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하는 이 영화에 대하여 #4 - 송서래
안녕하세요. 이 리뷰는 벌써 4번째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 연쇄 리뷰의 이전 글 #1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 일까? , #2 <헤어질 결심>은 왜 그리 웃길까? , #3 <헤어질 결심> 냉온탕과 박찬욱을 읽고 오시면 더욱 영화를 보셨던 감상이 다시 떠오를 겁니다.
이 리뷰는 제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부디 친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포스터 아래로는 이 영화의 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나는 그게 서래씨에 관해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호미산 정상에서 해준의 대사.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장면을 처음 접한 나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웃기다"였다. 그건 해준을 연기한 박해일의 능청스러운 톤이 제대로 한몫했고, 그걸 듣는 서래도 중간에 한 번 웃기 때문이다. 누구를 좋아는 하는데 잘 표현해내지 못할 때에 그 억양과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계속 보면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서래는 정말 꼿꼿할까? 꼿꼿하지 않을까. 마치 해준이 서래에게 처음 문자를 보낼 때에 고심했던 그 순간처럼, 물음표와 마침표 사이에서 나를 고민케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꼿꼿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따위 결론을 말하려고 리뷰를 4편이나 쓰고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게 가장 잘 나타난 씬은 이 영화의 가장 절정부인 호미산이다. 그중에서 정상에서 이야기하는 둘에게 참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이 절정부는 시작부터 마치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인 양 서래의 "졸지 말아요. 여긴 안개 없어요"라는 말을 듣고 이끌려 가는 해준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곳엔 정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고, 중국에 있었을 시절의 머리로 가발을 쓴 서래가 있었다. 마치 과거의 서래와 지금의 서래. 그리고 앞으로의 서래의 모습까지도 모두 나타내는 장면이다. 대사 하나도 놓칠 것이 없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듯, 특히 서래의 대사를 함께 곱씹어 보자. 그리고, 그녀가 정말 꼿꼿한지 보자.
"엄마. 할아버지. 꽤 믿음직한 남자 데려왔다. 뿌려주세요. 난 고소공포가 있잖아요."
"하아..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해준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지금 농담할 땝니까?"
농담같은 이 대화는 슬프게도 농담이 아니다. 영화를 계속 재관람하고, 서래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나는 이 장면이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실제로 서래는 해준을 만나기 위해 살인사건을 일으켰으니까. 이 문답에서는 서래는 자신이 왜 한국에 왔는지, 그리고 해준이 서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했다. 살인사건을 일으켜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 자신의 엄마와 할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 한국에 와서 결혼한 두 남자에 대한 후회. 대표적으로 꼿꼿하지 않은 서래의 면면이다. 중국에서 너무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들고 왔고, 한국에서의 결혼도 전부 살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놓고 떠나버린 남자를 위해 살인사건을 일으켰다.
"날 떠난 다음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영화를 한 두 번 보았을 때에 호미산의 장면은 굉장히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진다. 눈 오는 산의 정상. 이미 산에서 밀어 남편을 살해했던 전력이 있었던 서래. 헤드라이트를 해준에게 비춘 후 하는 저 대사들은 마치 해준에게 암시를 거는 것처럼 강한 어조로 전달된다. 평소 쓰던 번역기의 목소리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표정또한 왠지 결연하다. 흡사 해준에게 그랬었느냐 묻는 것 같지만 나중에야 들었던 생각은, 이 말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 겪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해준도 마찬가지였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가 떠났을 때, 서래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을 안다면, 누구의 그리움이 더 큰지 우리는 그것 또한 알고 있다. 그를 찾아온 것도 서래였고, 살인 사건을 일으킨 것도 서래였다. 전반부에서는 대부분 해준이 물었던 것들이 이젠 서래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내 손도 충분히 보드랍죠?"
"지난 402일 동안 당신을... 당신을... 그렇다고 해서 난 경찰이고 당신이 피의자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에요. 피의자 알죠? 경찰한테 의심받는 사람."
"나 그거 좋아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늘 하던 대로. 피의자로."
영화를 같이 본 많은 이들에게 오히려 묻고 싶다. 서래는 어떤 대답을 바랐을까. 내 생각에 서래는 여기서 해준에게 전처럼 자신을 예쁘다 해주고, 손이 보드랍다고 해주고, 다시 자신을 잊지 못해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날짜까지 계산했다는 사실에 미소를 보이던 서래였지만, 결국 해준은 둘의 관계를 경찰과 피의자로 정의 내리고 만다. 하지만, 서래도 그 대답을 각오한 눈치다. 수많은 밤, 자신을 의심해 찾아온 해준이 좋았고, 자신을 향해 심문하던 그 친절한 형사가 마침내 돌아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해준과 지금 서래 앞에서 말하고 있는 해준은 다르다.
그리고 그 꼿꼿한 서래에 대한 대사가 오간다. 해준이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 아니 좋아했던 이유일까.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나는 그게 서래씨에 관해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장은 해준이 왜 서래를 자신의 동족으로 느끼는지에 대한 가장 말끔한 설명이다. 중국인이고, 살인자이며, 이미 결혼도 했지만 서래와 통하는 단 한가지. 그것은 해준도 꼿꼿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해준도 꼿꼿할까. 그리고 본의 아니게 붕괴된 해준을 보는 서래는 여전히 꼿꼿할까.
서로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끌리는 두 사람의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를 생각케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메꿔질 수 없는 무언가의 깊은 골이 있다는 얘기.
해준은 자신의 속내를 펴보이고, 말 없이 유해를 받아 뿌리러 향한다.
"그동안 모시고 다니느냐. 너무 무거웠어. 안녕 할아버지. 안녕 엄마."
서래는 유해를 뿌린 해준 뒤로 다가가, 그를 안는다. 해준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으로, 혹은 감당해낼 각오로 눈을 감는다. 하지만 서래는 모두의 생각과는 다르게 비닐로 감싼 증거 휴대폰을 해준에게 건넨다.
"버리라고 했잖아요. 아무도 못 찾게!"
"이걸로 재수사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 그것은 서래를 사랑하는 해준으로 돌아와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결되어 계속될 사랑이 그 휴대폰을 서래에게 주면서 완전히 종결되어버린 구소산 변사사건처럼. 해준의 사랑도 종결되었고, 다시 그 사건도 재수사해서, 미결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해준의 사랑은 그렇게 동작하지 않는다.
서래는 익숙한 주머니 속 구취 캔디와 립밤을 찾는다. 예전에 해준이 말할 때 그의 입을 꾹 다물고 립밤을 발라주던 것과는 다르게, 이내 자신의 입술을 댄다. 헤드라이트로 해준을 내내 비추는 것은 조명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이제는 서래의 마음이 해준을 더 깊게 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해준이 자신의 붕괴를 말하며, 서래를 바라보았을 때 햇빛이 서래 방향으로 비추고 있듯 말이다.
나는 해준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그래서 이 키스는 슬프고 처연하다. 서로 사랑을 확인하여 이끌린 것이 아니라, 엇갈린 사랑의 증거이며, 서래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으니까.
그녀는 양 극단에 있는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녀는 참 불쌍하지만 잔인하다. 호미산은 나라에 빼앗겼다. 그렇지만 아직 자신의 산이라 믿는다. 자신의 언어가 아닌 한국어 드라마를 보며 흉내 낸다. 하지만 문자메시지의 한국어는 누구보다 정확하다. 한국인에게 "한국말 잘 못 알아듣길래"라고 말하지만, 자신 없을 땐 웃는다.
그녀는 돌봄 노동을 정말 잘 해내지만, 그걸 이용해 할머니를 속이기도 했고, 철석의 어머니를 죽이기도 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런 남편을 살해한 살인자이기도 하다. 피의자를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다시 피의자가 되고 싶어한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지만, 사랑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 천천히 물들어간다. 그녀의 드레스는 초록색이기도 하고, 파란색이기도 하다. 산에 유해를 뿌리지만, 자신은 더 깊은 바다로 향한다.
그녀가 정말로 전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은 항상 번역기라는 시차를 두고 전달된다. 정작 떠나는 순간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의 당사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당신이 사랑한다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다.
그래서 서래는 꼿꼿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연쇄 리뷰 중 쓰기 가장 힘든 리뷰였습니다. 그만큼 서래에 대해 생각할 수록 너무 슬픕니다. 최대한 제가 이입한 슬픔의 감정은 배제하고, 호미산에서의 물음을 담백하게 이야기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것이 참 힘드네요.
원래는 이것보다 약 5배 이상의 분량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한번 분량을 나누고, 다음 시리즈로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리뷰 제목은 #5 <헤어질 결심>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입니다.
#1 에서는 사랑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가장 사랑답다고 했던 그 생각이 왜 #5에서는 이런 제목으로 바뀌었을까요? 그건 다음 리뷰에서 확인해주세요. 8월 첫 주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