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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May 07. 2024

혼자가 아닌 함께

  “잔을 가득 채워서 축배를 높이 드세 여기 다시 모인 친구 정다운 나의 친구여~~~” 마지막 곡이 끝났다. “축배의 노래”가 끝나자 관중석에선 환호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저기 핸드폰 플래시 불빛이 터지고 우렁찬 박수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단원들도 벅찬 마음에 손도 흔들고 서로 격려의 박수를 치며 공연이 끝난 후의 여운을 즐겼다. 지휘자의 신호에 따라 인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와 무대 뒤로 퇴장을 하며 걸어 나왔다. 작년 이맘때 합창을 해보겠다고 합창단을 찾았던 때가 생각났다. 


  오래전부터 합창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4년 전쯤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성가대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려고 하였다. 막 성가대를 찾아가려는 결심을 하려던 차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로 발령이 나서 전근을 하게 되었다. 합창을 해보겠다는 시도는 기약 없이 멀어졌다. 제주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코로나가 끝났음에도 성가대에 참여하려던 결심은 선뜻 실행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망설이며 세월만 흘러갔다. 주저함의 가장 큰 이유는 한번 성가대에 들어가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연습에 참여해야 할 것 같은데 제대로 할지 영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던 차에 잘 아는 동생이 합창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다. 동생은 카네기 합창단 단장을 맡으면서 매우 열정적으로 합창단을 이끌고 있었다.

 

  카네기 합창단은 2018년 2월에 창단되어 카네기 회원으로 구성된 혼성 합창단이다.  2019년 10월 창단연주회도 개최하였고 많은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성가대에 참여하려던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카네기 합창단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성가대 활동을 주저하는 동안 친한 동생의 권유를 받다 보니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볼까 하는 설렘이 생겼다. 합창단에는 아는 분들도 꽤 있었고, 이번이 아니면 합창을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생기면서 즉시 가입을 하였다. 꼭 해보고 싶었던 합창단원이 된 것이다.


  매주 한번 두 시간의 연습에 참여했다. 원래 범생이라 한 번 시작하면 잘 빠지지 않고 제법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성악이라 처음에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지휘자님이나 동료들이 잘 도와줘서 조금씩 적응해 갔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가끔 무대에도 서곤 했지만 굳이 합창을 하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성부별로 소리를 내어 화음을 이루며 멋진 곡을 만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각 성부의 소리가 정확히 맞아 완벽한 화음을 이루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천상의 소리를 느껴보고 싶었다.


  현실은 멀고 험했다. 완벽한 화음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단원들 대부분이 직장 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매주 연습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구성원 또한 음악을 전공한 회원이 거의 없다 보니 누군가 나서서 조언을 해주거나 서로 독려를 하며 이끌어 갈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곡 한 곡 꾸준히 연습도 하고 발성 연습과 악보 보는 법을 배우면서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입단 후 5개월이 되어갈 무렵에 향상음악회가 열렸다. 개개인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개인이 곡을 선정하여 무대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 별로 연습도 많이 하게 되고 무대 공포증도 극복하고 무대 매너도 배우면서 무대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애 첫 발표곡으로 어떤 곡을 부를까 고민이 되었다. “어디에서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일까… “로 시작하는 윤학준 곡의 “잔향”을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의 여운과 그리워하는 마음을 서정적인 가사와 음률로 표현한 무척 아름다운 곡이다.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한 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발표 당일 처음으로 연주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섰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성악에 집중하자 곡에 빠져들며 서서히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큰 실수 없이 공연을 마치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울려 퍼졌다. 향상음악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새해가 되면서 코로나로 못했던 정기연주회를 다시 해보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합창단에 설렘과 생기가 돌며 어차피 할 거면 잘해보자는 의기투합이 되어갔다. 오랜 침체기로 단원이 많이 빠져나가 신입 단원 확보가 시급했다. 합창을 하기 위해 40여 명의 단원이 필요한데 남아 있는 단원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각 파트별로 파트장을 정하고 단원 영입을 위해 카네기 회원들을 상대로 합창의 매력을 홍보했다. 장소는 공연장 시설이 완벽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로 정해졌다. 곡 수는 11곡으로 정해지고 매주 2~3곡씩 집중해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파트별로 따로 연습도 하고 지휘자로부터 특별 과외 수업도 진행되었다. 공연일이 다가오면서 흩어져 있던 소리가 모아지고 다양한 소리가 한 방향으로 향해지기 시작했다. 매주 결석 숫자도 줄어들고, 단원 개개인의 성악 실력도 높아지면서 점점 합창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혼자라면 나만 잘하면 된다. 함께 한다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이므로 모두가 같이 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주장 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나의 목소리를 너무 크게 내지 말아야 하고,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한다는 솔선수범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래서 함께 하면 어렵다. 


  퇴직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때도 팀을 구성하여 여러 명이 같이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같은 회사라는 동질성의 구성원이다 보니 함께 한다는 의미보다 한 팀이라는 의식이 강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사회는 완전히 달랐다. 각자 개성도 강하고 바라보는 방향도 다르고 생각도 매우 다양하다. 합창은 이런 구성원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울 거라 생각하였는데 같은 목표를 정하여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도 혼자가 아닌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긴 숨을 위해 함께 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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