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싸가지 장착

소중한 이들에게 드려요

by 안나

고등학생 때 아빠 직장으로 인해 원치 않는 전학을 하게 되며 친한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자 부모님이 미워졌다. 그래서 그것을 핑계 삼아 부모님에게 자주 싸가지 없이 굴고 또 합리화했다. "엄마 아빠가 뭘 알아!"를 입에 달고 살며 문을 쾅 닫는 등의 행위가 대표적이었겠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을 보낸 뒤 성인이 되고 대학 시절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거센 파도와 같은 감정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회사생활에 적응하며 겪는 부정적 감정들을 가족들 앞에서 자주 그리고 강하게 표출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회사 동료들 그리고 상사들에게는 대부분 미소를 지으며 대했다. 내게 무례한 이들일수록 그들이 날 더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더 웃어주며 친절하게 대하는 미련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엄한 데서 돌 맞고와 얼굴이 팅팅 붓도록 울거나 화가 나있을 때 나를 챙기는 것은 오직 가족들이었다. 내 기분을 섬세히 살피며 같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자며 손 내밀어 줄 때마다 마음속으론 '그래, 가족밖에 없지.'라며 그간 내 행동들을 반성하고 말 한마디라도 예쁘게 해야지 라며 다짐했지만, 유독 가족들에게만큼은 살가운 표현을 하는 것이 어색했다. 미련하게도 정작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소중히 대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 잘 보이기 위해 친절하게 굴었으면서도 늘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생각 없는 말을 던지고 상처를 입혔다.


그다지 가깝지 않던 직장동료가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 퇴사할 땐 "역시 대단해. 잘할 거야."라며 추켜 세워주지만, 내 동생이 새로운 공부를 하겠다고 도전할 때면 현실적인 우려를 담은 말을 던지며 의도치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상처를 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말리더라도 가족인 나 만큼은 믿어주고 지지해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은 누군가 동생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내가 더 열을 낼 만큼 그녀의 꿈을 소중히 지지하는 중이다.)


최근 늘 젊고 강인하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얼굴에 검버섯이 여럿 올라온 것을 본 날 갑작스레 속이 상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걸 알면서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주로 청소년 시절 그리고 이십 대 초~중반, 아빠에게 꽥꽥대며 눈을 부라리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뇌 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현대 의술의 발달로 아빠는 그 검버섯을 옅게 지울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또 아빠 얼굴에서 보일 때마다 난 과거의 나의 싹수없었음을 후회할 것 같다. 또 풍성하던 엄마의 머리숱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보면서도 이것이 다 내가 속을 썩여서 인 것일까 하며 자책했다.


나뿐만 아니라 방송 속 인물들 혹은 지인들 조차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는 친절하고 관대하지만 정작 가까운 배우자, 자식, 부모 등에게는 엄격하고 날카로운 잣대를 세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까운 이들의 마음이나 상황을 헤아리고 이해하기에 앞서 편하고 익숙하단 이유만으로 "에휴, 네가 그렇지 뭐."라는 말들을 종종 하며 대단한 사람이기에 충분한 내 사람을 겨우 그렇고 그런 인간으로 깎아내리곤 한다.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이런저런 상처들과 경험 등에 대한 방어로서 반복적으로 예의 없게 굴거나, 배려를 당연시 여기고 과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착하게 구는 것을 포기했다. 내 배려를 고마워하지 않고 권리로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기본태도는 지키되 주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나의 끊겨버린 친절과 호의에 '쟤 원래 싸가지 없었네.'라며 수군 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패션 관련 블로그 (판매 목적 X)를 운영할 때도 '혹시 사이즈가 크게 나왔나요?', '실례지만 보풀이 잘 일어나나요?' 등의 기본 태도를 갖춘 문의들에는 기분 좋을 쿠션어로 정성껏 답변을 진행하고 있으나 기본적인 인사말 하나 없이 메일 주소 하나 띡 남긴 채 '링크 발송 좀요.' 등의 당연하지 않은 요구를 마치 지시하는 듯하는 이들의 예의 없는 댓글들에는 반응하지 않거나 무미건조하게 일관하고 있다. 처음 블로그를 운영할 땐 그러한 무례한 요구에도 친절함으로 답했으나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호의를 고마워하기는커녕 더한 것을 요구할 뿐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싸가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내가 평생 안고 갈 소중한 사람들에게 싸가지를 한가득 장착하고 대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내게 일말의 배려 조차 없는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시간과 감정을 소비할 시간에 나를 지탱해주는 가족들, 내 기쁨을 자기 일처럼 축복해주는 친구들, 실리를 따지며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대신에 내 상황을 먼저 살펴주는 직장동료들에게 더 많은 정성을 쏟는 것은 여러모로 현명하니까. 동시에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늘 머릿속에 되뇌곤 하는 개념이지만 생각처럼 가까운 이들의 편안함에 익숙해져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적재적소에 적당한 싸가지를 장착하는 연습을 생활 속에 적용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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