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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즁 필름 Aug 29. 2022

<헤어질 결심>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 영화에 대하여 #5 - 서래의 사랑

안녕하세요. 이 리뷰는 저의 <헤어질 결심> 연쇄 리뷰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이 리뷰를 처음 보셨다면, 그전에 1-4편의 리뷰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 일까?

#2 <헤어질 결심>은 왜 그리 웃길까?

#3 <헤어질 결심> 냉온탕과 박찬욱

#4 <헤어질 > 서래는 정말 꼿꼿할까.


이 리뷰들은 제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부디 친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스틸컷 아래로는 이 영화의 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호오 여기서 잤구먼?

서래는 언제부터 해준을 사랑했을까?


우리의 사랑은 로맨스보다 오히려 스릴러에 가까운 경우가 있다. 영화는 그 두 개를 자연스럽게 포개 놓으며,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지점과 의심하게 되는 점들을 섞어놓았다. 내 입장에서 해준의 관심은 찾기 쉽다. 하지만 서래의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하는 의문은 처음엔 잘 해소되지 않았다.


서래의 사랑 고백은 영화의 가장 후반부에 그녀가 죽기로 결심한 일을 행동에 옮길 때 비로소 등장한다.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날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다시 보아도 가슴 시린 이 마음은, 언제부터였을까?

해준에게 붕괴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였을까?


그날이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은 날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훨씬 전부터 서래는 해준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변화를 천천히 잘 따라가 보자

처음 서래의 시선은 확실히 불안해 보인다

약자 송서래


“기도수씨 아내. 송서래입니다. 중국인이라 한국말이 부족합니다”


서래는 처음 경찰서에 와서 패턴을 알려줄 때만 해도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물론 용의자 답지 않은 문답을 주고받긴 했지만, 경찰서에서 서래는 확실히 움츠러든 모습이다. 극 후반부 이포에서도 중국인이라 한국말이 부족하다는 말을 똑같이 반복하지만, 그때의 서래는 이 전반부의 서래와는 겉모습부터 말투까지 많은 게 바뀐 모습이기도 하다.


전반부의 서래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약자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이 정의는 놀랍게도 후반부의 서래가 본인을 스스로 정의 내린 것과도 맥이 닿아있기도 하다.


“참 불쌍한 여자네”


수완이 배려를 역차별이라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을 만큼이나 서래라는 사람을 약자라는 있는 그대로 보는 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국인, 용의자, 한국말을 잘 못하는 여러 가지 선입견에 둘러 쌓여서 서래라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지 않도록 영화의 시선이 유도하고 있다. 특히 기도수에 대해 언급하는 서래는 더더욱 그 의심을 짙게 만드는 것들로도 가득하다.


“원하던 대로 운명하셨습니다.”


서래를 약자라고만 하기엔 헷갈리는 장면들도 나온다. 해준이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 서래를 염탐할 때의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그때 서래가 자신보다 더한 약자들을 대하는 모습이다. 서래는 할머니를 아주 능숙하게 다뤘고, 집에 생물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며, 영화가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단호한 서래의 말도 들을 수 있다. 마치 당나라 시조 같은,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서래는 약자이지만, 약자를 보살핀다

경찰서로 다시 온 서래는 점점 특유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기 시작한다. 조여 오는 수사망에 좀 더 자신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하다. 그래서 서래는 해준의 결혼반지를 흘깃 바라보기도 하고, 자신이 할퀴었다고 한 허벅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무려 괜찮다고 세 번이나 말하는 서래. 누가 보아도 의심스러운 모습이다.


“괜찮아요”


이 뻔해 보이는 수법이 실제로 먹혔다는 건 훗날 해준의 부산 집 벽에 걸려있던 사진들로 증명되기도 한다. 예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두 번째 심문에서의 그 둘은 이미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산이 왜 싫은지를 공자님 말씀에 빗대 이야기하고, 모자란 한국어에 같이 웃음 터지는 그 장면들. 물론 가장 결정적인 건 역시 시마스시 모둠초밥일 테지.


그러다 문제적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서래의 화장실 씬. 친절한 형사의 안내에 서래는 경찰서라는 공간에서 움츠러든 자신을 되찾고, 화장실에서 그가 준 밴드를 붙인 위에 향수를 뿌리며 생각한다. 좀 더 이용해서, 의심을 없애야지. 하지만 그 생각을 할 여유를 준 것은 해준이라는 그 형사가 서래에게 친절했던 면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가 준 방수밴드를 실험이라도 하듯 입으로 후 불어 보는 서래. 그리고 서래는 빼놓았던 결혼반지를 다시 낀다.

경찰이 이렇게 친절하다고?

문제적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로 경찰서 안이라는 공간에서 서래가 조금씩이지만 꼿꼿함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유일하게 경찰서 안에서 혼자 등장하기도 한다. 그 어떤 피의자에 비해 당당했던 서래였지만, 친절한 해준이 서래에게 어깨를 필 공간을 마련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그런 친절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말을 처음으로 들어준 그 기도수와 결혼까지 했겠는가?


두 번째로 향수를 뿌리며 후 부는 것은 해준을 이용하려는 마음과 그를 향한 호감의 표현이라는 이중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후 하고 부는 서래와 함께 퍼져가는 향수 물방울들. 정말 방수가 될까? 하고 말하는 듯하기도 하지만, 저 남자. 뭘까? 하는 것도 포함하는 듯한 이 장면은 아주 짧지만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오묘한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낀 반지가 있다. 서래가 혐의를 벗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종전에 해준의 결혼반지를 흘깃 바라본 것의 대척점에 있기도 하다. 마치 밀당하는 것 같은 긴장을 준다.  영화의 부제 격인 “짙어지는 의심. 깊어지는 관심”처럼. 살해자일까 아닐까를 생각하게 하는 스릴러와 나에게 관심이 있을까 없을까 하는 로맨스 인지를 계속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이 이중적인 상황들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심문 과정의 서래는 확실히 움츠러든 모습이다

그 이후의 심문 과정에서 당당한 서래가 돌아오고 있는 문답이 오간다. 불법입국자 중 왜 자신만 남았느냐는 해준의 추궁에


“전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니까요."


자신의 외조부가 만주 조선 해방군의 계봉석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서래를 이 머나먼 한국에 와서 살게 하는 거의 유일한 무기이자, 꼿꼿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말할 때의 서래의 가슴은 탁 펴지고, 갑작스럽게 취조실에 들이치는 빛으로 그 상징을 더해주고 있다. 그냥 폭행피해를 당한 약한 여성이 아니구나. 그 당당함은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관객도 해준도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줬던 기도수는 자신에게 낙인을 찍었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사람과의 대화보단 드라마를 보고 연습해야 했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건 독거노인들과 길냥이뿐이다. 한국에 오면 외조부가 남긴 산이 있다는데 그것도 잃었고, 자기 자신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의 위상은 보잘것없기도 하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이야기할 때 둘은 같이 휴대폰을 본다. 여기서 영화는 극적인 효과를 많이 줬다. 마치 청록색의 바닷속인 것 같은 취조실에 거대한 빛이 들어오니 말이다. 해준의 표정도 다분히 놀란 표정이다. 그걸 설명할 때의 서래의 말투는 힘이 묻어있다. 하지만 빛이 지나가고, 해준과 눈이 마주쳤을 때 서래는 다시 움츠러들고 만다. 둘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것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왜 사람들 간의 거리로 호감의 정도를 표시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갑자기 이지구를 잡으러 해준이 사라지자, 그를 쫓아가 그가 범인을 잡는 모습을 따라가서 구경하는 서래. 차가 정차한 상황에 비상등이 점멸하는 소리가 마치 콩닥콩닥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혀를 날름하며 해준을 생각하는 서래.

반지는 다시 꼈지만, 저 남자 좀 괜찮네?

여기까지가 서래가 해준이라는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다. 이 글을 시작할 때의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 “서래는 언제부터 해준을 사랑했을까?” 그걸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지만, 두 번의 경찰서 방문에서 서래도 이미 해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글로 써 내려간 문장 속에서, 영화를 보면서 점차 서래는 점점 약자의 모습에서 송서래라는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점점 꼿꼿해진 서래. 마음을 내비치다.


서래를 꼿꼿한 서래로 만들었던 것은, 의외로 해준의 친절함이었다. 해준이 친절하게 서래를 대해주는 장면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경찰이 취조하는데 저렇게 친절할까를 생각하게 한다. 여태 가장 믿고 의지해온 사람 없이 지내온 서래에게 다른 곳도 아닌 경찰서라는 곳에서 받은 친절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누구도 자신에게 약자 이상의 취급을 해주지 않았던 이곳에서 받은 해준의 그 친절함에 서래는 남겨놓은 실온의 그 아이스크림처럼, 마음이 녹아있었을 것이다.


"우는구나. 마침내"


아니다. 그녀는 웃고 있다. 자신이 가진 관심과 자신을 숨겨야 하는 운명 속에서 갈등도 하지만, 그를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난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렇게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이렇게 믿음직하고, 친절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 매일 밤마다 날 지켜보며 잠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훗날 재워주려고 해준을 찾아가기 전부터, 해준은 이미 그녀의 숨결로 잠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걸 아는 서래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
"그 친절한 형사의 마음을 가져다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결국 서래는 용의자를 벗어난다. 수사가 종결되었음을 알리는 해준에게 그제야 안심하고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는 서래다.


“기쁜가요?”


결국 살인자로서 해서는 안될 행동들을 한다. 해준의 방에 가서 그가 해준 요리를 먹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질곡동 사건의 범인이 향했을 곳을 알려준다. 만약 해준을 적당히 이용하고, 자신이 범인이 아닌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서래는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오던 해준을 막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죽을 만큼 좋아한 여자네"


죽기보다 감옥을 더 싫어하는 사람이 그랬다는 것에서 서래는 산오의 사랑을 이렇게 요약해낸다. 수년간 쫓아도 답을 알지 못했던 해준과 서래의 차이를 너무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죽을 만큼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를 서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서래는 훗날 좋아해서 살인도 하고, 자신을 미결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정말 죽을 만큼 해준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녀가 속이기로만 생각했으면, 하지 않았을 일
"재워 주려고요"


질곡동 사건이 해결되어 재워주러 온 서래는 이때 다시 결혼반지를 빼고 나타난다. 원래 뺐다가 해준에게 심문받는 도중 다시 끼웠다가, 이때부터 뺀다. 그리고 그녀가 원래 입고 있는 다른 옷들의 색은 자연의 색이다. 바다나 산이나 흙의 색이다. 초록, 노랑, 파랑, 갈색. 하지만 이날 해준을 재워주러 입고 온 옷은 핑크색이다. 반지를 빼고, 핑크색 옷을 입고 온 그녀. 본격적으로 해준에게 마음이 있음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오늘 힘든 일을 겪었을 그를 위해, 그녀는 그를 예고 없이 찾았고, 그를 재운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나에게 밀어내요. 오늘 있었던 일을"


서래에게 비밀이 사라져 버렸을 때


둘 사이의 거리는 거의 다 좁혀져, 서로 무서워하는 것을 말해주고, 주머니 속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하나하나 꺼내본다. 그렇게 좁혀지는 와중에 살인을 하러 비금봉에 올랐던 자신의 손의 굳은 살도 발각된다. 그와 반대로 해준이 자신을 보며 녹음했던 파일들을 듣고 지우며, 아직 둘 사이에 어떤 긴장과 비밀이 숨어있음을 계속 나타낸다. 이 불안하고 설레는 줄타기는 언제 끝날까.


"한국 여자들은 손이 참 보드랍죠?"


자신에게 이것저것 말하려 하는 해준의 입을 막고, 자신에게 발랐던 립밤을 발라준다. 입만 열면 자신을 설명하는 해준. 그 입을 막았다는 것은 뭐.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것이 아닐런지. 서래는 수줍게 웃는다. 의도적으로 서래에게 힘을 준 송광사 씬들.

송광사에서의 서래는 참 예쁘다. 왜냐면 사랑하고 있으니까
"내 집에 파란 공책 있어요. 그거 읽어드려요. 그거 좋아하세요"


이해동 할머니를 대신 찾아가겠다던 해준의 이 친절은, 이제 둘 사이에 아무런 비밀도 없어졌음을 의미하고, 결국 가장 비밀로 했어야 할 것을 해준에게 발각되고 만다. 서래가 해준을 그냥 속여야만 하는 경찰로 생각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


결국 해준은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서래를 떠난다. 이 장면에서 자신을 향해 사랑한다며 말하는 해준을 바라보는 서래에게 햇빛이 비춘다. 빛의 방향으로 더 사랑받는 쪽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관계에 역전이 발생하리라고. 호미산 정상에 올라 헤드라이트로 해준을 비추며 자신이 보고 싶었냐고 묻게 될 줄 말이다. 더 큰 깊은 바다의 모래산의 붕괴로 자신을 덮어버릴 것을 말이다.


그녀가 헤어질 결심하고 이포에 찾아갔을 때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서래가 해준을 보며 애플 워치로 녹음을 하고 있고, 만나서 계속 다가가는 것 또한 서래다.

해준이 보고싶어서 경찰서도 누비는 살인자(?)
"그가 이러려고 이포에 왔냐고 물으면 어쩌지? 아니야. 그는 묻지 않을지도 몰라.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해준은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포에 왔는지.


"이러려고 이포에 왔습니까?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몇 번을 다시 봐도 이 장면은 눈물이 흐른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엇갈린 사랑의 증거와 같은 문답이다.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해서, 결국 자기 자신을 던지러 온 서래와 자신의 근원이었던 형사로서의 자부심의 붕괴까지 감내하며 지켜낸 사람이 그것을 무시했을 것이라 생각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서로 분명히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표현될 때에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내가, 우리가, 이 둘의 이 엇갈린 사랑에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토록 절절하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왜 그녀의 사랑은 슬픈가


그녀가 영화 전반부에 보여준 심문받을 때의 엉거주춤한 자세를 꼿꼿하게 만들어준 친절한 해준을 만나 그를 좋아하게 된 그 순간, 해준이 붕괴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제야 자신을 의심의 시선이나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송서래라는 단일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을 마침내 만나게 되었지만, 그를 붕괴시켜 버린 것이 바로 자신과의 사랑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아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바로 자신 때문에 무너지고 깨어져버린 이 상황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헤어질 결심을 하고도, 서래를 계속해서 괴롭혀 왔을 것이다. 그를 잊어 볼까. 자수를 해볼까.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니 더욱 그가 보고 싶었을 것이고, 그날의 녹음을 들으며 이 모든 것을 되돌릴 방법을 내내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호미산 정상에서 서래가 번역기 앱을 써서 한 그 말은, 오히려 자기 자신이 그래 왔음을 나타내는 말일 수밖에 없다.


"날 떠난 다음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해준이 붕괴되고, 그녀도 따라 붕괴된다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우리는 사랑할 때 보통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게 된다. 수많은 그 사람 안에 수많은 자아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파괴행위일 수도 있다. 그걸 서로 기꺼이 파괴하고 당하며, 둘은 하나가 되어 간다.


가장 어려운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바로 그게 서래와 해준의 사랑인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을 파괴하기를 더 아파해서,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할 결심. 하지만 그 사랑은 엇갈려 결국 상대방이 붕괴에 이르렀고, 그러다 결국 자기 자신이 파괴될 사랑. 그건 어쩌면 가장 위대한 사랑임과 동시에 가장 쓸모없을 사랑일지 모른다.


해준은 자기 자신의 형사로서의 자신을 파괴한다. 서래를 사랑해서, 그 많은 정황들을 모조리 놓친다. 모든 것을 알아차린 해준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사랑이 거짓일 수 있음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는 기만일지도 모르는 그 마음을 품은 채 붕괴된다. 그래서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그 문답은 곧 사랑한다는 고백인 셈이다. 그래서 그 사랑의 결과는 곧 자신의 붕괴와 서래를 다시 보지 않을 헤어질 결심이다.


서래는 결국 자기 자신 자체를 파괴한다. 해준을 사랑해서, 다시 한번 살인을 저지른다. 모든 것을 각오한 서래는 어쩌면 붕괴된 해준의 원인이 자신의 사랑일 수 있음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에게 해준을 맞추기보다 그 상태 그대로 붕괴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모래산 속의 파도에 붕괴시킨 것은 영원히 미결로 남을 사랑인 셈이다. 그래서 그 사랑의 결과는 자신의 붕괴와 해준을 다시 보지 않을 헤어질 결심이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네 번째 리뷰 이후에 이 리뷰 발행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GV를 다녀왔고(마침내, 단일한 GV 후기), 영화를 10번째 관람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그 사이에 각본집과 VOD가 출시되었습니다. 영화관에서는 뒷심을 발휘해서 186만 명을 돌파했네요. 저도 정말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 한 번을 볼 생각을 또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리뷰를 다 쓴 뒤 하려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하겠네요.


이 리뷰는 계속됩니다. 아직 저는 이 영화와 헤어지지 못했거든요. 다음 리뷰는 서래와 해준의 시선이 아닌, 남성과 여성의 관점으로 영화를 본 지점들을 구분하여 리뷰해볼까 합니다. 요즘 시대에 남녀를 나눠서 생각한다 라는 것이 조금은 구시대적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 차이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다음 리뷰 제목은 <헤어질 결심> 남자라는 이름의 한계로 정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길지 않고, 기다리지 않도록 잘 써볼게요. 만약 관심 가신다면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시거나, 카페노노 #헤어질 결심 채널이나, 제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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