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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솔 Mar 06. 2023

1월의 영화들

극장 / 넷플릭스 / 왓챠를 통해 마주한 작품들


가이드를 시작하며

1월 영화를 비롯한 시각예술 관람기록 (앱: 플레이2)


1월은 눈과 귀가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2월 중순에 있을 다큐멘터리 촬영을 준비한다는 명목 아래, 좋은 작품들을 꾸준히 탐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22년까지, 다큐부터 극영화까지. 1월에 접한 작품들은 다양한 시간과 장르 속에서 태어났다. 이번 달은 특히나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았는데, 다큐 촬영지가 대만인 까닭이다. 물론, 왕가위는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이니 완전히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를 준비하며, '그 시절 홍콩'의 향수를 자아내는 그의 작품들은 연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3월이 시작된 시점에서 1월을 정리하려니 민망하기도 하다. 여러 감정을 머금은 채, 오늘은 왕가위 작품 외의 것들을 중심으로 리뷰하고, 왕가위 작품에 대한 자세한 리뷰는 귀국하는 이번달부터 게시하려 한다.







1월의 극장 관람 영화


1. 아바타: 물의 길 [제임스 카메론, 2022]

13년 만에 선보인 후속작답게 화려한 CG와 모션 그래픽 기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후속작은 바다부족의 세계를 통해 아바타의 이야기 세계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나비족과 다른 바다부족의 삶의 방식과, 삶의 차이로 비롯된 외양의 차이는 훌륭한 볼거리가 된다. 인간과 아바타 혼혈 2세대 아이들은 저마다 비범함을 지닌다. 남다른 교감 능력을 지닌 키리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바다 안에서도 편안히 머물며 바다 생물을 잘 다룬다. 첫째 네테이얌은 첫째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동생들을 잘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둘째는 자신이 형만 못하다고 생각하며 제멋대로인 기질이 있지만 따뜻한 마음과 끈기를 가졌다. 이들의 명예 형제 격인 스파이더는 인간의 몸이지만 나비족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제이크 설리를 제거하려는 생부와의 관계, 설리 자녀들과의 단단한 우애로 인해 비중 있게 비친다. 복잡 다양한 관계로 얽힌 이야기가 화려한 그래픽 기술과 만나면서, 아바타2는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이에게 짜릿함과 활력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커다란 스크린도 이에 한몫한다.


아바타: 물의 길 스틸컷


작품을 관통하는 원동력은 사랑과 우애다. 죽음을 불사하고 소중한 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이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위험에 빠뜨리지만, 동시에 그 마음은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무기가 된다. 이 때문에 아바타2는 고리타분한 메시지를 중심에 놓는 내러티브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1탄이 자원을 놓고 이를 빼앗으려는 인간과 지키려는 나비족 간의 갈등을 다룬 것에 비해, 2탄에서 인간과 나비족의 대립은 제이크 설리에게 원한 있는 인간들과 가족애로 똘똘 뭉친 설리 가족의 갈등으로 축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세력은 (매우 커다랗긴 하지만) 전투함 한 대이며, 이들에게 맞서 싸울 때 바다부족의 전투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아 화려하지만 작은 격투가 되고 만다. 전쟁 장면이 꼭 거대하라는 법도 없지만, 설리 가족들과 함께 있던 수많은 바다 부족민들의 활약상이 비춰지지 않으면서 어딘가 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 메모리아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2022]

태국을 대표하는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장편 영화 '메모리아'는 제목에서 보듯 기억에 대한 영화다. 다만 영화에서 드러내는 '기억'이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기억'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기억은 개인적 경험의 상기다. 그러나 아피찻퐁에게 기억이란 일종의 네트워크다. 개인의 것으로 치환될 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유기물과 무기물들의 연결망인 셈이다.

영화는 제시카(틸다 스윈튼)는 크고 두껍게 울리는 '쿵' 소리의 근원을 찾는 여정을 따라간다. 절제된 연출은 때로 사진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제시카가 숲 속에서 만난 에르난(다니엘 기메네즈 카쵸)은 제시카의 요구에 따라 잔디 위에 벌렁 누워 잠드는데, 카메라가 잠들었는지 아닌지 모를 그의 얼굴을 수분 간 비추는 동안 움직이는 것은 바람을 맞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잔디와 좁은 폭으로 오르내리는 그의 가슴팍이다. 이것이 스틸 사진인지 움직이는 장면인지 혼란한 순간이다.


메모리아 스틸컷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총체적인 감상이나 평가는 다음으로 미뤄두겠다. 영화를 보다가 수십 분 졸았기 때문이다. 밀린 일로 쌓인 피곤이 눈꺼풀을 잡아당긴 탓도 있지만, 영화의 느린 템포도 한몫했다. 언젠가 다시 보며 영화의 진가를 음미하고 싶다.





1월의 넷플릭스


1.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2019]

작품의 제목을 두고 '이혼 이야기'가 더 적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니콜(스칼릿 조핸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이혼 및 아이 양육권과 관련해 서로의 치부를 들추는 치졸한 상황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혼에 합의할 때는 '좋게 좋게 끝내자'는 식이었다. 그러나 니콜의 변호사가 상황을 니콜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기 시작하면서 찰리도 변호사를 고용하게 되고, 상황은 막장으로 치닫는다.


결혼 이야기 스틸컷


그러나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 또한 작품을 훌륭하게 대변한다. 결혼은 낭만적인 사랑의 결실,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결혼을 통해 두 개체는 서로의 삶을 내어주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놓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책임져야 할 삶이 늘어나면서, 두 개체는 온전히 혼자만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선택의 모든 순간에 결혼으로 변한 상황들이 개입하는 것이다. '결혼 이야기'는 결혼의 현실을 냉철히 꼬집고 있으며, 배우의 연기가 이를 절감하게 만든다.

본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작은 스크린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버스트숏~클로즈업을 자주 활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2.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9]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을 원작으로 한 영화. 짧은 소설을 2시간이 넘는 장편 영화로,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소설은 어린 벤자민 버튼의 남다른 외양을 적나라하고 거칠게 표현해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비치는 영화 속 버튼의 어린 시절은 소설보다 정제된 편이라고 느낀다. 주인공의 역행적 생애주기 덕에 영화는 신비로움과 스펙터클을 모두 지니게 된다.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희로애락은 역행적 생애주기 덕에 진부하지 않게 느껴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스틸컷




3. 더 글로리 [드라마, 2022]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해자 연진(임지연) 등에게 복수하는 피해자 동은(송혜교)의 이야기는 '사이다'라며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사이다'라고 불리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첫째, 시청자가 원하는 결말을 '빨리' 내어준다. 둘째, 시청자가 원하는 '정도'의 결말이다. 더 글로리는 서사의 전개가 그리 빠르지 않다. 잘근잘근 동은의 과거와 감정을 곱씹는다. 강현남(염혜란)과의 연대, 주여정(이도현)과의 러브라인이 간간이 나와 동은의 마음- 그리고 시청자의 마음을 데워주기도 하지만, 주 아닌 부다. 더욱 두드러지는 점은 동은의 치밀한 계획이다. 복수를 위해 전부를 건 동은의 지능형 복수가 시청자에게 사이다를 건넨다. '피해자다움'으로 잘못 여겨지곤 하는 '두려움'은 동은의 뚜렷한 눈빛과 짓이기듯 뱉는 말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동은이라는 인물의 이러한 강단이 사이다에 김을 더한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전략적 복수, 그 끝은 무엇일까. 다가오는 3월 10일, 시즌2가 기대된다.


더글로리의 동은(송혜교 분)




4. 천국으로 가는 계단: 차이 구어 치앙의 예술 세계 [다큐, 2019]

다큐멘터리 촬영을 앞두고 여러 다큐를 양분 삼아 접했다. 그중 하나인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설치미술가 차이 구어 치앙(차이궈창)의 작품관을 다룬 다큐로, 당시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다큐명과 동일)까지 담아내었다. 불꽃놀이를 예술의 재료이자 실행, 결과로 삼은 차이 구어 치앙의 생각이 잘 드러나면서, 현대미술이 꼬리표처럼 동반하는 난해함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예술 작품, 예술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예술계의 반응은 물론, 예술가이기 이전의- 한 인간의 삶에도 다가간다는 점에서 본 작품을 권한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넷플릭스 포스터




5. 너에게 가는 길 [변규리, 2021]

카메라에 그저 한 '인간'으로서 비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어렵지만,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어렵다. 작품을 만드는 이의 시선, 작품을 보는 이의 시선 모두에 덕지덕지 붙은 선입견 탓이다. 그런데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그 부모님에게로 초점을 넓히면서, 이를 상당 수준 달성했다고 느꼈다. 성소수자가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나아가는 여정에 이들 부모님이 함께 하면서, 이들의 다른 인간성을 덮는'성소수자' 라벨은 조금씩 밀려간다.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것은 '자식'이라는 보편적인 라벨이다. 작품의 끝에 남는 것은 어떤 것을 간절히 열망하는 이들의 열정, 아픔을 딛고 나아가게 하는 연대다.


너에게 가는 길 넷플릭스 포스터






1월의 왓챠


1. 비긴 어게인 [존 카니, 2014]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봐야 할 명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담백한 목소리와 댄(마크 러팔로)의 천재적인 프로듀싱의 조합은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갈망하는 이의 마음에 감격스러운 만족감을 줄 것이다.


비긴 어게인 스틸컷




2.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2004]

일전에 유행한 '예술병 테스트'에 이 영화가 언급된 적이 있었다. 자칭 예술가, 또는 예술가스러움을 좇는 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영화를 보고 나서도 왜 그런지 단박에 납득되진 않았다. 20년 전 만들어졌지만 촬영과 편집 측면에서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소박하지만 다채롭게 꾸며진 조제의 집은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만들어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여성 인물에 대한 묘사가 진부하고 일면적이라는 것. 2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낸 아쉬움이다. 본 작품은 넷플릭스로도 시청 가능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틸컷




3.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다큐, 2013]

수백만 장의 사진을 찍고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비밀스러운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본 작품은 베일에 싸인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그의 사진을 통해, 그가 유모일을 하며 돌봤던 아이들의 기억을 통해, 그를 한 번쯤 스쳐 지나간 주민들의 목격담을 통해 더듬어보는 다큐다. 그의 작품을 사 모아 비비안 마이어의 전기 작업을 주도한 존 말루프가 연출까지 맡았다. 사진예술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비비안 마이어가 그토록 많은 사진을 찍어댔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스틸컷







1월의 감독: 왕가위


홍콩영화의 거장으로도 꼽히는 왕가위 작품들은 대부분 왓챠에 공개되어 있으며, 아래의 작품들은 거진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필자가 본 작품 목록은 아래와 같다. 3월 한 달에 걸쳐 이들 작품들을 리뷰하고자 한다. COMING SOON!


열혈남아(1988)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화양연화(2000)


중경삼림 스틸컷


가장 좋았던 작품은, 왕가위 영화의 정수라고 불리는 중경삼림과 화양연화였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개별 작품 리뷰를 통해 자세히 논하겠다.





가이드를 마치며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본 작품들 후기를 짤막하게 나누어 보았다. 자주 글을 발행하겠다는 다짐은 매번 다짐으로 남는 것 같지만,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은 놓지 않겠다.   

영화 리뷰와는 별개로, 중경삼림의 OST 왕비의 '몽중인'은 기가 막힌 명곡이다. 어느 친절한 분이 왕가위 감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놓은 덕에, 검색 한 번으로 작품에 녹아들어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음악들을 들을 수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길.

당신의 3월이 다양한 작품들로 충만해지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정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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