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향 인간의 고뇌
회사에서 조직 문화 활성화를 위해 팀원 간의 성향을 이해하고자 MBTI 검사를 진행했다. MBTI는 결국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이기에, 나의 이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ENFP. 아마도 나는 시끄럽고 정신없이 공상에 빠져 사는 무계획자가 이상인 듯하다. 하지만 회사는 나와 전혀 반대인 ISTJ 유형을 원한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계획된 바를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회사에서 십수 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번 MBTI 검사에서 내가 놀란 점은 결과가 나를 특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가 E라 하더라도 E의 지수가 얼마인지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0점을 기점으로 E와 I의 양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지수를 파악해야 하는데, 양 극단으로 몰리지 않고 두 지수가 비슷하다면 특정 성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경우 E와 I, N과 S, F와 T, P와 J의 모든 지수가 반반 섞여 있었다. 1점 혹은 2점의 간발의 차로 ENFP가 되었지만, 사실 ENFP라고 말하기 모호한 ISTJ 같은 ENFP인 셈이다. 다들 자신의 MBTI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지만,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애매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에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도 저도 아닌 나라는 사람으로 감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애매한 인간이 되었을까? 어쩌다 내 하고 싶은 대로 못 살고, 회사에 맞추어 살아서 회사향 인간이 되었을까? 변해가는 동안 못 알아봐줘서 미안하다는 생각에 조금 애달프기도 했다.
“너무 맞춰주면서 살지 마! 조금은 너답게 살아도 돼!” 나만 아는 나의 애잔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