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도 중요해
결과가 중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험도 합격과 불합격만 있고, 운동 경기도 메달을 딴 사람만 기억하고 축하한다. 성공 스토리나 합격 수기는 있어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나 불합격 수기는 없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합격한 사람들의 방법을 알려고 한다. 그래야 자기도 성공할 수 있고 합격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청년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에는 더욱 결과에 대한 이야기만 주목하게 된다. 경쟁 사회에서 시험을 보면 합격을 해야 하고 사업을 하면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명문 대학에도 가고 취업도 하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면 어떨까? 경쟁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시험의 경우만 해도 다른 사람과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결국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어디 시험만 그러하겠는가?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문제가 아닌 자신과의 문제이다.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면 그 과정 또한 아름답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서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멋진 몸매에만 집중하다 보면 쉽게 변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을 하여 결국 포기하게 된다. 결과에만 집착하여 하루아침에 날씬한 몸매가 만들어질 바라며 과정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도 역발상의 사고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헬스장에 가는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고 재미를 붙여보는 것이다. 매일 가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고 생활에 활기가 생기면서 몸매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헬스장에 가기 위해 약속도 줄이게 되고, 헬스장에 가는 자체가 고통이 아닌 행복이 되어간다. 주위의 칭찬도 듣게 되고 자신만의 루틴이 생기면서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몸짱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레온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300킬로미터를 걷기 위해 두 달 정도 준비를 했다. 매일 아내와 두 시간 정도 걷고, 순례길의 여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순례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였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의 즐거움이나 300킬로미터를 걸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떠나기 전까지 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행복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고 출국장에 들어설 때까지의 두 달 동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를 팔면서부터 시작된 집짓기 프로젝트는 옛 군주가 자신의 성을 지을 때의 심정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레었다. 땅을 구입하기 위해 일 년 정도 도심 인근 지역을 돌아다녔다. 땅을 구하고 나선 어떻게 집을 지을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 주말마다 전원주택을 찾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집주인들과 대화도 나눴다. 설계도를 그리며 지우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집을 지으면 십 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듯이 집 짓기는 무척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을 짓는 일 년의 과정은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재미있었다. 처음 지은 집이라 조금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여 한 번 더 집을 짓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최근에 아지트를 마련했다. 남이 보면 초라하다 할 정도로 작고 협소하지만 나에겐 대기업 사무실보다도 크고 멋지다.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중개사무소를 찾아다니며 소개를 받고 구경을 했다. 나에게 꼭 맞는 공간을 찾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후는 텅 빈 공간을 채우는 과정이었다. 시트지를 구입하여 직접 붙이고, 인터넷의 사이트를 뒤져 나에게 꼭 맞는 테이블을 고르고, 냉장고를 고르고, 서랍장을 고르고, 소파를 구입하였다. 하나씩 사무실에 들이면서 새 식구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남들은 없는 사무실을 나만 갖게 된 것처럼 흥분되고 설렜다.
이 모든 과정은 시작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작을 하면 과정이 생기고,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과도 좋게 된다. “왜 이리 힘들까, 왜 이런 일을 시작했을까” 라며 불평을 하다 보면 결과도 좋지 않게 된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간의 노력이나 희생, 투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과정 자체를 즐기고 소중히 여기면 설령 결과가 미흡하더라도 그 과정만큼의 보람도 있고 성과도 있게 된다. 오히려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되기도 한다. 결과만 연연하지 말고 과정을 즐기며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는 넉넉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