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 양자역학, 그리고 스파게티 인간

하이젠베르크가 알려준 인생 폭망과 성공의 중첩 상태

by 어쩌다 고수

감기에 걸렸다. 신이 난다.

이로써 나에게 육아로부터 해방되어 24시간 중 20시간은 누워있어도 집사람(우리 집 집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라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주말 특권을 체득하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찬스! 누워만 있기엔 아쉽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강요받던 학창 시절에는 공부 비슷한 것도 싫었다. 그런데 무슨 학자병이 도졌는지, 양자역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우주학에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 생긴 것뿐이지 애초에 거대한 이론을 해석할 수 있는 뇌를 가진 인간이 아니기에, 일자무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을 주로 본다.


나의 알고리즘은 자연스레 EBS <취미는 과학> 영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의 지식 수준과 유사함을 가진 데프콘 님의 진행이 아주 맘에 들어 자주 시청하는 콘텐츠이다. 2025년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이란다. 이를 축하하기 위한 특집 편성으로 김상욱 교수님을 초빙해 양자역학을 설명해 주는 콘텐츠가 3개나 있었다.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책도 읽었고 유튜브도 많이 본 거 같은데, 여전히 뭔 소린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매번 읽고 볼 때는 신기하고 재미있는데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고나 할까? 이런 알 수 없음이 우주인 것이라면, 나는 우주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이 분명하다.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의 다정한 양자역학의 역사를 들으면서 또 잠시나마 우주의 비밀 하나를 알아챈 거 같다.


내가 이해한 양자역학은 이렇다.


양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원자, 전자와 같은 존재들이 있는 세계. 그 세계에 대한 정의가 하이젠베르크 이전 알던 지식으로 하자면(다시 말해 고전역학으로 말하자면), 일정하고 패턴과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가 100년 전 알아차린 사실인데, 실제로 양자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패턴과 움직임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곳에 위치할지에 대해 불확실하며, 다만 어디에 위치할지에 대한 확률만이 존재한다. 이 확률 역시 사람이 답을 구하고자 관찰한다면 하나로 귀결된다.


나 분명히 이해했는데도 글로 쓰고 보니 말 같지도 않은 쌉소리로 보이는 것 역시 양자역학의 특징인 것으로 보인다.


암튼,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고전역학의 대가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을 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인즉슨, 미래는 정해져 있고 아직 과학자가 알아내지 못한 미래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이 대세가 되어, 양자 세계의 전자가 그러하듯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미래라고 생각하고 측정하고자 할 때, 그 당시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사람이 측정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한다는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양자역학이니 슈뢰딩거의 고양이 혹은 강아지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집단들인 과학자들이 정했다.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관찰할 때 정해지는 것이라고!


내 인생의 결말은 중첩되어 있다. 폭망이냐! 성공이냐! 내가 내 인생을 어떠한 결말을 생각하고 관찰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침대 위에 20시간째 누워있으니 몸이 스파게티처럼 축 처져 누들누들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양자역학으로 인생의 깊은 철학을 탐닉한 나란 녀석을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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