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이 발끝에 닿던 날

꾸준함이 준 기쁨

by 안나

7년 전. 모 화장품 회사에서 '사원(assistant)'의 직책으로 근무하며 모든 상사들의 소소한 업무들을 보조하고, 적당한 눈치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무리하던 나는 잦은 두통을 달고 살았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쥐가 나 구두 속에 감춰진 발가락이 자주 꼬이곤 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이런 사유로 병원에 방문하니 의사는 충분한 휴식과 꾸준한 운동을 권했다. 괜히 병원에 갔다며 툴툴 댔다. 하지만 자다가도 발가락이 꼬이고 하루라도 야근을 하면 다음 날 비실대는 내 신체적 나약함을 체감하며 '이대론 절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집 근처 헬스장에 방문해 3개월 이용권을 결제했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던 내겐 큰 지출이었다. 주 1~2회 그곳에 가 땀을 흘리며 러닝 머신을 탔다. 어설프게 배운 기구 이용법으로 하체운동도 했고, 1kg 아령을 이용해서 팔근육도 자극시켜주었다. 땀을 흘려냄으로써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일시적 쾌감을 누렸다. 하지만 능수능란하게 기구를 사용하는 근육남들 사이에서 몇 번 주눅이 든 나는 더 이상 헬스장을 가는 것이 기쁘지 않았다. PT를 통해 실력을 더 늘리고 싶었지만 당시 1년 차 사원이었던 나의 작은 월급엔 사치인 것 같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헬스장에 발길을 끊었다.


발가락이 꼬이는 지독히 고통스러운 현상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현상이 발생할 때마다 내 감정들도 꼬였고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물이 났다. 꼬인 발가락이 서서히 풀려 갈 때 쯔음, 이런 고통에서 당장 벗어나야겠다는 생존 의지가 불타올라 당시 유행하던 홈트레이닝 영상을 찾아봤다. 직장 동료가 집에서 따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상욕이 튀어나오려 했다던 'OOO의 전신 스트레칭'을 틀었다. 구매만 해두고 사용하지 않아 구석에 먼지만 쌓인 채 둘둘 말려있던 요가매트를 펼쳤다. 쇳덩어리 같은 몸을 이끌고 영상 속 우아한 몸짓을 삐걱거리며 열심히 따라 했다. 다리를 쭉 피고 앉아 발끝에 손끝을 닿게 하려 했는데 종아리와 무릎 밑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몸이 뻣뻣하니 재미가 없었다. 영상 속 강사는 너무나도 쉽게 동작들을 행하는데 나는 왜 행하지 못하는가에서 오는 자괴감에 화가 났다. 이내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눈물이 찔끔 나오던 첫 홈트레이닝을 마친 뒤 나는 방안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당시는 여름이었고 내 두피와 얼굴은 땀방울로 범벅되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마저 지친 듯 느껴졌다. 미지근한 듯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왠지 모를 개운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항상 차갑던 발가락이 따끈따끈 해졌고 뜨거운 머리가 식혀진 듯했다.


'홈트레이닝을 해서 자신감을 조금 더 다지고, 연봉이 오르면 하고 싶은 운동을 돈 주고 배우자!'며 다짐했다. 나의 첫 목표는 '손끝이 발끝에 닿게 하기'였다. 구체적인 기간은 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당장에라도 이 고통스러운 퍼덕거림을 멈춰버릴 것 같았으니까.




야근과 회식이 종종 있었기에 매일 영상을 보며 운동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주 2회씩 영상을 보고 따라 했다. 한 달이 지나자 동작들이 점차 익숙해졌고 관련 영상으로 뜨는 해외 운동 영상들을 찾아 따라 했다. 조금 더 강도 높은 맨몸 운동을 따라 하다가 보니 습관이 잡혔고, 두 달이 넘어가니 7일 중 3일은 달고 살던 두통이 2주에 1번 꼴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발가락이 꼬이던 불쾌함 또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와 같이 방 안에서 혼자 영상을 보며 땀을 흘리는 홈트족들이 많았던 것인지, 다양한 홈트 영상들이 더 많이 나왔고 나는 여러 트레이너들의 영상을 주 2-3회 따라 하며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던 발끝에 어느 순간 통증 하나 없이 손끝이 닿았다. 억지로 닿게 하려고 노력하지도, 힘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힘을 쭉 뺀 채로 평소 하던 대로 동작을 했을 뿐인데 발가락 끝에 손가락이 닿았고 며칠이 지난 뒤에는 손가락으로 발바닥 전체를 잡을 수 있었다. 처음 고통스러워 불타오르던 고통을 주던 동작들이 어느새 시원함을 선물해주었다.


그 뒤로 어느 정도 운동에 흥미를 얻어 요가, 필라테스 샵 등을 간헐적으로 다녔다. 혼자 할 때는 의식하지 못했던 나쁜 자세들을 교정받기에 좋았다. 너무나도 아파 스스로 기피해 자주 생략하던 복근 운동 등을 꾀부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이용할 수 없었던 소도구나 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장점이었다. 근무지 이전 및 이직 등으로 간헐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방 안에서 혼자 영상을 보며 스트레칭과 맨몸 및 소도구 운동 등을 하는 것은 꾸준히 이어나갔다. 타고난 저질 체력 덕에 매일은 무리라 생각해 주 2-3회를 유지했다. 딱 그 정도 횟수가 즐기며 꾸준히 해나가기에 적당했다.




손끝이 발끝에 닿던 순간의 기쁨을 시작으로 고통 끝에 맛보는 또 다른 기쁨들을 느꼈다. 10번만 해도 후들거렸던 스쾃 동작을 50번 이상, 더 나아가 100번을 해내도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미세한 근육들이 자극될수록 말랑하고 비실대던 내가 강인해진 것 같았다.


운동이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7년 동안 꾸준히 나만의 방법으로 몸을 요리조리 흔들고 구석구석의 힘들을 쥐어짜 내 미세한 근육들을 쓰고, 스트레칭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경지에 까지 다다랐다.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혹은 잘하는 이들에 비한다면 보잘것없이 모자란 자에 불과하겠지만 발가락이 꼬여 절뚝거리며 눈물을 쏙 빼던, 7년 전의 나에 비한다면 충분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볼 수 있겠다.


손끝이 발끝에 닿던 날. 종아리의 시원함을 느낌과 동시에 사소한 것이라도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이 나를 껴안았다. 그 기쁨은 나의 일상을 더 힘차게 만들어 주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욕심을 부리게 해 주었다.


최근에는 평소 관심 없던 골프에 관심이 생겨 배우고 있다. 욕심을 내려놓은 채 기교를 부리지 않고 기본자세를 잡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쉽게 휙휙 칠 것이라는 상상과 달리 자세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멋들어진 폼으로 공을 이리저리 휙휙 쳐대는 사람들 속에서 어색하게 땀을 삐질 흘리며 기초를 다지고 있지만 작은 성취에 초점을 두며 꾸준히 해나가려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수 없이 강조할 땐 한 귀로 흘려버리기만 했던 '꾸준함의 힘'을 깨닫고 있는 요즘. 자주 즐겁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02화우아했던 그 요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