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연솔 Apr 21. 2023

[영화리뷰]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어머니’라는 강력한 연대의 고리


가이드를 시작하며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연달아 가져왔다. 이번 가이드에서 소개드릴 <내 어머니의 모든 것>(Todo Sobre Mi Madre)은 제52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트로피를 거머쥔 알모도바르


영화에 등장하는 생물학적 여성들은 모두 누군가의 어머니다(이들은 어머니이거나 어머니가 될 예정인 존재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 인물들 간의 연대인데, 알모도바르는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에서도 여성 간 연대를 서사의 동력으로 삼은 바 있다. 다만, 해당 작품에서의 연대가 인물 개개인의 ‘욕망’에 기반을 두고 역동적으로 전개된다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연대는 여성이자 어머니이기에 겪는 고뇌를 기반으로 한다.





'어머니'들의 강력한 연대


연대의 서사는 마누엘라(세실리아 로스)가 아들 에스테반을 사고로 잃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에스테반의 친부 '롤라'를 찾아 소식을 전하고자 바르셀로나행 기차에 오른다. 빠르게 지나가는 터널 내부 인서트가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마누엘라는 남성에게 목 졸리는 여성을 돕는데, 그녀는 우연히도 옛 절친인 트랜스 여성 아그라도(안토니아 산 후안)다. 이후 로사(페넬로페 크루)가 마누엘라와 아그라도의 구직을 돕는다. 운명적이게도 로사는 마누엘라처럼 롤라의 아이를 밴 젊은 여성이다. 설상가상 HIV까지 감염된 그녀는 제 가족보다도 마누엘라에게 기대어 건강을 회복한다.


스틸컷: 마누엘라(왼쪽)를 찾아간 로사(오른쪽)


영화에는 총 다섯 명의 어머니-에스테반의 어머니 마누엘라, 죽은 에스테반의 양어머니가 된 우마(마리사 파레데스), 로사의 어머니, 임신한 로사와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니나-가 등장한다. 


이들 중 ‘완벽한 어머니’가 있을까. 제 자식과의 관계는 마냥 순탄치 않으며, 무엇보다 이들 또한 그 자체로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식과의 관계’라는 짐을 누구보다 책임감 있게 짊어진다. 아이의 첫 숨부터, 그 이후까지 수십 년을 돌보는 동반자다. 특히 마누엘라와 로사 어머니 사이에는 어머니로서 느끼는 고충을 기반으로 공감이 맺어진다.


스틸컷: 우마(왼쪽)와 마누엘라(오른쪽)


이와 달리 아버지들은 제 자식조차 모르는 존재로 묘사된다. 로사의 아버지는 치매를 앓아 제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롤라는 마누엘라가 제 아이를 밴 사실조차 모른다. 롤라가 여성의 삶을 택하면서 에스테반의 아버지는 자연히 ‘없는 존재’가 되었고, 마누엘라는 롤라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두 에스테반의 아버지이자, 저 자신 또한 에스테반이었던 롤라가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 존재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것이 트랜스젠더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인 것은 아니다. 임신 후 열 달을 품어야 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제 자식이 생겼는지 혼자서는 알 길이 없으며, 롤라의 무책임함은 이러한 남성적 생식기능과 연결된다. 오히려 롤라는 생물학적 아버지로서 자식의 존재를 알 권리를 트랜스젠더이기라는 이유로 박탈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틸컷: 에스테반의 아버지이자 MTF 트랜스젠더, 롤라





'정상'가족에 던지는 의문


마누엘라와 로사의 관계가 점차 끈끈해지면서, 어느 시점부터 혈연 기반의 '정상가족' 개념에 의문을 갖게 된다. 마누엘라는 로사에게 진짜 가족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 로사는 다른 누구보다 그녀에게 기댈 때 가장 편안하다. 심지어 그녀는 제 배 속 아이를 ‘우리 아이’라고 칭하고, 아이 이름을 '에스테반'으로 한다. 이들의 깊은 연대가 보여주는 안정감은 남성이 부재한 가족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모도바르의 이러한 묘사는 미혼모 가정을 일종의 ‘결핍’으로 보는 시선을 무색하게 한다. 출산 직전 로사는 마누엘라에게 제 아이에게 모든 것을 숨기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이로써 롤라는 생물학적 아버지로서 받아들여지고, 곧 태어날 에스테반의 삶은 죽은 에스테반과 달리 절반을 잃지 않게 된다.


스틸컷: 에스테반과 마누엘라. 마냥 살갑지는 않은 '정상가족'의 모습
스틸컷: 출산을 앞둔 로사를 다독이는 마누엘라

정상가족 개념과 관련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극〈Un Tranvia Llamado Deseo〉의 극 중 쓰임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에스테반이 생전 마지막으로 본 연극이자 우마가 참여하는 작품인 〈Un Tranvia Llamado Deseo〉의 포스터 속 근육질 남성은 강압적으로 여성을 붙잡고 있으며, 실제 무대에서도 남성 인물은 여성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가부장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런 억압 속에서 극 중 '어머니'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갓난아이를 안고 집을 나서는 일이다. 마치 마누엘라처럼, 로사처럼. 극 중 연극이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또 한 번 강조한다. 바로, 전통적인 마초적 남성성과 정상 가족의 틀은 결코 여성들을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 특히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손을 맞잡은 이들을 말이다.


스틸컷: 연극의 한 장면. 결심하는 어머니





가이드를 마치며


20년이 넘은 영화지만,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담긴 알모도바르의 개성 넘치는 미적 감각은 영화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또, 성별과 정체성에 대한 알모도바르의 열린 사고는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에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전히 앞장서있다. 



정연솔.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리뷰]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198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