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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솔 May 03. 2023

[영화리뷰] 북극의 연인들

어긋난 미결의 원들


가이드를 시작하며

훌리오 메뎀은 대학시절 의학을 전공하면서도 영화 칼럼을 연재하고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장님>, <국수> 등의 단편으로 호평받은 그는 1992년 <암소들>로 입봉해 고야상과 도쿄 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상업영화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마스크 오브 조로> 감독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메뎀의 장편 <대지>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된 바 있다. 그러나 어떤 작품들보다도 그를 스페인 대표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해 준 것은 <북극의 연인들>일 것이다. 1998년 작, 스페인 원어로는 'Los amantes del Círculo Polar', 한국어 제목은 엄밀히 말하면 '북극권의 연인들'. 사랑, 운명, 시간을 과감한 미학적 시도로 담아낸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청소년기 오토와 아나




바라지 않는 우연들의 이야기

인물들은 삶의 우연성에 대해 입을 모아 얘기한다. 삶은 일종의 순환이며,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하다고. 이는 삶이 펼쳐지는 무대- 세상이 단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은 영원성 없이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수많은 우연을 마주한다. 간절히 바라는 우연과 바라지 않는 우연으로 나눠 볼 때, 본 작품은 바라지 않는 우연의 연속으로 전개된다. 바라지 않는 우연의 서사는 아나와 오토의 해설이 교차되면서 더욱 강화된다.


아나와 오토의 첫 만남은 뜀박질이었다. 아나는 엄마를 피해 달아나고, 오토는 축구공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쫓고 쫓기는 모양새가 된 이 첫 만남에서 아나는 제멋대로 오토에 아버지를 겹쳐 보았다. 둘의 사랑이 싹트던 때, 아나의 어머니 올가와 오토의 아버지 알바로 사이에도 사랑이 타오르는 바람에 한 가족이 되고 만다. 아나와 오토의 관계는 타의로 인해 금기의 사랑이 된 것이다. 


가족이 된 어린 아나와 오토


시간이 흘러 청소년이 되어서까지도 오토를 아버지의 분유물로 본 아나. 그러다 오토의 진정성 있는 사랑을 느낀 후부터 아나는 그에게 씌워둔 '아버지'를 철회하고, 사랑을 입히게 된다. 두 사람은 세계지도를 보며 북극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입을 맞춘다.


함께 잠드는 청소년기 아나, 오토


어른들은 영원한 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나는 백야 현상이 영원한 것이라도 되는 듯 눈을 빛낸다. 초반과 종반부 내레이션에서도 등장하는 태양 이미지는 오토와 아나의 열렬한 마음을 암시한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지는 태양은 이들 사랑에 아련함을 더한다. 




원형의 욕망

태양뿐 아니라 작품 속 많은 원형 모티프들이 인물의 욕망과 관련성을 보인다. 철문의 원형 창살 안에 완벽히 들어온 오토의 종이비행기는 아나를 향한 사랑을 담고 있고, 영안실 문에 난 원형 창은 어머니에게로 가 닿으려는 애달픈 마음을 더욱 부각한다. 오토가 광장에서 신문 구인 광고를 보며 원을 그릴 때도, 원은 그의 마음이 원하는 바를 담는 경계선이 된다. 그 위에는 어김없이 아나의 이름이 써진다. 결정적으로 아나의 마지막 순간, 눈동자 익스트림 클로즈업에서 동그란 홍채 안에 담기는 건 오토의 얼굴이다. 


이처럼 원 모티프가 인물이 욕망하는 바를 포획하는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다. 불완전한 원형의 연속으로서 수화기의 스프링 선도 인상적이다. 오토가 어머니 대신 아나와의 관계를 택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굳이 시선을 내려 수화기 선을 보여준다. 스프링 선은 마치 오토와 아나의 앞날처럼, 저들끼리 접점을 만들지 못하고 빗나가며 늘어진다. 오토는 그렇게 어머니를 떠남으로써 아나를 택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를 잃은 후 아나 곁을 떠난다. 그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우연과 욕망

삶이 우연의 일치라곤 하지만, 사실 우연 아래에는 욕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오토의 아버지 알바로와 아나의 어머니 올가가 오토가 던진 종이비행기를 계기로 만난 것은 둘 모두 이성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극 중 두 명의 알바로와 두 명의 오토가 등장하는 것도,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오토가 제 이름과 닮은 필로토(piloto, 파일럿)가 된 것도, 인물들이 욕망을 추동하는 중 맞닥뜨린 우연인 것이다. 더구나 아나는 ‘우연의 일치’를 주문처럼 말하면서 오토의 흔적을 찾아 달리지 않는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했다. 욕망이 우연을 낳는다. 오토와 아나의 우연은 타이밍이 조금 어긋난 것뿐이다.


서로를 보지 못하는 오토와 아나


스페인 영화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건으로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를 꼽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북극권의 연인들>은 프랑코 독재를 경험한 세대와 이후 세대의 관계를 담은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프랑코 독재를 경험한 1세대 인물로는 노인 오토가 종반부에 등장하는데, 후세대를 조력하는 이로 그려진다. 2세대의 대표는 알바로와 올가다. 이들은 프랑코 정권의 몰락을 목격한 세대로 '영원성'을 불신하며 자유로이 사랑을 추구한다. 그렇게 맺어진 알바로와 올가의 사랑은 제 자녀들 세대에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

 


그럼 오토와 아나로 대변되는 이 3세대는 어떠할까. 이들은 2세대의 뜻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러나 아나가 오토에게 관심을 둔 계기가 '아버지'라는 점, 오토가 아나를 저버리는 원인이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걸 보면 3세대는 2세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다. 그리하여 작품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남긴다. 이들이 앞선 세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더라면, 오토의 원은 채워질 수 있었을까. 아나의 홍채가 마지막 순간에 담는 얼굴이 오토의 비명 아닌 환희일 수 있었을까. 




가이드를 마치며

어찌 보면 우연과 운명은 상반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한낱 인간에겐 모든 것이 우연일지라도, 우주의 모든 판을 조망하는 절대자가 있다면 그에게 모든 일은 예견된 운명일 것이다(절대자의 존재는 '한낱' 인간으로서 여전히 미심쩍지만). 그러니 "바라지 않는 우연이 직조하는 비극적 운명"이라는 표현은 모순적이지 않다. <북극권의 연인들>이 두 사람의 비극적 운명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미적으로도 뛰어나니 꼭 한 번 볼만한 작품인데, 아쉽게도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볼 수는 없다. 영어자막이 달린 것을 겨우 구해 본 기억이 난다.


한편, 작품을 해당 사회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텍스트와 함께 이해하는 접근은 "스페인 영화(임호준, 2014)"라는 책에 잘 담겨 있다. 걸출한 스페인 영화를 국가정체성과 작가주의의 상호작용으로 풀어낸 책으로, 꼭 스페인에 관심이 없더라도 '영화학도'를 자처한다면 탐독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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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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