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하겠는 이 영화에 대하여 #2 붕괴기
안녕하세요. 이 리뷰는 먼저 #1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일까? 을 보고 오시면 더욱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글에서의 포인트는 약간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헤어질 결심을 보고 오신 분들을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저를 포함해)에게 바라는 것은 부디 이 영화를 한 번 더 볼 마음이 생기기를이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달라지거든요.
이 글에서도 가장 먼저 밝혀둘 것은, 이 리뷰는 제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개인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고, 또한 제 감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에게 가장 소중한 글 이기도 합니다. 부디 친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아 그리고, 제 글은 카페노노에도 동시 연재 되고 있습니다.
포스터 아래로는 이 영화의 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본 지 하루 만에 2회 차를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극 중 OST처럼, 그리고 사라진 서래처럼 나에게도 미결이 되었다. 아 그래서 서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래 사랑하니까. 그래 그 사랑은 해준이 붕괴되고 나서였겠지? 해준은 언제 처음 서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마치 해준처럼, 답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내게 그랬다. 그래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서, 정말 충동적으로 영화관으로 다시 향했다.
그런데 의외로 2회 차 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웃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영화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을 선에서 웃기 참 힘들었을 정도로. 그래서 나는 내가 쓰는 두 번째 글을 <왜 그리 웃길까?>로 정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 나의 감상은 영화의 제목이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대단함과 놀라움이었다. 헤어질 결심을 말하는 것이 사랑고백처럼 들리고, 나의 붕괴를 얘기하는 것이 당연스레 사랑한다고 들리고, 납득하게 되는 이야기에 대한 호소력에 매료되었다. 내가 왜 이런 현실에선 있지 않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이렇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 역설에 대해서 썼다.
그런데 정작 안개 같은, 이 영화의 해답을 찾기 위해 재관람했는데, 2회 차의 이 영화는 나에게 코미디를 보는 것보다 더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래서 영화를 본 뒤 곰곰이 생각했다. 왜 이렇게 재밌지? 나는 왜 이렇게 웃었지? 그래서 그걸 설명해보고자 결심했다. 하지만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웃음 짓게 될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웃긴 걸 설명하면 안 웃긴다. 문제시 이 글은 깊은 바다에 버린다 맘먹었다.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나를 웃기기로 작정한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크게 세 가지로 사람을 못살게 구는데, 첫 번째는 여자에 미친 바보의 붕괴기. 두 번째는 냉온탕 같은 극명한 대비. 세 번째는 박찬욱식 이상한 개그 센스다. 내가 이 영화에 이토록 광분하는 이유는, 그 세 가지가 나에게 너무나 잘 맞아서이다.
영화를 1, 2부로 나눠보자면, 1부는 철저한 해준의 붕괴기에 가깝다. 1부의 해준은 서래에 미쳐서, 수사를 망쳐가는 과정을 은연중에, 아니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걸 보여주는 장면 하나하나가 큰 웃음을 준다. 해준은 서래에게 언제 반하게 되었을까? 내가 재관람을 한 뒤에 생각하기로는 서래를 처음 보자마자다. 사람의 첫인상에서 호감을 느끼게 되는 건 3초라고 했던가. 실제로 보자마자 바뀌는 해준의 눈빛을 주목해보자. 이 영화는 대사에서보다 오히려 행동과 표정에 정말 많은 게 묻어있다. 해준이 그런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하는 형사라는 것도, 정말 웃긴 포인트. 반한 뒤로 서래와 나누는 문답 하나하나가 점점 더 깊어지는 관심을 대놓고 표현하고 있다.
평소의 해준이라면 당연히 알았을 것들을 서래의 매력에 빠져서 다 놓쳐버린다. 나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땐 그 바보스러움을 지나쳐갔다. 영화를 다 본 뒤에야 재조립되는 앞의 사건들은 이미 희미하다. 왜냐면 영화의 후반부의 사건들이 너무 안개 같고, 미스터리함이 남아서, 오히려 그 웃음기 있는 것들을 싹 잊게 된다. 그렇지만 영화를 만약 재관람하게 된 나에게, 이 영화의 초반부의 대화는 너무나 바보 같고, 웃기다. 전형적인 반한 이성 앞에서 나오는 고장 난 사람의 대화.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마침내.... 저보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이 문답은 해준과 서래가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 모든 결말을 다 아는 상태에서 대화를 보면서 나는 참기 힘든 웃음이 터졌다. 서래는 그 꼿꼿한 자세만큼이나 단어의 뜻을 너무나 정확히 사용했다. 영화 내내 나오지만, 그녀가 말을 할 때보다 문자메시지를 할 때 지키는 맞춤법 등을 보았을 때. 정말 그녀는 누구보다 한국말을 잘한다. 많이 안다기보다, 잘 알고 있다.
설령 그녀는 모르면 웃을지언정 다르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 이 말이 그녀가 기도수의 죽음을 기다렸음을 뜻하는 말임에도, 그 말에 흥미를 느끼며 말하는 해준의 대답은 너무나 형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미 형사 이상의 관심이라 할 수밖에. 해준아. 지금 그걸 칭찬할 때야? 그리고 그 뒤에 그가 하는 말은 내 그 웃음의 무게를 더 짙게 했다.
"패턴을... 좀 알고 싶네요"
이 말은 정말 더 웃긴데, 텍스트 그대로는 당연히 패턴은 기도수 휴대폰의 패턴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래라는 사람을 좀 알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왜냐면 해준의 눈은 서래를 떠나지 못하거든. 이 사람은 뭐지? 이 사람은 내가 알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데. 하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 재관람하고 나서야 그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부검을 해야 한다며, 수완에게 쉽게 설명하라는 말을 전달할 때. 그는 굳이 한 번 더 이 말을 강조한다.
"더 쉽게"
나는 이 말들이 해준이 여자에 미친 바보스러움을 나타낸다고 느꼈고, 내가 웃었던 이유는 이 대사들은 너무나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들리는 표면적인 말과 사람이 무의식 중에 관심과 흥미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점을 교묘하게 섞었다. 그냥 각본으로의 대사가 아닌, 화면에 구현되어 나온 해준의 표정과 행동. 말하는 톤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이건 너무나 의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편이 산에서 어떤 모습이었나요?"
"말씀으로 해드릴까요. 사진을 보시겠어요."
"말씀.. 사진!"
훗날 놀러 간 절에서 해준은 이때에 서래가 자신의 종족임을 알았다고 한다. 자신처럼 사진을 보고 싶어 한다며 말이다. 그 표현도 참 재밌다. 종족. 하지만 말은 똑바로 해야 할 것이, 같은 종족임을 안게 아니라, 같은 종족이길 염원했고, 마침내 이루어졌노라.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말씀이라고 할 때의 해준의 표정과 사진이라고 말할 때 해준의 표정을 보면, 마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시무룩했다가. 사진!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내 밝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말이다.
처음 서래를 보자마자 하는 이 짧은 문답 안에 이미 해준은 객관적인 수사가 불가능함을 대놓고 천명한다. 이 말이 처음 보았을 때에 나에게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사건에 대해서 파 해치고 싶은 형사로서의 해준의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봐보면 일부러 오디오를 과장되게 연출한다던지. 대사를 전달하는 오묘한 표정. 그리고 우리가 이미 해준은 붕괴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중적으로 느껴지고, 이 문답이 재밌어진 것이다.
그 뒤부터는 더 점입가경이다. 서래가 일하는 모습을 잠복하며 지켜보는 해준. 이미 그녀에게 너무 깊어진 관심을 대변하듯. 쌍안경을 통해 지켜보던 해준이 오히려 바로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처럼 나온다. 누구나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과 없을 때 그 사람을 상상하듯. 그렇지만 정말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방안에 덩그러니 놓인 해준. 이 정도면 이미 중증이라 봐야지. 간병인센터 실장님과의 대화에서도 의사소통이 안되시는 독거노인들의 전화는 누가 받냐며, 의심하는 해준에게 천연덕스럽게 간병인이 받는다는 아주 대놓고 알리바이 조작이 가능한 이야기를 해준은 그냥 넘겨버리기도 한다. 최연소 경감도 다른 짭새들과 똑같아지는 순간.
수완에게 할머니를 맡겨놓고, DNA를 채취해야 한다며, 그녀를 서로 불러냈을 땐 이미 그 둘의 장벽은 많이 허물어졌다. 둘의 대화는 이미 형사와 용의자보다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에 만난 소개팅남과의 대화로 봐도 될 지경에 이른다.
"산이 그렇게 싫으세요?"
"공자님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은 산을 좋아한다 했습니다. 난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난 바다가 좋아요."
"음... 나도."
누구 해준한테 산이 좋은지 바다가 좋은지 물어본 사람? 게다가 저 맞장구는 놀랍게도 남자목소리의 번역기에 친 맞장구다. 이것이 정말 나이와 국경을 뛰어넘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심지어 저 말이 형사가 물어본 산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인 것도 웃기다. 여긴 경찰서란 말이야...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취향을 무의식 중에 말하는 해준은 이미 서래가 심장을 달라고 하면, 꺼내어 주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절대로 남편을 죽인 사람 일리 없어라는 확신을 키우게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상한 형사가 되어있다.
"제 얘기 듣고 와준, 단일한 한국사람이에요"
"어떤 한국 사람이요?"
"단일.... 한? (웃음)"
"(웃으며)아 미안합니다. 웃지 말아야 했는데, 표현을 너무 정확하게 하셔서"
"나도 한국어 자신 없을 땐, 웃어요 (웃음)"
이 장면에선 해준도 웃고, 서래도 웃고, 나도 웃는다. 수완만 소름 돋는다. 영화를 처음 볼 때엔 나도 웃지 않았다. 왜냐면 서래는 나에게 아직도 유력한 용의자였고, 그녀가 아무리 매력적이긴 하나. 의심을 지울 수 없어서이다. 하지만 두 번째 볼 땐 나도 무장해제되어버리고 말았다. 저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살인사건 용의자를 불러놓고, 이토록 사적인 대화라니. 상대방이 웃는다고 그 웃음이 전염되다니.
그 뒤에부터는 말로만 친절하던 해준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갑자기 고급 모둠초밥을 사주고, 이빨을 닦으라며 좋은 칫솔과 치약을 짜주고, 화장실의 위치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고 있는 서래도 의아하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해줘? 뭔지 모르게 믿음직하고 든든하네? 사실 전 장면에서 먹은 초밥을 정리하는 취조실은 이게 그 둘이 같이 살고 있는 살림방인가, 아니면 취조실인가를 착각하게 하는 캐미의 향연이다. 초밥을 한입 먹은 서래는 겉옷을 벗고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고, 해준이 테이블을 닦던 물티슈를 서래는 자연스럽게 전달받고, 전달한 물티슈를 다시 쇼핑백에 골인시키는 서래. 박자도 착착 잘도 맞는다.
이게 뭔데 여느 멜로 영화에서 보는 애정신보다 왜 더 설레게 느껴지지. 사람이 가장 실 없이 웃을 땐 언제일까. 웃길 때? 멋쩍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설렐 때 가장 잘 웃는다. 사람 사이에 있는 어쩔 수 없는 벽이 문으로 바뀌는 거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둘은 서로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지구(질곡동 용의자, 이학주)를 체포할 때에 해준을 따라가 깜빡이를 켜고 둘을 지켜보던 서래의 표정까지도 옅은 미소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화면 밖으로 실려 나온다. 각본만으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영화의 정수와도 같다. 영화 속 이들이 설레면, 나도 어느 사이에 웃고 있다.
이 사랑 바보의 화룡점정은 잠복하며 마치 서래의 옆에서 아침을 맞은 것 같은 해준에게 서래가 "굿모닝" 인사하던 걸 출근하며 후배들에게 했을 때다. 해준에게 그보다 더한 굿모닝은 없었겠지. 심지어 표정 안 좋은 상사를 보고도 "굿모닝....입니다."라고 할 정도.
"왜 경찰을 집으로 오라 마라 합니까"
"어차피.. 자주 오시지 않습니까?"
연애나 썸을 타다 보면, 기싸움이라는 게 있다. 이 문답은 이미 그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저 말을 일반 연인의 속 마음으로 바꿔보자면, '그래 나. 너한테 관심 있고, 너도 싫은 것 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반대편의 속마음은 '네가 안 오라고 하면, 안 오니?' 정도. 집으로 오라니까 그 안갯길을 액셀을 꾹 밟아가며, 면도기로 면도도 말끔하게 온 주제에..... 귀엽게 투정은. 원래 더 좋아하면 지는 거다. 그래서 해준은 영화 초반부 내내 진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그랬던가. 사기의 8할은 어떻게 테이블에 앉히느냐에 달려있다고. 일단 앉으면, 게임은 끝난 거라고. 해준의 경우엔 처음 서래를 보자마자 게임은 끝났지만, 이 장면에 와서 이젠 정말 서래는 범인일 수 없다. 그것을 직감한 서래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해명을 착착 내놓는다. 물론 그 증거들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극 중 수완의 말처럼, 해준이 어물쩍 인정해버린 예쁜 여자가 아니었다면. 해준은 분명 진작에 눈치챘을 것이다.
마침내 서래가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고, 둘이 데이트하는 장면들은 하나하나 다 설렌다. 그렇지만 그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설렌다. 하..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하면서 말이다. 내가 영화 초반부에 이미 붕괴가 시작된 해준을 보는 재미를 강조하는 이유는, 정신없이 오고 가는 대사 속에 행동과 표정이 재관람으로 보아야 보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다 보인다. 이미 처음부터 와장창 무너져버린, 바보 해준이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잠도 재워주고, 같이 요리도 하고, 비 오는 곳에서 같이 주머니 속을 탐닉하며 행복해하지만.. 그런 바보 해준은 이내 철저하게 붕괴된다. 자신에 대한 서래의 감정은 모두 거짓이라 믿는다. 하지만 둘의 이 장면들을 다시 보고 있노라면, 그건 절대 해준의 일방 감정은 아닌 것도 알 수 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서래의 관점으로 써내려 가는 글에서 자세히 말해보자.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우리일? 우리 일 무슨 일."
해준은 진짜 바보다.
원래 이 글은 7/7일 목요일에 올라갈 예정이었고, 공언도 했습니다. 이미 영화도 여러 번 봤고, 말하고 싶은 꼭지도 다 뽑아놨으니까 쓰기만 하면 되잖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내일의 자신을 너무 과신했네요. 안타깝게도 이 글에 이 영화가 웃긴 그 모든 면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제 과욕이었어요. 그래서 쓰고 보니 1만 5천 자가 넘어가는 글이 되더군요. 거의 논문을 썼어요.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지. 그럼 성공했을 텐데, 그래서 고심 끝에 글을 나누고, 이미 쓴 글도 많은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발행이 늦어졌네요.
그래서 이 글은 해준의 붕괴기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나머지는 헤어질 결심 연쇄 리뷰. <#3 냉온탕과 박찬욱> 제목을 정했어요. #3는 다음 월요일이 오기 전까지는 발행할 예정입니다. 이미 발행됨!
그리고 전 이 글을 발행한 시점에, <헤어질 결심>을 네 번째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끝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