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콘 2019 LT 'Private is not future' 에 붙여
민주정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승리하려면 정치적으로 구현 가능해야 한다. 20세기 복지국가의 정치적 기반은 조직된 노동이었다. 조직된 노동은 부자들에게 불리한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반대를 버텨낼 수 있도록 만들어 줬다. 기본소득국가에서 이 ‘조직된 노동’에 해당하는 힘, 그러니까 기본소득 정책을 관철시키고 한 세대를 버텨줄 힘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기본소득의 수혜자인 가난한 사람들? ‘수혜 = 조직’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건강보험의 수혜자는 무척 폭이 넓지만 건강보험동맹 같은 정치결사는 없다.
수혜자가 조직으로 진화하려면 무언가 매개가 필요하다. 나는 기본소득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착한 자유주의자들의 꿈 이상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장을 '불가능하다'보다는 '나쁘다'는 의미로 쓴다. '자유로운 결사들의 경합'으로 작동하는 세상이 보통사람에게 더 유리하다. 그것이 보통사람의 발언권을 최대화하는 경로기 때문이다. 기본소득국가가 자유로운 개인이 원자화된 세상을 제안하는 한(즉 조직과 결사의 문제에 답을 내지 않는 한), 그 사회는 엘리트에 유리하고 보통사람에게 불리할 것이다. (천관율 기자)
나도 기본소득 지지자였다. 공공 영역이 사적 영역에 의해 잠식당하는 시대에, 공공의 역할은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주의에 입각한 작은 정부를 지향하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작은 복지국가’ 로 나아가자는 생각이었다.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미래 시대에는, 얼마나 안정적인 복지 조건을 제공하느냐가 국가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바 있다.
그런데 공공 영역에서 임의의 참여자에게 기본소득을 그냥 나눠준다는 생각은 사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 돈을 찍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으므로 물가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기본소득의 지급은 (국가단위의 거대한) 공동체 참여자를 파편화한다. 최소한 파편화하지 않더라도 (국가 단위의)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요인을 찾지 못하게 된다. 공동체 내부에서 참여자들은 공동의 적이 있어야 서로 도우며 행동하게 된다. 과거의 적은 전쟁이었고 현대는 시장이 그 역할을 한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20만명 이하의 도시국가로 쪼개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과거의 아테네나 구스위스연방 재정형태를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국제정치 역학적으로 보았을 때 불가능하다. 결국 해답은 사적 영역에서의 서사가 공적인 참여로 넘어가는 경우라고 보았다. 기본소득이 아니라 참여소득이 그 예시인데, 공동체에 일정한 기여를 해야 받을 수 있는 소득이다. 소위 스마트폰으로 GPS 데이터를 기록하여 봉사를 많이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겠다는 것이다. 어?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 들어봤는데?
맞다. 우리는 기술이 참여소득의 정상적 작동을 보장할 수 없음을 보았다. 블록체인에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결국 실제 세계와의 간극(오라클 문제)을 해결하지 못했다. 인간과 사회의 모든 활동이 네트워크에 기록되지 않는 한, (그리고 참여자를 죄수로 가정하는 한) 참여소득에 대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본인은 참여소득의 현실적 적용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찾고 있으며 참여자 간 결사의 동기로써 교육을 찾고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적(adversary)이 사람들을 서로 협동하면서 학습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능력과 리소스를 수급할 수 있으면서, 개개인의 성취를 돕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한 분야를 깊이있게 파고드는 방향이든, 많은 이들을 수용하는 방향이든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터져나와 커뮤니티를 형성할 것이다. 반대로 커뮤니티는 교육의 형태로 바뀌어 재조명 받을 수 있다.
왜 미래가 교육인가? 취창업 성공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는 공통의 목표 아래에 서로 결사하여 학습한다. 이 점에서 강의 위주의 기존 교육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무너진다. 교육 수혜자와 기업이라는 두 시장의 니즈를 빠르게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이 사적 영역에서 만들어가는 서사가 개인의 성취를 대변하는 일이 빈번해지는 시대에서는, 교육과정에 개인의 특징을 즉각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 다움” 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사회계층의 재생산 도구로써 사용되던 학벌과 교육논쟁은 더 이상 무의미해질 터이다. 학령 연령이라는 표현도 사라질 것이다. 대신 평생교육의 측면에서 교육과정 제공의 의무는 사적 영역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이미 목격하듯이 서로 미션을 해결해가며 협력하며 자립하는 능력을 채워가는 형태의 교육이 많아질 것이며, 이는 곧 커뮤니티의 기본적인 결사의 근거가 될 것이다. 현재는 개인 누구나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는” IT 업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견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속속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 본다. 교육의 변화가 변형된 형태의 삶의 양식(co-living 등..)을 만들어내는 힘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