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포함 타인이 가장 못나 보이는 순간을 꼽자면 걱정을 가장한 비아냥거림에 익숙해 보일 때다. 지금은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서 비아냥 거리는 말투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지만 이전에는 '정말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어.',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원래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서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라며 억지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간혹 일부 타인은 과거 자신의 모났던 모습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비아냥거림에 익숙한 자들은 못난 태도를 솔직함으로 포장하며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꽈배기의 진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건 개나 소나 다 하는 거 아냐?", "그 나이에 뭘 한다고 해.", "내 주위에서 그거 다 해봤는데 다 망했어." 등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겠다.
베베 꼬인 말들은 내 귓속을 대차게 타고 들어와 오장육부를 꼬아놓는다. 아무리 좋은 음식만 골라 먹더라도 끝없는 비아냥거림을 듣다 보면 속이 뒤틀린다. 심지어 대부분의 비아냥거림에는 실질적인 조언은 없고 오직 태클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긍정적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던 자들은 상대의 마음에 선공감 후 '~이렇게 해보는 방법도 생각해 보는 게 어때?'라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안하되 강요하지 않는 화법을 주로 구사했다.
과거 나의 모난 모습들을 살펴보자면 주로 불행할 때 마음이 회오리처럼 요동치다가 그것이 꼬여 혀를 타고 말로 내뱉어졌다. 현실의 괴로움을 해결하기에는 겁이 나서 다 같이 불행에 빠져들자며 침을 퉤 뱉는 꼴이었다. 어느 순간 그 모습 속에 미성숙함이 덕지덕지 붙어있음을. 모든 사람이 불행하다고 해서 못난 말을 내뱉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어지러울 땐 말을 아끼려 노력하는 중이다.
나이가 들 수록 자연스럽게 닮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형언할 수 없지만 항상 여유로운 아우라를 풍기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작은 것에서 웃음을 찾곤 하는데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나까지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러한 착각은 실제로 내가 더 발전하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행복함과 비아냥은 반비례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마음이 불행할수록 누군가의 미소 짓는 모습에 함께 웃기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괴롭다고 해서 비아냥거림에 익숙해져도 된다는 의미로 다가서고 싶지 않다.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소용돌이 하나씩 지니고 사는 법이다. 그것을 꽈배기처럼 꼬아서 내뱉느냐, 혹은 잔잔히 받아들이고 가라앉히느냐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비아냥거림이 담긴 말이 습관화될 때면 잠시 입을 멈추고 내 맘 속을 오롯이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행복은 나에게서 더 멀리 달아나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