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음악은 왜 이리 희한한(?) 걸까요?

by 움직이기

현대무용 작품에는 매우 다채롭고 다양한 음악들이 자유롭게 사용됩니다. 기악곡이나 전자음악, 영화음악, 클래식, 락이나 팝 음악도 사용되고, 특정 악기의 라이브가 동원되기도 합니다.

한편 (물론 절대로 다는 아닙니다만) 대체 어째 저런 음악에 춤을 출 생각을 다했는지, 대체 무용수들은 어떻게 저 음악에 다같이 동작의 합을 맞춰서 춤을 추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로 정형화되지 않은,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효과음 같은 음향만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대사나 무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추상적이고 난해하다는 현대무용의 인식형성에 이러한 음악들의 사용이 끼친 영향을 아마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반적이고 익숙한 음악들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접하지 못하는 조금은 낯설고 이질적인 음악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대무용에 사용되는 음악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현대무용에는 그런 낯설고 이질적인 음악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걸까요? 왜 케이팝 음악은 사용하지 않는 걸까요? 현대무용 공연이랄지, 현대무용 작품과 수업에서 사용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혹시 이런 궁금증 가져보지 않으셨나요?

저는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기표현의 지점과 연관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춤추는 사람은 근원적이고도 진실한 곳까지 가닿으려는 애씀과 발버둥 속에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몸짓언어로 구현해 내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음악은 춤추는 사람에게 하나의 영감이 되어주기도 하고, 전체 작품의 정서나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하나의 단서나 장치같은 것이 되어주기도 하지요.

춤추는 사람은 자기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면서 몸의 언어, 움직임을 탐구하게 됩니다. 자신의 창조성과 예술성, 고유성을 길어내고 표현하려고 하지요. 자신의 이 은밀하고 의외적이고 독창적이며 자유로운 표현들을 충분히 잘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을 찾습니다.

자신의 이 섬세하고 독특한 몸짓표현을 잘 담아줄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대중가요나 국민가요, 케이팝은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 거지요. 가사의 뜻도 너무나 명확하고 선명하고, 선율과 리듬도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 불특정함, 비정형성, 미스테리와 창조의 공간이 없습니다. 환하게 다 드러난, 정해진, 익숙한 가사와 박자와 리듬, 선율에 비교적 갇히기가 쉽습니다. 그 음악들이 주는 선명함과 깔끔함, 명확성과 정서, 분위기의 크기가 압도적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음악이 주가 되고, 음악자체를 좀 더 잘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가 쉽습니다. 나의 독창적인 몸짓, 그 표현의 탐구가 아니라 노래가사와 리듬, 선율, 분위기가 나를 장악해서 이것을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음악들을 사용하여 예술적 지점과 표현을 도모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고, 나의 표현의 진실성과 부합된다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닐 때, 나의 표현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그런 음악들이 너무나 제한적이고 흔하며 선명하고 정형화되어 있고 투박하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유성과 창조적인 몸짓표현을 구속할 수 있는 제약처럼 다가오는 것이지요. 음악이 나의 몸짓언어를 잘 담아줄 수 있는 하나의 영감과 장치가 아니라, 내 표현을 종속하고 구속하는 제약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케이팝이든, 국민가요든, 락이든 헤비메탈이든 어떤 음악도 사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 표현의 진실과 자유에 합일된다면 말이지요.
그러나 개인의 고유성과 독창성, 진실성, 자유에 기반하는 현대무용의 특성상, 흔하고 선명하고 유행하는 기성복같은 음악보다는 다소 낯설고 이질적이고 불특정적인 음악이 주로 사용되는 경향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정형적이고 미스테리하고도 무한한 창조의 공간으로 나아가고 싶으니까요. 나의 은밀하고 진실한 말을 온전히,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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