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사.남>으로 부터 배운 ’행복의 잔기술‘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도 기어코 도사리고 있는 '작은 행복'에 관하여

by 어쩌다 고수

역사 속에서 그려지는 단종의 삶은 슬프기 그지없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며, 욕심 많은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배 생활을 하다 역적으로 몰려 얼마 살지 못한 그 인생마저도 타지에서 끝을 맺게 된다. 팩트만 전달하자면 이렇다.


하지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비극적인 단종의 삶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팩트만 보면 슬프고 어려운 단종의 인생에서도 그를 마지막까지 지키던 엄흥도를 찾아내고, 단종의 슬픔에도 반드시 슬픔만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조명한다.


역사서의 한 줄을 가지고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일 수 있으나, AI가 만들어내는 수만 가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는 늘 힘이 된다. 슬픈 단종의 이야기 뒤에 숨은 엄흥도라는 인물의 웃음 코드도 잊지 않았다. 실제 시종일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단종도 유배지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보인다.


한명회의 계략에 휘말려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 엄흥도가 끝까지 단종의 곁을 지킨 이야기는 끝없는 감동의 눈물을 자아냈다. 영화는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작은 행복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3의 시선으로 살펴보게 함으로써, 일상 속에 도사린 작은 행복들에 주목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영화만큼이나 그간의 장항준 감독 인터뷰 내용이 연일 숏츠로 생성되어 퍼지며 ‘장항준적 사고’가 화제가 되고 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나는 잘했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망했다는 단순 무식하지만 정신 건강에 몹시도 이로운 사상이다. 내 현장에선 갈등이란 없어야 한다는 신조, 감독이라는 권위 의식을 내려놓고 누구에게든 기대는 하찮음, 영화 제작 중에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이것이 거장이 지녀야 할 무게인가”라며 누구보다 먼저 거장의 반열에 자신을 올려놓는 자신감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마음에 쏙 든다.


내 미래는 창대할 것임을 믿는, 밑도 끝도 없이 근본 없는 유토피아의 환상을 믿는 나로서, 나와 같은 종족인 장항준 감독의 성공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역사적 사실로서 단종의 죽음은 비극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마음 둘 곳 없던 그의 인생에 엄흥도라는 벗을 만난 그의 마지막은, 평생 마음을 나눌 벗 하나 사귀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에 비하면 끝없이 행복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무쪼록 천만 관객이라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 더 이상 배우자 김은희 작가의 카드를 쓰며 홀로 소비 촉진을 통한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은 잠시 멈추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거장의 다음 영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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