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사과색이 덧입혀진 울타리엔 ‘자인당(自人堂)’이라는 명패가 있다. 아내가 ‘자연과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로 가명(家名)을 지어 가족과 함께 조촐한 현판식을 하고 걸어 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모악산 자락 아래 중인동 버스 종점에 자리 잡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넓은 창을 가진 2층 집에 파란 잔디가 심어진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마당 한쪽 구석엔 텃밭과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는 소박한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이다.
이곳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3년 전 큰애가 데리고 온 ‘창식’이라는 퍼그가 한 가족을 이루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처음엔 가족들 모두가 동물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을 정도로 거부감이 많았으나 이제는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소중한 가족이 되었고, 어느 반려견이나 그렇듯이 ‘창식’이는 자신만의 애교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어느새 나보다 서열이 한참이나 높아져 있다.
이런 자인당을 준비하게 된 것은 남자로 태어났으니 나의 성(城)을 지어보고 싶다는 집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나만의 버킷리스트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간절한 소망의 결과이다.
아직도 나에게 선명하게 남아 있는 집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학창 시절 동안 온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산등성이 언덕에 있던 슬레이트 블록 집에서 지냈던 시절이다. 집의 구조는 슬레이트 지붕에 블록 벽을 세워 지어졌고, 대문은 함석으로 만들어져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려 요란한 소리를 냈으며, 집에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해 겨울이나 짐을 날라야 할 때면 불평이 입에서 절로 나오곤 했던 낡고 허름한 곳이었다. 그래도 그땐 셋방을 전전하던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집이라서 이사하던 날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이 함께 즐거워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슬픈 잔해로 가슴에 남아 있다.
그때만 해도 단열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집이 너무 춥고 더웠던 기억, 날맹이에 있다 보니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조금이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길어 날라야 했던 기억, 연료 라야 연탄과 석유가 전부여서 겨울이 다가오면 온 가족이 나서서 손수레에 연탄을 실어 나르던 기억, 눈이 조금이라도 내리면 내리막길이 얼어붙어 빙판길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던 기억, 어찌 이뿐이겠는가? 겹겹이 쌓인 아픔과 고단함이.....
아이들이 커가면서 두 개이던 방이 부족하여 옆의 자투리땅에 방 한 칸을 들일 때는 나도 제법 커서 삼촌을 도와 벽돌도 쌓고 치수도 재고 지붕도 올리고 연탄보일러도 놓으면서 목수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어머님이 사용하시는 부엌에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아서 벽면을 이어 새로운 부엌을 지어 드리기 위해 제재소에 가서 나무도 사고, 철물점에 가서 플라스틱 지붕도 사서 일주일이 걸려 제법 그럴듯한 부엌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던 뿌듯한 기억도 그 집에 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추억으로 변해 좋은 생각만 남게 된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힘든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나를 지탱해주는 유익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래도 인간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 우리 가족도 10년 넘는 오랜 시간을 그 집에서 힘겹게 살았음에도 우리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그 집에 살았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곤 한다. 높은 곳에 살다 보니, 전주시의 멋진 야경은 우리보다 더 많이 본 사람이 없을 거라든지, 야간 학습을 마치고 오는 자식이나 술 한잔하시고 오시던 아버님을 기다리시다가 마을 초입에 들어서는 자전거 불빛만 보고도 우리 가족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 집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 집은 잊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소중한 역사가 되었고, 나 또한 고단하고 힘겨웠던 그 집의 기억을 지금의 나의 모습에 대비하며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의 우리 집으로 정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말 아침엔 게으름이라도 필 요량으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거실에 누워 있노라면, 마당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곱게 널려 있고, 양지바른 곳에는 건조대에 세탁물이 형형색색 선명한 빛깔로 걸려 있고, 텃밭에선 아내가 잡초도 뽑고 벌레도 잡으면서 무슨 큰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아지경에 빠져 있고, 두 아들은 창식이를 따라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다. 우리들은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림 같은 집은 어떤 집일까?
이제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집이라는 게 외형의 모습이 아닌 가족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따뜻한 안식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과 사람이 머무는 자인당에서 나와 아내, 두 아들, 그리고 창식이가 함께 ‘그림 같은 집’을 지어가고 싶다.