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스타트업> 4화를 통해서 본.
이 드라마는 분명 개발자의 사고방식을 연구하고 쓴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의 초입에 조건문 하나를 빠트려 버그에 빠져 멈춰버린 도산의 이야기는 흔히들 개발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복기할 때에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그걸 빼먹었구나….!
4화의 주된 내용은 모두의 본격적인 스타트업의 무대. 샌드박스에서 펼쳐진다. 극 중 샌드박스라는 이름은 참 잘 지은 이름이다. 투자유치 후 안타깝게 사망한 서주헌(달미, 원재의 아버지)의 말에서 따와서 스토리가 있고, 이 샌드박스의 사전적 의미 또한 딱 맞다. 특히 개발자들에게 샌드박스 환경이라는 것이 익숙하고, 아이들의 모래가 되어주듯 스타트업의 엑셀러레이팅을 돕는 부분까지 설명하고 있다.
샌드박스에 지원하는 달미의 모습에서 아버지 주헌을 느끼는 할머니. 역시 그 창업자의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 한편 원인재를 따라온 직원들이 네이쳐모닝을 나오게 되면서 그녀의 행보도 탄력을 받게 된다.
한 편, 코다 1등으로 많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 삼산텍은 또 한 번 한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개발적 용어로만 이뤄진 기술 설명이었으며, 그 좋은 기술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돈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전혀 하지 않는 모습에 투자자는 모두가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기술은 결국 편리함을 이루는 무엇의 도구일 뿐. 사실 기술로만 존재할 때엔 그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들에게 접근하여 기술을 탈취하려고 시도하는 다른 개발자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도산에게 지평은 정말로 뼈 있는 말을 던진다. 전문 경영인. 즉 CEO를 영입하라고. 자신에게 대표의 자질이 없느냐고 묻는 도산에게 다시 한번 그렇다고 쐐기를 박는 지평. 그가 말하는 대표의 자질. 대표의 DNA란 무엇일까? 이것이 4화에서 이야기할만한 이야기다.
한 편 공대 시절의 뜨개질 동아리의 에피소드로 다시 한번 공대생들이 자주 빠지게 되는 ‘과학의 함정’에 예가 추가로 등장한다. 다시 생각해도 이건 정말 내 주위를 사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된 고증이라 할 수 있겠다.
달미와 도산의 애정전선은 잘 진척되는가 싶다가도 도산의 마음 마음속에서 달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지 속 도산은 사실은 지평이었고, 달미의 이상향은 바로 그 편지 속 도산이었으니까. 고스톱을 치면서 둘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면을 보고 도산은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된다. “달미가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다”라고.
1차 서류합격을 통과한 달미, 인재, 도산은 결국 그 자리에서 많은 부분의 거짓이 들통나게 된다. 50개 단어의 5개의 키워드를 많이 맞추는 순서로 CEO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저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의 설정이지만, 직관과 트렌드를 읽어야 하는 점은 대표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연스럽게 CEO에서 탈락한 도산과 CEO 없는 삼산텍에게 달미냐 원재냐 하는 조건문에 없던 선택지가 주어진다. 달미에게 했던 수많은 거짓말 중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대표라는 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달미는 누구에게 멋져 보이고픈 순간이 있다며 이해한다.
둘 중에 달미를 선택한 삼산텍. 그 이유는 짧지만 명확하다. 개발자들은 의외로 자유에 민감하다. 누군가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가져온 것 그대로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을 자유롭게 코드로 구현하고픈 욕심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개발자로 영입한다는 제안을 한 인재보다, 자신을 대표로 영입해달라고 제안한 달미를 선택한다.
삼산텍 + 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극 중 지평이 말하는 대표의 DNA라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능력 있는 대표 옆에서 그들을 지켜본 나의 경험으로 보기에, 대표는 일단 임금을 잘주고, 돈을 잘 끌어와야 한다. 너무 갑자기 돈으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예전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스타트업에게 돈=투자는 태아의 탯줄과도 비슷하다. 그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대표에게 가장 필요되는 능력은. 역시 돈을 끌어오는 능력이다. 그 돈으로 직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극 중 인재가 자신을 따라온 직원들에게 그래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임금에 관련한 것이다. 대표의 막중한 책임은 결국은 돈에 있다.
돈은 어떻게 끌어올 수 있을까? 거기엔 생각보다 많은 능력이 요구된다. 일단 수많은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그들을 만나서 투자를 이끌어 내기까지에 필요한 혁신적인 제품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제품을 오늘 그 아이템을 처음 본 사람에게도 감명을 줄 수 있도록 잘 설득하여야만 한다.
모든 대표의 능력은 결국 상황판단에 달려있다. 요즘 트렌드와 키워드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 키워드와 우리 제품을 연결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그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일까. 하는 매일매일 가진 자본금을 깎아먹으며 돈이 떨어질 날을 두고도 태연하게 그런 상황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돌아서고, 맞다 싶으면 우직하게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력. 그래서 지평은 DNA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흔히 한 분야에 엄청난 뛰어남을 가진 스페셜리스트와 두루두루 많은 것을 알고 넓게 보는 제너럴리스트 중 대표에는 제너럴리스트가 어울린다고 한다. 극 중 도산은 대표적인 스페셜리스트고, 반대급부로는 의외의 첫 관문인 50개의 단어의 키워드를 뽑아 통과한 40인의 CEO들. 그중 달미와 인재는 제너럴리스트다. 깊게 파고 들어갈수록 다른 분야의 간단한 상식에 둔감해질지 모르지만, 그렇게 깊지는 못해도 넓게 알다 보면, 그 들간의 연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아마 5화 이후의 에피소드에서는 달미의 그런 능력이 빛을 발하는 내용이 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혹평을 당한 도산에게도 많은 가능성이 있다. 대표로서 무언갈 이루고 싶다는 야심으로 당차게 샌드박스 입성을 지평에게 제안한 면. 그리고 해커톤이라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 빠르게 영입해야 할 대표를 고르는 직관. 그 상황에서도 팀원들의 신뢰는 잃어버리지 않는 리더십. 오히려 그가 대표로서 각성하게 되는 내용도 재밌을 거란 상상을 해본다.
인재의 행보도 지켜볼만하다. 그녀의 대표로서의 자질은 회사를 나올 때 같이 따라 나온 직원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미 일정 부분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벌가 아버지의 덕을 본 것이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모든 걸 내려놓고 도전하는 그녀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지켜볼만하다. 그녀가 가진 최고의 능력은 이미 대표로서 회사를 키워본 경험이다.
이래저래 말은 많았지만, 결국 성공하면 된다. 대표는 항상 결과로 평가받는다. 옆에서 지켜보니 특히 더 그렇다.
이번 4화에서는 스타트업에 액셀러레이팅이라는 것을 잘 표현했다. 특히 차로 비유해서, 이제 막 차를 탄 사람.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앞으로 가지 않는 차에 탄 사람. 그리고 차를 갈아탄 사람으로 비유했다. 결국에 어떤 차를 탔던 액셀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돕는 일이다. 스타트업에게 그만큼 성장하고 나아가는 모습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미 3년이나 지난 멤버에서 새로운 대표를 영입하는 삼산텍 의 선택에서부터 앞으로 그 선택이 가져올 여러 재밌는 일들이 예상되기도 한다. 고졸 출신에 잘난 경력 하나 없는 대표. 그건 크나큰 핸디캡이지만, 오히려 우리 업계에선 이런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다. 학력보다도 무엇이든 이루는 결과를 보여주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마지막에 모래사장과 아빠의 예로 쓴 글이 달미의 글이 아닌 인재의 지원서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봤을 때 달미가 어떻게 1차를 통과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부족하다. 그녀를 지켜봐 온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녀가 잠재력을 가진 것을 알지만, 과연 그런 경쟁률을 뚫을만한 잠재력을 무엇을 통해 보여줬는지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 부분은 참 아쉽다.
네 주인공이 더 앞으로 나아갈수록 엇갈리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주의 깊게 지켜본 알렉스가 인천에 도착한다. 그들의 항해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