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Mar 18. 2024

감정 거름망

정서적 의존과 해결책 찾기는 별 개니까.

예상치 못하게 훅 들어온, 부정적 감정을 증폭시키는 요인들 앞에서 속수무책 당해 버린 뒤 얼이 빠져 버렸을 때. 감정의 혼돈 속에서 달콤한 안정제를 찾아 헤맨다. 늘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두서없이 묵은 감정을 뱉어버린다. 목에 메여있던 보이지 않는 것이 완전히 꿀떡 넘어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묵직함이 어느 정도 덜어진 듯하여 숨이 약간 쉬어진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상대는 난감해 보였지만 나의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위로의 말도 건넸다가 이런저런 해결책도 건네줘본다.


가끔씩 이렇게 안정감을 주는 관계는 필요하다. 하지만 부적 감정이 들끓을 때마다 찾아가 부정적 감정을 지속하여 쏟아내며, 그들의 마음 따듯한 조언은 한 귀로 흘린 채 해 의지를 전혀 지니지도 않은 채 꽥꽥 우는 소리만 낸다면, 심리적 안정을 지지해 주던 그들 또한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지쳐버린다. 난데없이 쏟아지는 부정적 감정의 폭격으 관계가 파탄 나버리기까지 한다.


누군가에게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전하며 합리적인 해결책을 함께 도출해 내는 것 혹은 잠시 위로의 토닥임을 받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것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정서적으로 과하게 의존하는 관계가 되기 시작하는 순간 모두 괴로워진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누군가에게 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했고, 지금도 종종.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의존할 땐 그렇게도 달콤해 보였는데 누군가 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끝없이 부정적 감정아내면 버거웠다. 골똘히 고민한 뒤 감정적인 토닥임과 정성스러운 해결책을 건네보아도 상대는 전혀 듣지 않으면 허무했다. 의 부정적 경험이 거름망 없이 그대로 쏟아지자 서서히 내 일상도 어두워졌다. 내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상대에게 조심히 거리를 두기도 했고, 언젠가는 나 또한 충분히 지쳐있던 터라 "제발 그만!"의 신호를 격하게 낸 뒤 관계 끝나 버린 적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적당한 부정적 감정 공유를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는 중이다. 폭발할 것 같이 화나는 일을 경험했더라도 하루 동안은 내면에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 이 부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해결책을 도출해 볼 것. 부정적 감정의 형태를 뚜렷하게 만들어 볼 것. (단순히 '화난다'가 아닌, 이 감정은 이런 부분으로 인한 억울함이구나, 수치심이구나 등) 이 방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문제 되는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해결책을 도출해 본 뒤 믿을만한 자의 의견을 물어볼 것. 상대가 제시해 준 위로 방법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간을 들여 내 사건에 몰입해 준 부분 자체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할 것. 해결책을 몇 가지 스스로 정립해 봤을 뿐인데 이로 인한 장점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우선 부정적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질 때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쏟아낸 후에 들던 수치스러운 감정이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이성을 찾은 뒤 정리된 감정을 말하고 나면 듣는 이들의 위로도 더욱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해결책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었다.


최근에도 예기치 못한 타인의 무례한 행동들이 일상을 흔드는 일들이 있었다.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나는 상태로 휴대폰을 들고 정서적 달콤함을 더해주는 소중한 사람들게 연락하려다가 이내 노트를 펼쳤다. 화가 나는 이유와 열이 뻗쳐서 극단적으로 생각한 것들을 적었다. (욕도 있다.) 손이 아파왔지만 어느새 뜨겁고 붉어졌던 얼굴은 원래의 피부색과 온도를 되찾았고 심하게 쿵쾅거리던 심장박동 소리도 평온해졌다. 여전히 화는 났지만 이성적 사고가 가능해졌다는 신호다. 이 격분의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였고 확 올랐던 열은 잠잠해졌다.


어느 순간 화를 유발한 그 사람의 하찮은 행동으로 인해 소중한 내 인생 영향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겐 너무 속상했던 일이어서 나중에 소중한 지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오면 이 사건을 요약해서 말하고 약간의 토닥임을 받고 싶다. 그리고 금세 말랑해진 마음으로 단단해지고 싶다. 끝없인 부정적 감정을 토해내고 한없이 들어주는 것만이 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감정에 대한 배려 그리고 스스로 정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연습을 하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엄청난 인내심과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정서적 의존의 달콤함에 취하 대신 내 안의 감정 거름망의 기능을 더욱 키워봐야겠다. 정서적 의존과 해결책 찾기는 별 개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