가족이 처음 문광과 근세를 발견했을 때. 비슷한 처지의 둘도 철저하게 높낮이로 나뉜다. 기택은 오히려 그 지하실에 살던 근세에게 "이런 곳에서도 살아지나?" 하는 말을 한다. 근세는 "우리나라에 땅 밑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라면서 둘은 사실 같은 높이에 있는 것을 암시한다.
지하실은 부엌의 아래 창고에 있으면서, 박사장네 가족들이 현관을 지나 거실로 향하는 곳과 맞닿아 있다. 집에 사는 사람들이 지하실의 근세를 지나쳐 집의 2층에 올라갈 때. 그는 머리로 그 격차의 '리스펙트' 세리머니를 행한다. 등 세개를 키기 위해 마치 삼전도의 굴욕과 같은 세번의 버리박음은 어찌보면 그가 그곳에 살아있을 수 있는 감사함의 표시이자.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의 상징처럼 보일 정도다.
기택이네와 문광네가 한바탕 난리통을 겪고 집을 빠져나가던 찰나. 다송이가 내려와 인디언 텐트를 치는 바람에 기택, 기우, 기정은 거실 식탁 아래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 위 소파엔 박사장네 부부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들의 아래엔 죽어가는 문광과 그의 남편 근세가 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높낮이로 단적으로 요약해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집에서 빠져나온 기택이네 가족들은 주차장을 시작으로 내내 내려가기만 한다. 유일하게 나오는 평지는 하필 터널 속. 비를 맞으며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가는 그들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내려서 도착한 집은 이미 비에 침수되어, 더 이상 집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비가 와도 운치 있던 박사장 네 집과는 달리 내려가는 그들을 따라서 같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가는 비에 기우는 이내 잠시 멈춰버린다. 하루아침에 높은 곳에 햇빛을 맛보던 그가 갑작스러운 물난리에 마치 떠내려가듯 내려가는 자신의 비관적 운명을 이제 알아버린 탓일 것이다.
비가 오는 와중에 민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기우. 그런일을 당할리 없다며 말하는 기정이의 다그침이 너무나 타당해보이는 가운데, 그에겐 부자에 대한 뜻 모를 경외심이 가득하다. 그 물난리 뒤에 다송이의 가든파티에 초대되어 그들을 처음으로 내려볼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서 그에겐 그들 사이에 어울릴 수 없다는 이질감만 가득하다. 빈부에 상관없이 그들을 처음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그 장면에서 그는 오히려 더 깊이 아래에 있는 곳에 돌을 들고 향한다.
처음 반지하의 창문을 배경으로 시작한 영화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택의 집에 햇빛을 비추며 시작한다. 소파 위에서 와이파이 암호를 입력하던 기우의 머리에 살짝 비추는 햇살.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햇빛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가 거짓 과외 선생질을 하기 위해 처음 박사장 집에 찾아간 날. 크고 거대한 문 사이로 보이던 대나무를 비추던 햇살은 그가 여태까지 집에서 받아보지 못한 햇빛이었다.
감독도 그것을 염두하듯 아래서 올라가는 기우의 발걸음에 맞춰서 과도한 모양으로 햇살을 잡는다. 마당을 가득 채운 빛의 모습에 기우는 속이려는 대상을 상대로, 이내 진심 어린 감동을 전하고 만다. 그리고 온 가족이 박사장에게 기생하고, 그들이 캠핑을 떠난 날. 기우는 그 마당에 누워서 그 햇빛을 온몸으로 맛본다. 단지 돈이 있고 없을 뿐인데, 모두에게 내리 쮤 수 있는 평등한 햇빛이 그들에겐 없는 셈이다. 자연적인 것조차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차이로 벌어진 그 들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남궁현자 선생님의 예술적인 터치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을 수 있는 박사장네의 창문이 기택의 집에선 지나가는 취객의 노상방뇨를 걱정하고, 그 사이로 비가 들이치고, 결말부의 차갑고 푸른 눈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과는 상반된다.
같은 날 모두에게 똑같이 내렸던 비는 너무나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대책 없이 술을 퍼마시며 거실에서 이 집이 우리 것이라며 여유를 즐기던 기택이네 가족. 그때 문광은 몰래 CCTV 선을 끊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박사장네는 캠핑장에서 작은 종류의 재난을 경험한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입장의 나도 번개가 치고, 창 밖에 비가 오는데도 태평할 그 가족이 이해되질 않았다. 저러면 그들이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높은 위치의 집에서 큰 액자 같은 창을 통해서 밖을 보던 기택이네 가족은 전혀 그 비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엔 이미 반지하 집에 물이 들어차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결과는 더 참담하다. 기택의 집을 집어삼킨 비는 연교에게는 미세먼지 없는 하루를 선물한 비가 된다. 정화조가 역류해 변기에서 구정물을 뿜어내는 것 때문에 변기 위에 올라간 막내 기정이지만, 박사장 네 막내 다송이는 그날 자처해서 미제 인디언 텐트를 들고 집 마당이라는 재난이 제한된 곳에서 재미로서의 물난리를 즐긴다.
연교가 비 온 뒤 맑아진 날씨에 머리에 고데기를 꼽고 쏟아지는 햇빛을 만끽하며 파티를 준비할 때에도, 충숙은 아이가 깰까 봐 학익진 테이블을 제대로 펼칠 수도 없다. 수많은 옷장 사이에서 옷을 고르며 선물을 사 오지 말라며 전화를 시작하는 연교와 대비되어 초대받은 기택의 가족은 그 이재민의 항의라는 난리통 속에서도 깔끔한 옷을 찾기 위해 옷 무더기를 뒤진다.
햇빛이나 비는 격차의 현재를 나타내지만, 냄새는 격차의 결과를 나타낸다. 현재 이미 벌어진 격차를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격차가 이미 서로에게 누적된 결과로써 그 사이가 얼마나 거대한 차이인지를 느끼게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냄새라는 키워드로 그 격차를 굴욕, 그리고 폭력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매개로 사용한다. 그들이 모두 박사장네에 기생할 때. 그들에게서 전부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감지하는 다송. 분명 아버지의 코를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반지하 냄새'라는 것을 말하는 기정. 그때는 누가 알았을까. 이게 그 비극의 촉매제가 될지.
기택이 박사장을 살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테이블 아래에 숨어있던 기택에게 특유의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가 졸라 선을 자꾸 넘어온다며 말하는 박사장의 말부터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때 기택은 너무나 큰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자식들 앞에서 고쳐질 수 없는 치부가 드러날 때. 잠시나마 그 집에서 아늑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했던 자신과는 메꿀 수 없는 굴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택은 팔로 자신의 눈을 가린다. 기택의 분노와 모멸감은 눈을 가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체육관에 돌아와 무계획이 계획이라며 말하는 기택이 갑자기 자신의 눈을 가리며 하는 얘기는 자세히 들어보면 굉장히 충격을 안겨준다. "사람을 죽이든, 나라를 팔아먹든 다 상관없는 거야 시발 알았어?" 사실 아들에게 말할 수 있는 종류의 말이 아니다. 서슴없이 분노의 말하는 장면에서 그 분노가 깊이 있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다음 날. 가든파티에 초대된 기택의 표정은 그 전의 가식적인 표정과 너무도 다르다. 마트에서 연어를 집어넣는 것을 따라다닐 때에도, 와인 병을 힘겹게 받아낼 때에도. 운전대를 잡은 그 순간도 붉게 홍조 핀 그의 얼굴에 분노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마침내 연교까지도 알아차려버린 그 냄새에 다시 한번 자신의 옷을 코로 가져간 기택. 하지만 그 냄새와 함께 살아온 그는 그것을 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처음 지하실에서 문광네 부부를 만났을 때에 이런 곳에서도 살아진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들이 풍기는 냄새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것은 결국 그 둘이 동일한 냄새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이 대만 카스테라를 창업했다가 망한 전력이 있는 불쌍한 가장 둘에겐 박사장은 참을 수 없는 것이지만 서로는 맡을 수 없는 냄새를 공유한다.
딸이 문광의 남편에게 찔려 생사를 오가고 있는 와중에, 그에게 차키를 던지라는 호통을 치던 박사장. 차키를 주워 가던 박사장이 그 참을 수 없는 냄새에 치를 떨자. 이내 그 분노는 기택을 집어삼키며, 칼을 들게 만든다. 이토록 만날 일 조차 없었던 가족의 만남은 결국 냄새 때문에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다음 리뷰는 연쇄 리뷰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