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수업

by 송재영


허름한 식당에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단둘이 자리를 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주인장만 상차림에 바쁜 걸음을 종종거리고 있었다. “밥 굶고 있을 것 같아서 고기라도 사주려고 왔다.” 나는 지금도 이 말씀 한마디로 힘든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교과서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나라 산업화를 위해 최전선에서 일생을 바친 공장 노동자이셨다. 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작업복 차림에 도시락을 짐받이에 묶고 이십 리가 넘는 공장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을 하셨다.

당시만 하여도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절이라 공장 노동자의 생활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 우리 가족은 당신 세대에서 가난의 세습을 끊어버리려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이런 아버지의 무모함이 어머니에게는 인내하기 힘든 시간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릴 적 가족 나들이라곤 완산칠봉에 있는 팔각정에 오르거나, 한여름에 초포 다리 밑으로 물놀이를 가거나, 단오절이면 덕진공원에서 사람들 구경을 하거나, 부처님 오신 날에 금산사에서 공짜 공양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번은 어머니가 계모임에 가니 다른 집은 외식을 자주 해서 음식 먹은 자랑들을 하는데 당신은 외식을 못해서 아는 음식이 없어 한 마디도 못하였다고 투정을 하시자, 이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다음에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하나 가져다주겠다며 핀잔을 하였다는 일화는 아직도 어머니의 대표적인 고생담으로 남아 있다.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돼지고기를 사주시기 위해 절간을 찾아오신 것이다. 거듭된 낙방으로 집에도 가지 못하는 자식이 끼니를 굶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신 것이다. 아버지의 살가운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이렇게 따뜻하신 분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냉정하고 지독한 모습으로 사시느라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며 온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공장에 들르곤 하였다. 하루는 한참 어려 보이는 젊은이가 아버지에게 뭐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다짜고짜 달려가서 그 젊은이에게 왜 아버지에게 소리를 치느냐고 따졌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며 나를 동료들에게 맡기고 그 고객의 항의를 다 듣고 계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가르치셨고 나의 갈 길을 알려 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삶의 방향이 더욱 선명해졌고, 아직도 나는 그 방향으로 열심히 가고 있다.


대학에 다니면서 공장이 어려워지고 우리 생활도 더욱 힘들어져 갔다. 학기가 바뀌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들지 못하고 등록금 마련을 걱정하며 어디서 돈을 빌려야 하는지 막막해하시던 대화는 아직도 나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멍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애증 그 자체이다. 왜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해서 가족들을 그렇게 고생시켰는지 하는 원망과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음에도 4남매의 학업은 끝까지 책임져 주심에 대한 감사함이 함께하고 있다.


아버지의 바람에 미치진 못했지만 직장을 잡고 결혼도 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아버지는 일생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큰손자의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도 환하게 웃으실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내 곁을 떠나가셨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을 처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식의 역할도 처음이고, 아버지의 역할도 처음이고, 남편의 역할도 처음이다. 때론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가족을 아프게도 하고 실망시키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한때는 아들을 키우면서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아버지에 대한 교육도 없이 덜컥 아버지가 되게 한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원망한 적이 있었다. 학교 학습 과정에 아버지 교육이 있어서 아버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미리 받았으면 좀 더 아버지의 역할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버지는 학교 배움이 짧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게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오신 모습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웠고 아직도 배우고 있다.

아내는 내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나의 아들도 나를 보며 아버지 수업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의 아버지일까. 두렵고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