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했던 그 요가 강사

요가하는 시간이 행복했던 이유

by 안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 나는 집 근처 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던 요가 수업에 꾸준히 참석했었다. 주 2~3회, 50분 동안 진행되던 수업이었다.


그 전에도 타 기관에서 요가나 필라테스를 종종 배우곤 했데 제한된 시간 안에서 나와 잘 맞는 수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만난 강사는 과한 친절과 더불어 수강생들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 선 넘는 질문들을 자주 졌다. 두 번째 강사는 누군가 결석이라도 하면 수업이 재미없어서 자주 빠지는 거냐는 등 본인을 폄하하는 말을 자주해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게 만들었다. 세 번째 강사는 여러모로 내 성향과 잘 아 정착하려 했으나 함께한 지 한 달 만에 개인 사정으로 강사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딱 맞는 스타일의 강사를 좀처럼 만나지 못한 채 이곳저곳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집 근처 평생학습관에서 요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다.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하던 몸을 건강한 상태로 변화시키고 싶기에 바로 수강 신청을 했다.




수업을 담당하던 강사의 첫인상은 '온화함' 그 자체였다. 입술의 꼬리는 항상 자연스러우면서도 경쾌하게 올라가 있었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명상을 할 때 살짝 오그라지만 마음 따듯해지는 멘트들을 거부감 없는 톤으로 조곤조곤 속삭여주었다.

수업 전후 간단한 안부를 물으면서도 강사는 수강생들의 직업, 나이, 결혼 여부 등을 묻지 않았다. 오직 그 날 진행했던 자세에 대한 피드백과 더불어 건강에 도움을 줄만한 음식, 차 등에 대한 정보들을 정성껏 제공할 뿐이었다.


항상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여유 있는 웃음을 머금고 있던 그 강사는 한 마리의 백조처럼 우아했다. 동성의 사람을 보고 '매력 있다.', '예쁘게 생겼다.', '날씬하다.' 등의 생각을 많이 했지만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다른 이들도 강사의 매력에 반한 탓이었을까. 수업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는 평일 저녁 수업에 주로 참석했는데 중고생들부터 젊은 직장인 그리고 중년, 노년 등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모이곤 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들 또한 서로에게 적당한 예의를 갖추고 소란스럽지 않았기에 나는 그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어느 날이었다. 곧 수업이 시작되려 하는데 새로운 수강생으로 추정되는 목소리 큰 여성이 갑자기 강사에게 말을 걸었다. 강사보다는 더 높은 연령인 것으로 예상되었다.

"선생님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네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여러 수강생들 앞에서 뜬금없이 나이를 묻다니. 무례했다.


"네, 제가 립스틱 바르는 걸 좋아해요. 제 나이요? 저 사십 대 중반이에요."

강사는 여유 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난 아가씬 줄 알았는데 아줌마였네 아줌마였어! 무슨 아줌마가 그렇게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려요? 호호호."

강사와 더 친해지고 싶었던 건지 혹은 정말 그런 시답지 않은 게 궁금했던 건지 그 수강생은 칭찬의 탈을 쓴 무례한 말들을 반복하며 혼자 웃었다. 아줌마와 아가씨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며, 아줌마가 어울리면 안 될 립스틱 색깔이란 게 있는 건지. 편견이 잔뜩 깔려있는 말들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써버렸다.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그 수강생이 다음 수업엔 안 나오길 바랐다. 동시에 강사의 기분이 상하진 않았을까 우려스러웠다.


강사는 그 수강생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회원님! 방금 그 말씀은 너무 무례하셨어요."

흥분한 모습 하나 없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친절한 미소는 잠시 거둔 상태다.


"아이고 죄송해요. 저는 선생님이 너무 예뻐서 그만. 호호호.."

그 수강생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강사는 그 수강생에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 다시 우아한 미소를 띠며 수업을 시작하는 멘트와 동시에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와, 대박. 겁나 멋있다.'

머릿속을 비우라는 강사의 말이 귓가를 울렸지만 방금 본 우아함이 극에 달한 처세술에 심장이 콩닥댔다. 나 같으면 인상을 한가득 구긴 채 째려보았을 텐데 혹은 반대로 수강생이기에 억지로 불편한 걸 참고 넘겼을 수도 있었겠다. 어쨌든 저렇게 까지 우아한 태도를 유지하며 할 말은 하 어려웠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그 강사의 팬이 되었다. 적극적으로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하진 않았지만 수업 시작 10분 전에 도착해 제일 앞자리에 앉 있었고, 불가능한 자세들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얼굴에 벌게져라 온몸을 버둥거리며 열심히 따라 했다. 찌릿찌릿한 자극들을 잔뜩 느낀 후 사바아사나 (송장 자세)로 명상 휴식을 취할 때면 강사의 은은한 목소리가 귓가를 속삭였다. "나에게만 집중하세요.", "오늘 하루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모두 지우세요.",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들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잠시 비우세요." 머릿속을 잠시라도 비우기 어려웠던 성향의 나는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강사의 지시에 따라 호흡에 집중하고 머릿속을 비우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 강사와의 우아한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 한 날이면 아무리 혼란스러웠던 날었을지라도 한결 평온하게 기억되었다.




요즘 같이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유독 복잡할 때면 우아한 그 요가 강사로부터 심적으로 치유받던 수업 시간이 그리워진다. 더불어 강사가 보여주었던 우아한 처세술을 나도 언젠가 꼭 활용해보리라 다짐해본다. 그녀가 내뿜던 극강의 우아함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길 바라며.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전 01화선택적 싸가지 장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