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를 가장한 춤 이야기
<그래서, 실크로드>
춤, 마흔, 우즈베키스탄
p 196. 나가는 글
내 몸의 진동과 울림을 따라
… 춤을 추는 지금 여기, 그 은밀하고도 풍요로운 세계 속에서 나는 깊고 은밀한 만족감과 충만감에 잠긴다. 나는 돌처럼 진실하게 나 자신이 되고, 새로워지며 확장된다. 그렇게 춤도 새로워지고 확장되어간다. 그럼 나는 드디어 정말 사는 것 같다고, 이제야 숨통이 트여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과정의 반복 속에서 내 속 깊은 곳에 우뚝 있는 진실을 선물처럼 마주한다. 춤을 추는 것으로써 춤을 좋아하는 마음을 재확인한다. 그럼 그렇게 또 계속 춤추고 싶어진다. 이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겉 표면의 파도는 흐르고 지나가도 깊은 속은 그대로 있다.…
… 춤에 대해, 마흔에 대해 인정받고, 안정되어야 한다는 허구적 형상과 모양을 내려놓았다. 집착과 착각을 벗어던졌다. 이제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무용으로 큰 ‘이름’을 떨치지도 못했고, 마흔이지만 여전히 ‘안정’적이지도 못하다. 하지만 괜찮다. 사람의 인정을 받든 말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모양이 그럴싸하든 말든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진실을 알았고, 그 진실을 받아들여서 그래서 비로소 다른 의미의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삶도, 춤도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져가고 있다. 계속 춤을 추고 삶을 살아가고 움직이고 나아갈 뿐이다.
이제는 삶이 펼쳐지는 속에서, 현상의 혼재와 불확실성 속에서, 내 생각으로 분별하고 구분 짓고 그것에 집착하며 얽매이는 것을 그만두려고. 오히려 그저 내맡기고 내던지려고. 그 속에서 그저 진실하게 나 자신이 되려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진실하고 용기 있는 몸짓, 이 여정을 지속하고 싶다. 멈추고 싶지 않다. 움직여야 나는 산다. 내 몸의 진동과 울림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